어르고 달래서 겨우 한 장 찍으려 하면 오만상을 한 얼굴이거나, 눈을 희번덕 뒤집는다. 아니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꿈에 나올까 무서운 그 사진은 결국 휴지통으로 직행한다.
사춘기 문턱을 사뿐히 즈려밟고 올라선 아이는 제 반경 일 미터 안으로 들이밀어진 핸드폰 카메라를 발견하자마자 얼굴을 홱 돌린다. 혹여라도 얼굴 돌릴 타이밍을 놓쳐 애미의 렌즈 피사체에 담긴 것 같다 하면 잽싸게 핸드폰을 낚아채 가 삭제버튼을 누른다.
"내 얼굴 찍지 마."
희대의 싸가지 등장이오. 뭐, 얼굴에 금칠이라도 했냐고요.
결국 남는 건 사진인데
실로 스마트한 폰이라는 것이 'n 년 전 오늘'이라고 알림을 띄워 올 때마다, 손바닥 속 네모세상에서 어린아이였던 오월이를 만난다. 이때는 이렇게 춤추며 노래했구나, 이런 역할놀이를 즐겼었네, 웃는 얼굴이 이렇게 예뻤네. 아이구 많이 컸네. 혼자 시간여행을 떠나 추억 속을 거닐며 나지막이 혼잣말을 한다.
요즘 내 사진첩은 분기별 뒤통수 컬렉션으로 가득하다. 뒤통수에는 눈이 안 달렸으니 몰래카메라를 찍어도 모르겠지. 사춘기 오월이를 말없이 고이 보내지 못하는 애달프고도 지독한 짝사랑이다.
3/4분기와 4/4분기의 뒤통수
하지만 사진 한 장에 그저 과거만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오늘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까이에 있는 것인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도 여전히 사진 속 아이가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오늘의 아이는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으니.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다는 한용운 시인도 님이 침묵하고 잠수 탄 썰을 시로 남겼으니, 나도 끄적끄적 이렇게 뭐라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