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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우 Dec 20. 2023

매몰되지 않기

집착과 몰입 그 사이

요즘 같은 시대에 살면서 가져야 할 중요한 자세 중 하나는 ‘매몰되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요. 매몰되지 않아야 함을 절실하게 느끼는 이유는 내가 나고 자란 환경에서 익숙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고 체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시 여기거나 근본적인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니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몰’됩니다.

‘매몰’이라는 표현은 사실, 관용적으로 종종 쓰이지만 국어사전에 정의되어 있는 맥락은 사전적인 본래의 뜻(’ 파묻히다’는 뜻으로)만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건이나 현상 혹은 가치나 인상 따위에 ‘매몰’ 된다고 표현할 때, 부정적인 표현으로 쓰곤 합니다.


돈이라는 가치

한국사회에 가장 흔하게 매몰되는 가치 중 하나라면 단언컨대 돈일 것입니다. 시사상식을 다루는 유튜버인 슈카월드에서도 비슷한 주제를 최근에 다뤘습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유의미한 가치로 다루는 1순위가 ‘돈’이라는 설문결과가 나왔습니다. (좀 더 정확히는 미국의 Pew 리서치 센터에서 2021년에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기원합니다.)

여러분도 그런가요?

종종 고액 연봉을 받는 프로 스포츠 선수의 소식을 다루는 뉴스기사나 커뮤니티에 보면 그깟 공놀이나 게임 따위로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번다는 것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 보입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무의식적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액수가 지닌 상징성에 몰입한 나머지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방어기제를 저마다 표출해 봤을 겁니다.

‘돈’이라는 가치가 왜 한국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치인지는 사회인류학적 고찰과 탐구가 필요한 일이니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떠나서 애당초에 ‘돈’이라는 가치 자체는 중립적입니다. 단순하게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이 듭니다.

주목하는 부분은 보통 부정적인 부분입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무엇이든 지나치면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배금주의나 황금만능주의 같은 현상은 ‘돈’에 적당함을 경계하지 못해 나타난 부작용입니다.


통제 가능한 것과 통제 불가능한 것

매몰되지 않는 것의 또 다른 동의어는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바라보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거나 매몰되지 않는 것이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말은 아주 오래 전인 그리스의 스토아학파 학자인 ‘에픽테토스’의 <편람>에서 나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애쓰지 마라"


간단하면서도 명쾌합니다.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의 구분은 간단합니다. 대개 스스로 행하는 행동이나 생각 따위가 통제할 수 있는 범주에 놓입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타인의 행동이나 생각, 현상이나 인상은 통제할 수 없는 편에 속합니다.

다시 돈 이야기로 돌아와 봅시다. ’ 돈’이라는 가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결국 ‘돈을 얼마나 많이 벌 수 있냐’는 질문과 동일합니다. 좀 더 정확히는 ‘돈을 많이 번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많은 돈을 버는 것 혹은 많은 자산을 가지는 것’을 과연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사실 돈을 적게 벌고 많이 버는 것을 순전히 개인의 통제의 영역으로 볼지 이야기를 하자면 상당히 논란이 많을 만한 주제입니다. 맞다/틀리다 류의 완전히 이분법적 사고로 나눠서 답할 수 있는 명제도 아닙니다.

어떠한 측면에서는 개인의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성취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겁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을 게임이나 경쟁 혹은 스포츠라고 치면, 어떤 한 가지로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그 방법과 길이 무수히 많은데, 시작의 조건은 모두가 다 다릅니다.

흔히 야구에 비유할 때 누군가는 3루에서 시작하는가 하면, 1루에서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고 비유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는 정확한 비유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마치 고산을 등반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오르는 산의 크기와 모양이 무수히 많고, 모두가 등반을 원하는 산도 다 다르고, 산을 오르기 위해 시작하는 위치도, 장비도, 체력도 다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하나의 기준으로 잡기도 어렵습니다.

현실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복잡한 법과 제도, 사회 현상과 경제의 상황, 지리적/지정학적 혹은 문화적 환경 등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기에 개인의 통제 가능 여부를 판단하기엔 복잡합니다. 그렇지만 여태껏 제가 학습한 지식과 살아온 경험과 환경, 그리고 약간의 소신으로 판단해서 통제 여부를 내리자면, 저는 통제가 어렵다는 쪽에 더 손을 들고 싶습니다. 물론 온전히 ‘돈’을 통제를 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위의 가정인 ‘돈을 많이 버는 것’의 기준으로 봤을 때입니다. ‘버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의 기준으로 보면 이야기는 또 다를 것입니다.

‘버는 것’의 관점으로 본다면 언제나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는 가치는 아닙니다. 때때로 의도하지 않은 정반대의 결과를 맺기도 하고, 예상이나 예측만큼의 결과를 보여주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순전한 투자나 노력의 양에 항상 비례하거나 어떤 특정한 상관관계로 설명할 수 있는 수식이나 모델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튼 그래서 “‘돈’이라는 가치는 개인이 통제하기 어렵다”라는 하나의 가정을 통해 보면, ‘돈’에 매몰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저와 다르게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관점으로 본다면, 전혀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행여 그러면 목매달지 말고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아가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으니, 그렇게 하려는 노력은 무의미하다! 식으로 단정 지으며 합리화하는 것처럼 들릴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통제할 수 없으니 시도조차 말아야 한다라는 뜻은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그럼에도 여전히 ‘돈을 많이 버는 것’을 갈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몰’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돈을 넘어서 매몰되는 것 그 자체에 대해

우리는 어떤 한 가지 기준과 창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돈’이라는 가치가 언제나 앞설 것 같지만, 항상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돈이 아니라 다른 가치에 집중하라는 되지도 않는 설교를 하고 싶어 이 글을 쓰려하지 않았습니다. ‘돈’이든 ‘가족’이든, ‘직업’이든, ‘건강’이든 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가치는 없습니다.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우선순위를 나눌 뿐입니다. 전혀 필요하지 않은 가치인가 과연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을 겁니다. 무심코 지나칠 뿐이지 결핍될 때 비로소 깨닫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니체의 어록 중 괴물과 싸우는 중에 자기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하나에 매몰되면, 그 이외에 것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무심해집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


사실 어떻게 보면 ‘매몰’은 ‘몰입’ 혹은 ‘집중’은 한 끗 차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매몰’은 ‘고립’과 ‘집착’과도 어떻게 보면 별다를 것이 없다는 것도 유념해야 합니다. 매몰되었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거나 파멸적인 결과를 보지 않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는 모든 낙진들을 평온하게 견뎌낼 수 있는가입니다. 때때로 자신이 매몰되었다는 것을 자각할 때즈음이면, 한 번쯤 환기를 시켜줄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바라보는 지금 대상에 ‘집착’하는 건지, ‘몰입’하는 건지 아니면 ‘매몰’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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