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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뜬장 04화

미용견, 아름다움 뒤의 고통

뜬장

by 보나쓰

둥글고 부드럽게 다듬은 털, 깨끗하게 자른 발톱은 가지런했다. 작은 줄무늬 리본이 달린 케이프를 걸친 흰색 몰티즈가 주인의 품으로 파고들어 얼굴을 묻는다. 미용이 끝난 직후라 조금 지쳐 보이지만, 주인은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만족스럽게 쓰다듬는다. 손끝이 머리를 쓸 때마다 몰티즈의 눈이 부드럽게 감긴다.


그 모습을 보는데 가슴 한쪽이 쓰라린다. 엉킨 털과 오물을 뒤집어쓴 채 뜬장안에 갇힌 아이들을 동물보호단체가 구조하던 영상이 떠오른다. 배설물이 바닥에 말라붙어 있고, 통풍이 전혀 되지 않아 썩은 냄새가 가득할 듯한 공간. 물과 사료조차 제대로 급여되지 않아 지쳐있는 아이들이 있다. 문이 열리자, 몇몇은 바들바들 떨기도 하고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짖지도 못하고 웅크리고만 있는 모습도 보였다. 철망 바닥에 오래 갇혀 있었는지 발바닥의 살이 갈라져 있었다. 삶은 오간데 없다. 절망과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곳. 빛을 잃은 아이들이 숨죽여 꺼져가는, 미용견을 가둔 곳이었다.


나는 참혹한 광경 속으로 들어간다. 일회용 방역복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한다. 니트릴 장갑을 낀 손의 움직임과 기다랗고 검은 고무장화를 신고 걷는 걸음이 부자연스럽다. 탈취제를 뿌리면서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숨이 막히는 냄새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미용견이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잘 잘린 털과, 깨끗한 치아, 뽀얀 속살을 가진 아이들은 어디에도 없다. 무력감이 안개처럼 깔려 있다. 안개를 헤치고 더 안쪽으로 간다. 나는 그 안에서, 오늘의 미용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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