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있었다.
나는 그날 한 친구와의 손절을 결심했다.
그의 언행이 거칠었나? 아니다
그가 나에게 불친절하거나 무례했나? 아니다
그가 나에게 잘못을 하거나 타인에게 잘못을 저질렀나? 아니다
이제 10년이 넘은 인연에 해당하는 그, (이 글에서는 '기린'이라 하겠다.)
10년이 넘어서도 연락을 하는 인연이라고 한다면 참으로 친밀한 관계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왜 나는 나의 친구 기린과의 손절을 결심했을까?
너와 내가 다르고, 나에게 너가 안맞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서운한 점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는 나에게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우리가 다툼을 하거나 갈등관계에 빠진 것이 아니다.
내가 그에게 품고 있는 서운함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대화를 한다면 곧바로 풀릴 수 있을 수준의 잡음에 불과하다.
다만,
이날을 기점으로 나는 평소 은근히 느끼고 있던
'우리가 서로 다르고, 너와의 만남은 더 이상 나에게 즐겁지 않다'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느꼈을 뿐이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다른 관계들 또한 있기 때문에, 앞으로 너를 평생 보지 않을 것은 아니고, 내가 너를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더 이상 너를 위해서 나의 시간을, 너와의 만남을 위해 나의 돈을 쓰지도 않을 것이다.
즐겁지 않고 유익하지도 않은 시간을 위해서 더 이상 나의 자원을 쓰는 것을 멈추겠다.
그런데 나는 분명히 확신한다.
너, 기린은 너에 대해 내가 느낀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너는 나를 친구로서 굉장히 좋아하고 있고
그 증거로, 너는 나에게 자주 전화로 안부를 묻고
나에게 만나서 술을 마시자고 곧잘 말하곤 한다.
너가 생각하는 친밀한 관계 중에 한명이 나 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 나의 이런 마음가짐에 대해 너가 배신감을 느낄 수 있고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현재 나의 나이는 30대 중반,
어느 정도 인생에 대해서 감이 온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있다.
이성에 대한 애정과 다르지 않게,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러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느끼는 친밀감의 수준이 언제나 보답받는 것이 아니다.
너가 나에게 친밀감과 우정을 느낀다고 해서, 내가 너를 향해 같은 수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너는 우리가 정말 대화도 잘 통하고, 잘 맞는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다.
친밀한 우정을 가지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럴만하다. 내가 너라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기준에 맞지 않는 너의 모습을 매 순간 잡아내고 있다.
너의 행동
너의 말투
너의 주장
너의 성격
너가 하는 말들과 너가 보여주는 모습들
그것은 내가 너를 증오하거나 미워할만한 수준의 것은 전혀 아니지만,
나에게 피로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일상적 업무의 반복과 피로의 누적이 번아웃을 가져다 주듯이
나 또한 너라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번아웃이 왔다.
지금까지 충분히 견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너가 나를 위해 변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너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너가 '틀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는 '잘못'하고 있지 않다. 그냥 너일 뿐이다.
그런데 너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너와 나는 참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