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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지프스 Aug 10. 2023

[0] 왜 청년정치에 대한 책을 쓰는가

[Prologue]

"이번 비대위원 인선에서 가장 젊은 분,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 새로운 길을 가는데 큰 역할을 해주실 것으로 기대한다."[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대표, 이준석 등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확정하며]
"여러분이 중심이 돼 많은 청년을 끌어들여, 그들과 함께 많은 입법과제 만들어 민주당이 청년의 희망임을 증명해 달라."[2012년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 김광진·장하나 등 청년비례대표 후보 4명 확정 당시]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활용한 청년 끌어올리기 전략>


2012년 제19대 총선, 청년정치 신드롬이 시작됐다. 처음엔 그럴듯해 보였다.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전면에 앞세우는 장면에서 참신함과 신선함이 돋보였고, 청년의 이야기를 정치권에 다이렉트로 전달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지켜보는 이들에게 기대감을 갖게 했다.


이후 청년세대를 정치권의 전면에 앞세우는 방식은 10년 넘게 반복됐다. 청년을 끌어올려 국회의원 자리를 주거나, 비상대책위원이나 최고위원 자리를 주는 방식이었다. 2020년 총선에서는 심상정이 류호정을, 2022년 대선에서는 이재명이 박지현을 끌어올렸다.


기성세대가 청년을 끌어올린 건 선거에 도움될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시작은 2012년 총선이었다.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30 투표율 상승은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주요 변수로 떠올 

랐다. 그 결과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에서는 이준석을 비상대책위원으로 끌어올렸고, 야당이었던 민주통합당에서는 30대인 김광진과 장하나를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켰다.


한편으로는 위기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역대 국회의원 평균 연령은 17대 국회를 기준으로 급격히 상승했다. 정당명부 비례대표 제도가 처음 도입된 17대 국회(2004)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의 평균 연령은 50.8세였다. 하지만, 이후 18대 국회(2008) 53.2세, 19대 국회(2012) 54.5세, 20대 국회(2016) 55.7세로 갈수록 고령화됐다. 비례대표를 포함한 전체 당선인 연령도 17대 국회(2004) 51세, 18대 국회(2008) 53.7세, 19대 국회(2012) 53.9세, 20대 국회(2016) 55.5세로 마찬가지다. 나라 전체의 고령화 속도보다 정치권의 고령화 속도가 더 빠른 것처럼 느껴졌다. “정치가 늙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청년들을 끌어올렸을 수도 있다.


<한국일보, '아프니까 청년정치다?' 기획기사 中>


청년정치는 지난 십여 년간 정치권의 화두였다. 그 과정에서 20대를 보낸 필자 역시 청년정치에 대한 꿈을 꿨다. 청년들이 정치를 주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청년에게 의석을 할당하는 정당들이 늘어났고, 이전보다 더 많은 청년들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런 추세는 최근까지 이어졌다. 제8회 지방선거(2022년)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광역·기초 의원 후보자의 30% 이상을 청년과 여성으로 공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청년을 끌어올려 정치적인 이득을 취하려 했던 기성세대의 전략은 심각한 병폐를 야기했다. 첫째, 청년들의 자생력을 빼앗았다. 인형뽑기하듯 청년을 끌어올리는 모습을 본 청년 정치인들은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거나 새로운 의제를 던지기보다 그럴듯하게 자신을 꾸며 청년할당을 줄 곳을 기웃거리고 있다. 둘째, 청년을 기성세대에 종속시켰다. 본인이 실력이 아닌, 마케팅 차원에서 끌어올려졌기 때문에 그 청년들은 본인들을 끌어올린 기성세대와 다른 이야기를 할 자유를 잃었다. 셋째, 준비되지 않은 채 끌어올려진 청년 정치인들은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렸고 소속 정당에 큰 타격을 주기도 했다.


기성세대의 전략이 실패한 것은 기성세대만의 책임은 아니다. 청년들의 단물만 빨아먹고 버리려던 기성세대와 입 벌리고 감 떨어지길 기대하던 청년세대 모두의 책임이다. 하지만, 청년 전략 실패의 책임을 물어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기성 정치인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선거전략 차원에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기성세대가 청년팔이에 나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실 있는 청년정치를 만들기 위해

지난 십여 년간 청년들의 정치는 실패했다. 필자가 속한 세대인 80~90년대생들은 눈앞에 놓인 기회를 누리지 못했다. 청년 정치인들은 단 한 명의 기성 정치인도 대체하지 못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던 청년들이 간혹 있긴 했으나, 본인이 속한 세대나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해내지 못했다. 그 대신 자신만의 정의에 취해 선악을 판별하는 재판관을 자처하기도 했고,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온갖 퍼포먼스를 구사하는 비호감 수집가가 되기도 했고, 많은 기회와 특혜를 누렸지만 분을 못 이겨 주화입마에 빠지기도 했고, 정치적 고립을 자처하며 외딴섬이 되기도 했다.


청년들의 정치를 보고 공허하다고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청년이 정치를 해야 한다”라는 구호만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세대교체에 대한 요구는 많이 봤지만 설득력 있는 근거를 보진 못했다. 청년들이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2030 인구 비율에 비해 2030 국회의원 비율이 적지 않냐”는 식의 주장이 대부분이었다. 왜 청년이 정치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청년세대가 기성세대보다 정치를 잘할 수 있는지, 어떻게 청년들이 새로운 의제를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보기 힘들었다.


청년정치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내실 있는 청년정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썼다. 이를 통해 정치에 입문하려는 학생들, 청년정치에 막연한 환상을 가진 청년들, 막 정치권에 발을 디딘 주니어들, 갓 

국회에 들어온 인턴들에게 현실정치를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현실정치에 대한 청년들의 오해를 풀고, 허공에 떠다니는 청년정치를 땅에 발딛게 해주고 싶었다.


필자는 정치권 언저리에서 10년을 살았다. 책을 쓰고 돌아보니, 필자는 책에 쓰인 것과 정반대로 살았다. 막연한 분노로 세상을 바라봤고, 화를 내면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 나만의 옳음을 추구하면 세상이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줄 알았고, 집회에 나가서 서 있으면 뭐라도 바뀌는 줄 알았다. 그게 정치의 역할인 줄 알았다. 청년세대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외쳤고,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의 정치적 지위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생각했 

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필자의 20대에 대한 반성문이다. 무분별하게 청년과 청년정치를 외쳤던 미숙했고, 부족했고, 어설펐던 지난날에 대한 반성문이다. 청년세대가 기성세대를 대체하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길 바라 

며 활동했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에 대한 후회이자 20대의 나에게 건네고 싶은 지침서이기도 하다.


간략하게 책의 구성에 대해 살펴보면, 1부에서는 류호정, 박지현, 이준석의 사례를 통해 끌어올려진 청년 정치인들의 사례를 분석했다. 그들이 펼친 정치가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살펴보며 기성세대에 종속되지 않 

는 길을 모색했다.


2부에서는 청년정치에 대한 문제점들을 살펴보고 청년정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정리했다. 청년이란 무엇인지, 청년정치가 무엇인지, 청년을 대변할 수 있는지, 청년들에게 의석을 할당하는 청년할당이 어떻게 청년정치를 망쳤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정치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3부에서는 청년정치가 마주한 장벽에 대해 말했다. 청년정치의 성공을 위해서는 평평한 운동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치혐오, 양강구도, 기성정당, 선거제도, 후원회, 정당, 교육 등에 대해 살펴봤다.


4부에서는 현실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옳고 그름의 잣대만 가지고 세상을 재단하려 드는 정치에 대한 비판과 민주주의, 자유, 권력, 전략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신의 진리만 고집하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믿었던 과거를 반성하며 정리했다.


5부에서는 청년 정치인들을 위한 진심 어린 조언을 담았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미래정치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더 나은 정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청년팔이 반복재생을 중단해야

일전에 정치발전소라는 시민단체에서 ‘이상한 나라의 선거기자단’ 활동을 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의 문제를 지적하는 글을 기고하는 대외활동이었다. 당시 관심 있게 선거를 지켜보다 알게 된 게 있다. 「공직선거법」의 맹점을 지적하는 언론 기사는 매년 선거 때마다 쏟아져 나오지만, 세상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년정치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다. 언론에서는 매번 선거 때마다 청년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청년 정치인들을 소환해 “너희들이 정말 힘들게 살았구나”하며 이야기를 듣고, “정치인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이 패턴은 10년째 반복재생되고 있다.


이 반복재생을 중단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관심을 두지 않고, 저마다 편한 방식으로 청년정치를 활용하는 행태를 바로잡고 싶었다. 언론에서 청년정치를 소비하는 방식도 식상했고, 정치권에서 생전 처음 보는 청년에게 청년세대의 대표성을 부여하는 것도 껄끄러웠고, 청년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며 할당에 목을 매는 청년 정치인들도 보기 불편했다.


청년정치의 핵심은 ‘반란의 성공가능성’이다. 청년 정치인이 기성 정치인을 이길 수 있다면, 청년정치를 둘러싼 대부분의 논란이 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청년 정치인은 기성 정치인을 이길 수 없다고 단정지어 생각한다. 그래서 투표 결과를 뻥튀기해주는 ‘가산점’이나 청년들이 잠시 정치인 직업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할당’ 같은 방안들이 해결책으로 거론된다.


필자는 청년 정치인의 ‘반란’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오히려 청년 정치인에게 특혜를 주는 방식들은 문제만 악화시킨다고 본다. 결국 “다수의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얻는다”는 정치의 본질로 돌아가 생각해야 하고, 청년 정치인들이 정치적인 경쟁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런 고민 없이, 특혜만 주면 자연스레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믿는 것은 게으른 상상일 뿐이다.


청년팔이가 반복될수록 세대교체는 요원해지고, 청년세대가 다뤄야 할 의제들은 사라지는 역설적인 정치 문화 를 바꿔야 한다. “왜 청년세대에게 정치적인 기회가 더 주어지지 않는가”라는 넋두리를 “청년세대가 기성세대를 몰아내고 세대교체를 이룰 수 있다”라는 자신감으로 바꿔야 한다. 


청년 정치인이 기성 정치인을 대신해 정치를 하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회의 연속성을 위해서라도 청년들의 정치는 필요하다. 그들이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지금과는 다른 정치 문화 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청년 정치인이 기성 정치인을 대체하는 세대교체는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미래는 정치가 늙어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견뎌내야 하는 청년세대는 분명 기성세대보다 더 강해야 하고, 더 정치적이어야 한다. 이 책이 청년정치의 공허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보충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필자의 작은 날갯짓이 세대교체를 앞당기는, 당당한 청년정치의 시대를 만들어낼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 「하지마라 청년정치」책의 서문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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