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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Aug 12. 2023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을 땐 그냥 고맙다고 말해 줘.

“진아야.”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잠깐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시계를 확인하니 밤 11시를 지나고 있었다.

남편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진아야, 나 정말 너무 배가 아파. 이제 정말 못 참을 것 같아. 어쩌지?”

“당신 낮에 화장실 가다가 쓰러진 것 기억나지? 당신 화장실까지 갈 기력이 없어.”

“그럼 어떻게 해?”

“선택권이 없어. 이미 기저귀도 두 겹으로 입었고, 패드도 두 장 겹쳐 깔았으니까 문제없을 거야. 걱정하지 말고 그냥 봐야 해. 혹시 모르니까 바지를 미리 벗자.”

주위엔 3명의 환자가 잠을 자고 있었지만, 지금 남의 시선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나는 라텍스 장갑을 끼고, 물티슈에 검은 봉투를 들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나는 할 수 있어. 이런 건 별일 아니야.’


“아으으윽”

끙끙 앓는 소리가 계속됐고, 평생 맡아보지 못했던 냄새가 병실에 퍼져나갔다.

“다 봤어?”

“다 본 것 같은데, 뭔가 잘못된 것 같아.”

밝은 처치 등을 켜고 남편 주위를 확인했다.

검은색 묽은 반죽이 남편의 허벅지를 타고 허리부터 무릎까지 번져나가 침대 매트를 적시고 있었다.

물티슈를 가득 뽑아서 정신없이 검은 반죽을 퍼다 검은 봉투에 담았다. 

담아도 담아도 끝이 없었다.

물티슈 한 통을 다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나 얼른 물티슈 사 올게.”

편의점으로 달려가 물티슈 한 통을 계산하다 옆 즉석식품 코너에서 인기가요 샌드위치를 집어 들어 같이 계산했다.

하루종일 먹지 못해서 그랬을까?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기 힘들었다.

‘정신 차리자!’

물티슈로 남편의 몸과 주변을 겨우 정리했다.

“당신아… 당신한테 이런 일까지 경험하게 만들고… 너무 미안해.”

“괜찮아. 상호씨 배 아픈 건 이제 괜찮아?”

“응.”

“힘들지? 얼른 쉬어. 잘 수 있겠어?

“응. 이제 잘 수 있을 것 같아.”

남편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변이 묻은 매트를 들고 오물처리실로 갔다.


척추수술 전 남편은 딱딱한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너무 고통스러워했었다.

이불도 여러 장 깔아보고, 에어매트리스도 시도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참 고민하다 땀 많고, 잠자리를 가리는 우리 딸이 유일하게 꿀잠 자는 매트가 생각났다.

큰 고모부, 큰 형님, 설이는 차로 1시간 거리를 달려 매트를 가져왔다. 

그리고, 특별한 선물도.

“엄마, 아빠를 위해 내가 아름다운 요리를 했어.”

“그리고, 약초도 캤지. 꼭 아빠한테 전해줘야 해. 알았지?”


설이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상통화가 왔다.

“아빠, 내가 만든 화전 어땠어?”

“너무너무 맛있었지.”

“내가 캔 약초는 어떻게 먹을 거야?”

“한 입에 와구와구 꿀꺽할 건데.”

“으~ 쓰겠다.”


딸이 쓰던 매쉬 매트와 베개를 깔아주자 그때서야 남편은 잠이 들었다.

그 매트리스는 이제 검은색 변으로 엉망이 되었다.

매트에 비누를 묻혀 박박 문지르자 검은색 얼룩이 조금씩 지워져 나갔다.

손으로 모든 얼룩을 지워낸 후 건조기에 집어넣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앞으로 50분’

남편 곁으로 돌아오니 남편은 눈을 뜨고 있었다.

“왜 안 자고 있어?”

“나 너무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그럼 죽 좀 데워 올게. 조금만 기다려.”

죽을 데워 남편 침대로 오니 남편 침대 앞에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눈썹이 진한 정형외과 선생님과 그 옆에 쌍둥이처럼 닮은 안경 쓴 선생님이 서 있었다.

“실밥 뽑으러 왔어요. 옆으로 누워볼래요?”

30개 남짓한 두꺼운 스테이플러 침 같이 생긴 금속이 등뼈를 따라 철길처럼 박혀있다.

핀셋으로 하나씩 떼어내는 동안 남편은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참아냈다.

하얗고 매끄러웠던 등에 주위 피부색과 이질감이 드는 튼살처럼 생긴 두껍고 긴 줄이 생겼다.

정형외과 선생님이 자리를 뜬 이후에도 남편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등이 너무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어.”

“매트가 없어서 힘들어?”

“응”

“조금만 기다려. 이제 곧 건조 다 되어가.”

“그게 지워졌어?”

“그러게. 역시 육아는 장비빨이야. 아이 용품이 잘 나와서 그런가 봐. 너무 쉽게 지워지더라고.”

“정말 다행이다. 나 그 매트 없으면 너무 힘들거든.”

“알지. 조금만 기다려.”

남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당신아… 정말 미안해.”

“상호 씨,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을 땐 그냥 고맙다고 말해줘.”

“알았어. 고마워.”

“그래, 쉬어.”

건조된 매트를 다시 남편 침대에 깔았다.

“정말 감쪽같네? 너무 좋다. 너무 고마워. 이제 잘 수 있을 것 같아.”

남편은 곧 잠이 들었다.

새벽 1시. 

보호자매트에  털썩 주저앉았다.

식은땀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손이 떨렸다.

검은 봉투에 구겨져있는 샌드위치를 꺼내 물도 없이 허겁지겁 씹어 삼킨 후 나도 몰래 잠이 들었다.



아침은 어김없이 밝아왔다.

“설상호 환자분. 검은 변을 봤다고 들었어요. 음… 검은 변은 위에 출혈이 있다는 얘기인데… 내시경검사를 통해 출혈이 멈췄는지 아직도 출혈이 진행 중인지 확인해봐야 할 것 같네요. 출혈이 있다면 내시경을 하면서 지혈이 이뤄질 거예요.”

“갑자기 위출혈이 왜 일어난 거죠?”

“항암제는 암세포처럼 빨리 분열하는 세포를 공격하는데요, 체세포 중 빠르게 분열하는 두피세포, 입안의 구강세포, 위장의 내벽 세포도 공격하기 때문에 출혈이 발생할 수 있어요. 내시경을 통해 결과를 한 번 보죠.”


잠시 후, 사우 님이 남편의 침대를 끌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남편은 많이 지쳐 보였다.

“상호씨 괜찮을 거야. 우리 지난번에도 내시경 했었잖아. 내가 문 밖에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응.”

내시경실 문이 닫히고, 대기실에 남아 내시경 진행 상황을 LED 화면으로 확인했다.

기분 탓일까? 먼저 들어간 환자들이 남편보다 빨리 회복실로 이동한 것 같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일까? 혈액응고 수치가 안 좋은데 지혈이 잘못돼서 출혈이 멈추지 않는 것일까?

며칠 전 MRI실에서 코드블루 상황이 발생해 방송이 나왔던 것이 생각났다.

불길한 생각에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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