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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모순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사람들이 물건을 사용할 때는
그 물건 속에서 상징적 의도를 찾지 않지만,
그림을 볼 때는
그 용도를 찾을 수 없고  
회화를 접하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의미를 찾게 된다.
사람들은 편안해지기 위하여
 의지할 만한 것을 원한다.
안전하고 매달릴만한 것을  원하고
그렇게 하여 공허함에서 자신을 구할 수 있다.
상징적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본질적인 시적 요소와 이미지의
신비함으로 간과하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신비함을
 감지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떨쳐 버리고 싶어 할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라고 물음으로써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만약
신비함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완전히 다른 반응을 할 것이다.
 다른 것을 묻게 될 것이다.

-수지 개블릭(Suzi Gablik), <르네 마그리트>중에서-






그림(왼),<The heartstring>,1960/Pinterest그림(오) <The cut-glass bath>,1946/조선일보



꿈이 깨어있는 순간들의 또 다른 형태라면,
깨어 있는 순간들도 꿈의 다른 형태이다.
-르네 마가리트-




셔벗 같은 구름 한 스푼 떠먹고 싶어 집니다. 유리잔과 구름, 그리고 산과 강이 있는 풍경인데 마그리트의 작품 앞에 서면 당황스럽습니다. 마치 소인국 사람이 되어  거인국 사람이 깜빡 잊고 간 사물 하나를 보며 '이것이 어디에 쓰이는 물건 인고?' 하며 짱구를 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리잔이 있어야 할 장소가 깔끔한 식탁 위가 아니라 구름 밑이라서 흠칫합니다. 누구나 쉽게 접하고, 느끼며, 볼 수 있는데, 있어야 할 장소에 있지 않고 엉뚱한 곳에 있으니 눈이 낯섭니다. 이처럼 어떤 사물을 본래의 위치에서 떼어내 다른 맥락이나 상황에 놓아 충격 효과를 내는 것을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이라고 합니다. 일명'낯설게 하기'입니다. 르네 마그리트만의 독특함이지요.



 저의 이런 낭만적인 상상력과 상관없이 이 그림을 그리던 마그리트 부부의 상황은 위기였습니다.  마그리트가 후원자와 고정 팬층이 생기면서 경제적 여유가 따라왔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일했 던 상업적인 디자인을 그만두고 예술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로 인한 성과 중의 하나가 1938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전시였습니다. 그곳에서 마그리트는 매력적인 초현실주의 예술가 쉴라 레그(Sheila Legge:1911-1949)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젊고 아름다웠고 지적이었습니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을 비롯한 수많은 남자가 그녀에게 반했습니다. 마그리트도 그녀에게 매력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오해도 있었습니다. 당시 정황을 분석한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마그리트는 단순히 그녀의 예술에 대해  칭찬을 한 것뿐이었다고 합니다.



정작 벨기에에 머무르던 아내 조르제트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의 절친 중 한 명인 시인 폴 콜리넷과 함께 살고 싶다며 마그리트에게 이혼을 요청한 겁니다."아내를 잘 돌봐달라'라고 부탁한 것을 친구가 너무 충실히 수행했던 모양입니다. 마그리트는 운명의 사랑이었던 아내 조르제트를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용서한다며 가정으로 돌아오라고 끈질기게 설득도 했습니다. 아내는 마그리트에게 결국 돌아왔고 그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했습니다. 1967년 췌장암으로 마그리트가 떠날 때까지 말입니다.



<심금, 1960>이라는 작품 제목처럼 아내에게 선물한 그림입니다. 하지만 둘 사이의 소중하고 애틋한 뭔가는 이미 사라져 버렸습니다. 늘 그림의 모델이 돼주던 조르제트는 더 이상 마그리트를 위해 포즈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마그리트는 아내의 그림을 그렸지만 기억 속에 있는 조르제트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둘 사이의 사랑의 불꽃은 이미 꺼져버린 거지요. 제게는 말랑말랑한 솜사탕 같은 저 구름이 그에게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불가능한 꿈을 꾸고 난 후 느끼는  씁쓸한 구름 한 뭉치 같습니다. 






20세기 들어서며 미술에 불기 시작한 최고의 혁신은 특정한 운동, '이즘(ism, 주의)'의 등장입니다. 입체주의, 미래주의, 구성주의. 표현주의 (청기사파와 다리파), 다다이즘, 그리고 초현실주의 등등  한 번쯤 들어 봤음직한 용어들로  무수히 헷갈립니다. 현대미술을 주도했던 '이즘'은 20세기 초에 집중적으로 등장합니다. 공통된 사상에 뜻을 모은 화가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작품 활동에 이론을 도입하고 미술의 변화를 가속화시키는 담론을 이끌어냈다는 얘기지요.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우리의 삶이 이성에만 너무 초첨이 맞춰져 살아왔던 걸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의 상상력을 통해서 어떤 환상, 무의식과 같은 인간의 균형을 한 번 다시 시도해 보자 해서 등장한 사조가 초현실주의입니다. 전쟁 이후 기존의 것에 반발하여'파괴'에 포커스를 두었던 다다이즘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낍니다. 그들의 예술 파괴운동을 수정, 발전시키고 비합리적인 잠재의식과 꿈의 세계를 탐구하여 표현의 혁신을 꾀하고자 합니다. 




 초현실주의 예술의 중심은 파리 문필가인 브르통, 아라공, 에드와르, 아르쿠르에 의하여 구성됩니다. 그 중심적 내용은 꿈과 욕망의 세계를 해방시킴으로써 예술과 삶을 새롭게 하는 것이었지요. 이를 위해 "자동기술법(aitp, atos)을 채택하게 되고요. 가장 힘든 것은 자동기술법적 과정들이 조형 예술가들에게는 가능성의 한계로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화가들은 그들의 회화작업의 중요성 원천으로서 프로이트적 무의식의 세계를 충실히 반영합니다.










그림(왼),<The Antipope>,1942/Indiepost  그림(오),

그림(오)<Dream Caused by the Flight of a Bee around a Pomegranate,1944>/wikipedia




그림 (왼) 막스 에른스트(Max Ernst,1891-1976)는 초현실주의 작가로, 그의 그림은 현실세계의 기존 규칙을 깨뜨리고 환상적인 세계를 창조합니다.  3D에 나올 법한 게임 캐릭터 같지요. 기계적 요소를 결합하여 고요하고 동시에 놀라운 이미지를 형성합니다. 감각적 상상력과 상징적 표현을 강조하는 것이 그의 그림의 특징입니다.



8명의 뮤즈들이 그의 그림 속을 거쳐 갑니다.  < The Antipope> 작품은 그의 다섯 번째 연인이었던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과 관련이 있는 작품입니다. 당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 바람의 신부 캐링턴은 등을 보이며 새의 대장 막스를 떠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영국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 불어 가정교사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공부를 했을 정도로  초 현실주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높았습니다. 막스 에른스트가 가장 아꼈던 여인 같아요.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둘의 운명이 꼬이거든요. 전쟁으로 위기감을 느낀 예술가들은 하나둘씩 짐을 싸 미국 뉴욕으로 향합니다. 독일 출신 막스 에른스트 이외에도 앙드레 브르통, 마르셀 뒤샹, 오스카 도밍게스 등 초현실주의 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유럽에서 건너 간 수많은 예술가들  덕분에 미국 뉴욕이 예술의 새로운 성지로 부상하게 됩니다.







인간의 숨어있는 무의식에 대한 탐구를 주창했던 프로이트는 초현실주의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살바도르 달리 역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요. 프로이트에 대한 그의 관심은 단순히 예술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신적 불안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통해 극복하려 했습니다.




그림(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의 그림은 초 현실적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딱 봐도 꿈을 그려 낸 달리 그림인 줄 아실 겁니다. 석류에서 물고기로 다시 포효하는 호랑이로 , 다리가 엄청나게 긴 코끼리도 지나가고, 벌러덩 누운 여인의 누드, 그리고 둥둥 떠다니는 사과까지... 꿈속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기억 속에 있는 다양한 사물과 사건들이 비논리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실제 형상은 왜곡되고요. 나타나는 사물은 논리적 영속성이 없으며, 꿈속의 공간과 시간 역시 현실과는 다릅니다. 꿈속에서 사물에 대한 집착과 콤플렉스가 환상적인 이미지로 그대로 표현됩니다. 

달리는 이러한 꿈의 속성을 자신의 작품 속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름>,1939/Pinterest




르네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자로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달리(Savador Dali)나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 같은 초현실주의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는 꿈을 해석하여 그리지 않았거든요, 환각이나 몽상을 그리지 않았어요.  나무, 의자, 구두, 테이블, 창문 등 현실의 평범한 사물에 대한 의미를 다른 각도로 보여줍니다. 즉, 서로 연관 없는 사물을 논리로 뒤집는 단순한 방식으로 병치시킵니다. 현실세계가 어떻게 인지되는지를 탐구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사물을 보는 방법이나 절차에 대해 새롭고도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그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오브제를 엉뚱한 공간에 추방시키면서 관객들에게 낯섦을 주는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아마 이 때문에 그와 브르통 사이의 관계는 항상 미약했으며 거리감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도 완전한 결별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요. 또한 이 지점이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그를 구별 짓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창문의 개념으로서의 회화론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서구회화의 기원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하지만 초현실주의 작가 마그리트의 창문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많은 그림들에서 보이는 시각적 내용의 주제는 중재역할을 맡은 문 또는 창문입니다.  그 문을 통하여 실내와 실외 사이의 관계를 신비스럽게 합니다.




이런 기초 위에서 마그리트는 전이와 변형의 효과로서 그림을 제작합니다. 열린 문을 통하여 슬그머니 구름이 방 안으로 스며들기도 하고, 화병이 창문 안에서 풍경으로 변화되기도 하며, 창문 앞에 있는 그림이 창문밖에 보이는 정경의 부분으로 그림 안에 재현되어 대치되기도 합니다. 거울 같은 은유와 무한 대까지 연장될 수 있는 회화와 시각의 본성에 대한 끝을 알 수 없는 사색을 다루고 있고요. 그려진 그림 속 존재하는 대상들은 "동시에 방 안에서, 그림의 안과 밖에서, 실제의 풍경 안에서 그려진 풍경으로서 계속 존재하고 있습니다. 똑똑 노크하고 들어 온 구름 덕분에 빼꼼히 열린 문 사이로 바다를 보고 모래사장을 봅니다. 그저 그림일 뿐인 데 문틈사이로 삐집고 들어온 빛처럼 그곳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림 (왼)<The Song of Love>,1914/wikipedia 그림(오) <기억> /브레이크 뉴스





르네마그리트는 그 시대의 다른 여러 화가들처럼 처음에는 인상주의의 영향 아래에서 화가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됩니다. 점차 미래파 화가들의 작품, 특히 조로조 데 키리코의 작품에 큰 영향을 받으면서 그림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림(왼),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사랑의 노래>라는 작품으로 어둡고 탁한 건축물에 갑자기 나타난 석고상과 고무장갑 그리고 초록색 공까지 이런 이상한 조합과 심오한 분위기의 작품을 보고 마그리트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번뜩입니다. 마그리트에게 이 순간은 '유레카'였습니다. 그가 자주 사용한 기법은  "데페이즈망(depaysement)입니다. 프랑스어로 '추방'을 의미하고요.  사물을 익숙한 장소에서 낯선 장소로'추방'시켜 사물의 원래 쓰임새를 무너뜨린다는 말이죠. 전혀 관련 없는 것을 엉뚱하게 조합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 둠으로써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표현 방법입니다.

그림(오), 마그리트가 키리코 작품을 흉내 내 본 작품입니다. 













그림(왼) <길 잃은 기수>,1926/아트인사이트 그림(오)<이미지의 배반>,1929/Medium




벨기에서 마그리트는 전시회를 갖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초 현실주의에 대한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그림(왼) 쪽 작품의 <길 잃은 기수>처럼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에 대해 벨기에 보다 훨씬 호의적이라고 생각했던 파리로 떠납니다. 길을 찾기 위해서 말이죠.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 <이미지의 배반, 1929>입니다. 분명 그림에 있는 물체는 파이프임에도 불구하고 르네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궁금합니다. 아니 왜? 하면서 말이죠. 르네는 "이것이 진짜 파이프라면 당장 여기에 불을 붙이고 담배를 피워보아라."라고 말합니다. 그의 발언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당황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지요. 그는 미술의 본질과 사물의 본질에 대하여 말합니다. 이 작품은 파이프의 이미지를  그린 것뿐이지 아무도 이 그림을 가지고 담배를 피울 수 없다 라면서 말이죠. 현실과 묘사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차이를 강조하고 이미지는 현실이 아니고 환상일 뿐 조작된 것이라는 얘길 합니다.



이런 강력한 선언은 르네 마그리트의 모든 작품의 특성에 대하여 정확한 개념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확실하게 믿고 있는 대상들과 그것들의 이름과 의미와 기능에 있어서, 그 관계는 실제로 우리가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미약하다는 인식 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림(왼)<공동발명>/세이프 타임즈그림(오)디즈니사 '인어공주', 코펜하겐 항구 인어 동상/세이프 타임즈




마그리트의 작품 <공동발명(collective invention)>입니다. 개인적으로 충격받았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디즈니 만화나 코펜하겐에 세워진 조각상까지 봐온 터인데... 그리고 스땡땡의 커피 로고로도 쓰이는 반인반어 인어공주가 저 그림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이등분으로 토막 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게 뭐지?' 시댁 조카 3살짜리 에게 저 그림을 보여준다면 아이가 꼬집지 않아도 울어버릴 것 같았거든요. 전 지구인이 인어공주의 모습은 긴 머리 휘날리며 매력적인 여인으로  각인되어 있을 테니 말입니다.  



집단적으로 발명된 통념은  단순히 위치만 바꾸었을 뿐인데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버립니다. 따져보면 반인반어라 했으니 저렇게 구조가 바뀔 수도 있지요. 한 번도 저런 상상을 해 보지 않았고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살았기 때문에 더 당황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다시 봐도 썩 맘에 들진 않아요.



우리가 얼마나 고정관념에 지배당하며 살고 있는지 그림을 시처럼 생각하고 표현해 낸 철학자 르네 마그리트는 묻는 것 같습니다. 비 논리적이며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좀 더 주체적으로 세상을 좀 바라보며 살라고 말입니다.





그림(왼)<빛의 제국>,1948/www.peaceone.net  그림(오)<빛의 제국>,1953/www.peaceone.net




이처럼 밤과 낮이
 함께 공존하는 풍경으로부터
우리는 경이롭고
매혹적인 힘을 느낀다.
나는 이 힘을 시라고 부른다.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1967/www.peaceone.net




1948년부터 마그리트는 같은 주제의 변형으로 이루어진 10개 이상의 그림을 그립니다. 그 마지막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마감하게 되지요. 모든 작품은 <빛의 제국>이라는 공통의 제목이 붙여져 있습니다. 작품에 보이는 것은 창문 안에서 발산되는 빛이나 실외에 있는 하나 또는 여러 개의 가로등이 발산하는 빛에 의해 조명되는 잎이 풍성한 나무와 그 사이에 있는 집과 밀집된 건물뿐입니다. 



이상한 것은 하늘인데, 밝고 부드러운 구름으로 덮인 대낮의 푸르른 하늘이 캔버스 윗부분을 덮고 있습니다. 전기불빛이 주변을 밝히고 있는 밤풍경인데 말이죠. 의심스러워 다시 하늘 한 번 올려다봅니다. '깜깜한 밤인데... 어떻게 푸른 대낮의 구름이 떠있지?'이렇게 감상하셨다면 작가님은 예민한 관찰력의 소유자이십니다. 감상자가 주의 깊게 살필 때에만 인지할 수 있거든요. 현실에서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이질적인 두 요소가 모순이란 생각도 듭니다. 마그리트의 작품들 중 초현실주의 느낌이 더 나고요. <빛의 제국>이란 이름으로 17점의 유화와 10개의 구아슈 작품이 남아 있습니다. 1967년 췌장암으로 사망하시며 그의 <빛의 제국>은 릴레이를 멈춥니다. 








<금지된 재현>,1937/wikipedia




한 남자가 있습니다. 거울을 보고 있을 텐데 앞모습이 아니고 뒷모습만 보입니다. 섬뜩합니다. 개인적으로 공포영화 아닌데 히치콕 못지않은 음산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첫 느낌이 '무섭다'여서 그런가 봐요.



<금지된 재현>이란 작품입니다. 뒤통수만 보이고 있는 이 남자는 에드워드 제임스라는 영국사람으로 돈을 다발로 쌓아놓고 사는 수집가이자 마그리트의 후원자였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그림을 볼 때 ' 거울, 초상화, 책 한 권'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감상하시면 된다고 합니다. 



1937년 에드워드 제임스가 자신의 집에서 무도회를 열 예정이니 제단화 3개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자유의 문턱에서 >, <그려진 젊음>, <붉은 모델 3> 마그리트가 특별 주문한 그의 그림을 그려냅니다.  그리고 2가지를 더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데요. 그중 하나가 본인의 초상화였답니다. 그런데 의문이 가시죠?'이 작품이 제임스 초상화인지 어떻게 알아?'라고 말이죠. <자유의 문턱에서>라는 작품을 보고 있는 제임스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 증거물로 나옵니다. 



 

제임스가 나중에 책을 써요. 자신의 본명이 아니라 에드워드 셀지라는 가명으로요. 본인이지만 아무도 본인인지 알 수 없는 뒷모습이 자신의 당시  상황과 딱 떨어진 이미지의 책 표지가 된 거죠. 100년 동안 이름이 <금지된 재현> 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복제가 일어나며 유명해진 그림이라고 합니다. 






나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보다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






<The Son of Man>,1964/wikipedia

 





마그리트는 중절모와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의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똑같은 옷차림에 개성은 1도 없어 보이죠. 경직되어 있고요. 사과도 놓아 보고, 비둘기로 가려도 보고, 빵빵하게  부풀려도 봅니다. 궁금증도 함께 덩달아 커집니다. 무얼 의도한 걸까 싶어서 말입니다. 



마그리트는 어울리지 않은 사물이나 자연물을 합쳐 새롭게 하거나 크기나 위치의 변화를 통해 낯선 느낌을 시도합니다. 초현실주의 작가들만이 할 수 있는 엉뚱한 시도들이죠. 덕분에 관람객들은 고개를 갸웃 둥 하면서도 작가의 기발한 생각에 무릎을 탁 치기도 합니다. 친숙한 대상을 생소한 장소에 놓으면서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르 주죠. 상식과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깨지고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니까요. 대부분 튀고 싶어 안달인 예술가들과 달리 평범하게 살고 싶어 익명성을 지닌 중절모 신사들을 자주 그렸다고 합니다. 중절모를 쓴 익명성에 자신을 투영한 거죠. 우리 역시 그 익명성을 지닌 한 사람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작품에 기꺼이 투영할 수 있는 거고요.







초현실주의를 지나 현대의 미술은 대중으로부터 자꾸 멀어져 갑니다. 더 이상 위로를 주지 못하게 되고요. 대중들은 작가의 작품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가까이 다가가지만 알 수 없는 추상의 모습은 혐오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제 그림이 있던 자리로 연극, 영화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공간을 메우며 그림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진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멀어지는 대중을 다시 가까이 불러 모으기 위한 노력들이 어쩌면 붓을 들고 창작 활동을 하는 그들에게 주어진 현재의 숙제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일까요? 초현실주의 화가였지만 구상적 이미지를 유지하며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작품을 많이 그린 르네 마그리트의 독특함이 더 눈에 들어오나 봅니다. 일상이란 이름으로 오늘도 그의 작품은  다양한 분야에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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