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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즈민 Aug 09. 2024

본립도생[本立道生]

본립도생[本立道生]    

           

기본이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  

   

 TV를 보면 뉴스마다 연일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선수> 관련 내용으로 프로그램마다 패널들이 안세영 선수와 협회 이야기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22살 사회 초년생, 요즘 말하는 MZ 세대 어린 선수가 포효하고 있다.


모든 경기를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준결승부터 이길 때마다 지나치게 큰 목소리를 내고 관중을 향해 과하다 싶은 행동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보통은 승리했을 때 관중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다거나 간단한 손동작 표현으로 응원에 감사 표현하는 것이 전부인데 말이다.     


 안세영 선수는 중학교 3학년 (만 15세)부터 배드민턴 여자 단식 국가 대표에 최연소 선발되어 활동해 왔다고 한다. 타고난 능력과 지독한 노력이 더해져 세계 랭킹 1위의 선수이다.


그리고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여자 단식 금메달을 따면서 진정한 배드민턴 여제로 등극하였다. 무엇보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방수현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28년 만에 ‘셔틀콕 여왕’에 등극한 것이다. 기쁨과 행복을 느껴야 할 어린 선수는 대표팀과 배드민턴 협회에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며 대표팀 은퇴까지 시사하는 발언을 하였다.     


 이런 작심 발언은 왜 하게 되었나? 운동선수는 많은 대회에 참여하고 우승을 위해 강도 높고 힘든 훈련을 하게 된다. 늘 부상을 당할 확률이 높다. 안세영 선수 또한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힘줄이 끊어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어머니는 경기를 포기하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경험한 안세영 선수는 대표팀과 배드민턴 협회의 선수 관리와 보호, 소통 부재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호소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의 말에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꼭 금메달리스트가 되어야 했다. 안세영 선수는 부상의 고통을 딛고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가장 기쁘고 행복해야 하는 그 순간, 그 장소에서 자기의 소신을 밝혔다.     


 여러 이야기 속에서 진실과 왜곡, 협회와 어린 선수가 진실 공방을 펼치게 되었다. 이 모든 상황이 누구의 말이 맞든 틀렸든 간에 소통을 하려는 자와 귀를 막고 변명하려는 자.     


누가 더 잘 못하고 있는 것이지?     


 한편에서는 축제로 기뻐해야 하는 이때 찬물을 끼얹었다고 말하는 사람, 이런 불합리에 방관하는 사람,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     


 10년 전 나는 세 아이를 키우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되었다. 방과후 강사로 일하게 된 것이다. 오후 3시간 정도면 아이들을 케어하며 일도 할 수 있는 한마디로 금상첨화였다.     


새로운 나의 이름 워킹맘.     


 업무에 최선을 다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너무도 재밌었다. 자유롭고 창의력을 요구하는 수업이었기에 더욱 신나는 직업이었다. 그리고 전문직으로 앞으로 내 삶의 비전도 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부 비리는 심각했고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그 안에 사람들에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그래도 개인 보호를 위해 자세한 직업과 내용은 생략하겠지만 이런 일들은 영업을 위한 행동들임을 우선 표기하고 이어 간다.     


 물론 내가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영업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편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조직 안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다양한 소통 방식을 찾아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함께한 강사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업무에 있어 잘 못 된 부분을 지적했고 관련 일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런 이견을 낸 나는 집단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소외당했다.
 

 어느 날 회의가 있어 출근했다. 담당자는 앞으로 회의 참여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우리와 생각이 다르면 함께 갈 수 없다고 한다. 의견을 나누고 공감했던 동료들도 등을 돌렸다. 자신들은 지금 이 일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참는다고 한다. 모른척한다고 한다. 나는 그곳에서 6개월을 투명 인간으로 학기를 마무리했다.     

 

 그 곳을 나와 독립적으로 강사 활동을 했다. 그렇지만 수업에 쓸 재료도 그 업체가 독점하여 가져올 수 없었고 기관 면접에서도 경력자인 내가 아닌 신입 강사가 채용되었다. 정말 미칠 듯 미웠다. 그 후로 나는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현재 나는 그때와 비슷한 강사 일이지만 다른 분야 일을 하고 있다. 그때보다 마음이 편해졌고 미워했던 감정도 소멸된 것 같다. 어쨌든 그런 것 같다.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흘러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해탈하게 된 것인지, 그냥 나도 그러려니 하고 살다보니 기억에서 흐려져 잊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다. 내 일이 아니니깐, 해도 안되니깐, 그래 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얼마 전 우연한 장소에서 그 원장을 만났다. 나는 똑바로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나를 곁눈으로 살폈다. 그 순간 느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구나. 내가 더 당당해질 수 있었다. 소문에는 그 비리로 운영하던 업체가 정지 먹고 나빠진 이미지로 인해 운영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고 한다.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른다는 정도만 들었다.     


 나 자신을 믿었지만 주변의 말들 ‘신경 쓰지 마, 그냥 둬. 관여한다고 달라질게 뭐야!’ 등등 그런 말들에 상처를 많이 받았고 어느 순간 내가 유별스럽다고 느끼기도 했다. 내가 아니라고 하면 변하나? 웬 오지랖?     

 안세영 선수를 보면서 그 힘든 싸움에 힘을 보태고 싶다. 어린 선수가 참 당돌하게 분위기 흩트리네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 용기에 나의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그 길을 겪고 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감당해야 할 파장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다는 이해 못 하지만 조금은 경험을 통해 공감하므로 안세영 선수의 그 마음 끝까지 지지한다.    

 

‘기본이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


이 말이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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