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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Aug 18. 2023

당신 몸무게는 내가 지킨다

“어떻게 아픈데?”

“음, 뭔가 큰 덩어리나 물을 꿀떡 크게 삼킬 때 식도가 찢어질 것 같이 아파.”

침 삼키기도 힘든 상태가 되자 식사를 죽으로 변경했다.

꿀떡 삼키지 않기 위해, 반수저의 양을 천천히 먹다 보니 쉽게 배가 불러 먹는 양이 1/3로 줄었다.

그리고, 죽과 함께 나오는 죽 반찬이 입맛에 맞지 않아 거의 손도 대지 못했다.

“상호씨, 입맛에 안 맞아도 조금씩 반찬을 먹어야 해. 이렇게 못 먹으면 영양실조에 걸릴 수도 있어.”

“아는데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아.”

이제 겨우 걷기 시작하고, 다리 근력도 조금씩 키워가는 중인데 이대로 식사를 못하게 되면 급격히 몸 상태가 나빠질 것이 분명하다. 다음 주에 항암 2회 차 시작해야 하는데 지금 몸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다음 항암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오전 회진 시간, 권교수님께 남편의 상태를 설명하자,

“아무래도 방사선 후유증인 것 같습니다. 식도를 보호할 수 있는 약을 처방해 줄 순 있지만 사실 방사선으로 인한 식도염은 치료제가 없어요. 그저 식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이 증상이 얼마나 지속될까요?”

“사람마다 다르긴 한데… 방사선으로 인한 식도염은 2주에서 6주까지 지속되는 경우가 있어요.”


결국 후유증이 끝날 때까지 그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항암 날짜는 1주일 앞으로 다가왔고, 만약 식도염으로 잘 먹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져 지금보다 몸 상태가 나빠지면 어떻게 될까.

지난번 항암 받았을 때 일어났던 일들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최소한 지금 몸 상태는 지켜야 한다.

‘삼킬 때 고통이 덜하고, 입맛을 돋울 수 있는 음식을 찾아야 해.’

어플을 켜서 반찬가게 중 리뷰 많은 순으로 검색을 했다. 

그리고, 부드러운 두부로 만든 요리나 단백질이 풍부한 흰 살 생선 반찬이 다양한지 체크했다.

한 반찬가게를 찾아냈고 위치도 병원 아래 큰길 건너 3분 거리에 있어 가까웠다.

“상호씨 조금만 기다려. 당신 몸무게는 내가 지킨다.”


남편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병원 건물 밖으로 나왔다.

일상이 멈춘 사람들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계인 8차선 도로를 건너 인파들 사이로 들어갔다.

나는 여전히 검은색 상의에 검은색 바지, 검은색 샌들을 신고, 검은색 에코백을 들었다.

에코백은 작년 겨울 파리 출장 갔던 언니가 ’ 셰익스피어 서점’에 들러 책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사다 준 것이다. 나는 이 에코백을 받았을 때 동네 카페에서 책 읽을 때나 들고나갈 줄 알았다.

낯선 도시의 처음 가보는 반찬가게에 가면서 맬 것이라고는 그 당시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에코백은 파리에서 길을 떠나 서울의 한 골목길 반찬가게까지 왔다. 

마치 남편과 나처럼.


도넛, 햄버거, 치킨, 샌드위치 등 여느 번화가에 있을 법한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거리를 채우고 있다. 

생협 매장 옆 파스텔 계열의 따뜻한 초록색 간판의 반찬가게가 나타났다.

가게 앞 매대엔 여러 종류의 뻥튀기가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중 하트모양 뻥튀기는 설이가 토끼 같은 앞니가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즐겨 먹던 것이라 반가웠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자 양쪽 벽면 전체가 냉장고로 되어 있었고, 왼쪽엔 조림과 나물이 오른쪽엔 김치와 샐러드가 진열되어 있었는데 얼핏 봐도 신선해 보이는 반찬들로 가득하다.

정면 오픈 주방 앞 테이블에서는 금방 만들어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짭조름한 고등어조림과 큼지막한 감자가 들어간 닭볶음탕을 개별 용기에 담아내고 있었다.

‘여긴 볼락 구이가 다 있네?’

하얀 속살이 두툼한 볼락이었다.

나는 생선 비린내가 거의 안 나는 볼락구이와 부드러운 계란말이를 바구니에 담아 계산대 앞으로 갔다. 주인아주머니는 명함 크기의 10칸으로 나뉜 포인트 카드 한 군데에 도장을 찍어 내밀었다. 내일 또 오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지갑에 잘 챙겨두었다.

에코백엔 책 대신 반찬이 담겼다.


병실로 돌아오니 남편은 힘 없이 누워있었다.

나는 반찬 하나하나 보호자 매트에 얹어 놓고 호객 행위를 시작했다.

“상호씨 이것 봐. 아니 반찬가게에서 볼락구이를 파는 거 있지? 하얀 속살에 이 두께 봐. 장난 아니지? 그리고 이 계란말이 랩 위로 눌러봐. 폭신폭신하지? 정말 부드러울 것 같아. 어플 리뷰에 ‘추천’ 떠 있었어. 맛이 없을 수가 없다는 거지.”

“그래? 그럼 저녁식사 때 조금씩 맛 좀 볼까? 그런데, 나 하나도 못 먹을 수도 있어. 괜찮아?”

“일단 입에 넣어 봐야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알지. 걱정하지 말고 일단 먹어보자.”

저녁 식사시간 상호씨는 죽 반 그릇에 계란말이 1개, 볼락구이 반토막을 작게 잘라 오물오물 씹어 조금씩 삼켰다.

“오! 생각보다 덜 아파. 그리고, 너무 맛있어!”

오늘 처음 남편이 환하게 웃었다.

“당신도 먹어봐, 정말 맛있어.”

보기에도 좋은 반찬이 맛도 좋았다. 

아무래도 내일 또 그 반찬가게에 갈 것 같다.




밤 9시 병실 불이 꺼지고, 나는 남편 침대의 처치 등을 켰다.

그리고, 남편 귀에 대고 속삭였다.

“몸 뒤집어 봐. 당신 엉덩이 약 바르자. 어디 보자, 어? 드디어 오늘인가?”

항상 화가 나있던 팽팽한 붉은 살덩어리는 어느새 옅은 핑크색에 크기도 많이 줄어 있었다.

항문외과 선생님의 가르침을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 한 후 비장하게 라텍스 장갑을 꼈다.

상처 부위에 원을 그리며 살짝살짝 누르자 갯벌 위 튀어나와 있던 맛조개가 쏙 들어가듯 표면에서 사라져 버렸다.

치핵이 나온 지 12일 만이다.

“상호씨, 느낌이 어때?”

“어? 엉덩이가 하나도 안 아파.”

“그럼, 침대에 한 번 걸터앉아볼래?”

“오! 말도 안 돼! 하나도 안 아파. 역시 당신은 와~! 대단해.”

“내가 당신 살렸다. 잊지 마.”




방사선 횟수가 쌓여 갈수록 떨어진 식욕은 어떻게 노력으로 살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소화력도 떨어져 밥수저로 3큰술 정도의 죽도 소화시키지 못했다.

우려했던 바가 현실로 나타났다.

남편은 키 182cm 몸무게 62kg이 되었다.

1주일 만에 3kg이 줄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65kg로 되돌려야 한다.

식도염과 소화장애로 남편은 힘들어했고 짜증이 늘어갔다.

물도, 음식도, 약도 아무것도 입에 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상호씨, 암환자에게 체중이 줄어든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지? 그래, 당신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거 알아. 지금 식도도 많이 아프고, 먹은 것도 소화가 되지 않아 힘들지. 그런데, 이건 목숨이 걸린 일이야. 그러니까 나와 함께 더 힘내보자.”

남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호두호밀빵을 잘게 잘라 입 안에 물고 있게 했다.

침에 젖은 빵을 천천히 녹여서 삼키길 반복했고, 그렇게 한 시간 동안 4조각을 먹었다.

점심시간 한 시간 전 병원을 빠져나와 반찬가게에서 갈치구이를 사 왔다.

부드럽고 짭짤한 갈치살과 흰 죽이 입맛에 맞았는지 죽 반 그릇을 먹었다.

문제는 약국에서 상담받고 구매한 비타민이었다.

정상세포를 활성화시키고, 암이 살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 준다고 했는데, 남편은 도저히 약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상호씨, 당신 같은 경우 항암만 해서는 건강이 회복되기 어렵다고 했잖아.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도저히 목으로 삼킬 수가 없어… “

남편의 목소리가 떨렸다.

오후부터 흐렸던 하늘에 천둥이 치고 순식간에 회색 건물과 초록색 나무가 하얗게 사라졌다 나타났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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