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NL 사람들 Oct 06. 2023

삶의 결이 빚어내는 다채로움

경영학과 이혜인

에디터 : 임재영

  

  2023년 2월의 어느 날. 꽉 막힌 도로를 뚫고 906동에 들어가 등록 절차를 마친 후, 설레는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다. 룸메이트로 추정되는 한 친구가 깜짝 놀라 의자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통성명을 하고, 짐 정리를 했다. 그렇다. 대학교에서 처음 사귄 친구는 나의 룸메이트, 혜인이었다. 혜인이는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공강 날에도 오전에 방을 나가서 밤에 들어오곤 했다. 가끔 내가 혜인이보다 일찍 방을 나서는 날도 있었는데, 이런 날에는 높은 확률로 잠에 들 때까지 혜인이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도대체 밖에서 뭘 하느냐고 물어보면, 다양한 답변이 돌아왔다. 어떤 날에는 배드민턴을 치고 뒤풀이를 하고 왔고, 어떤 날에는 음악 페스티벌에 다녀왔다고 했다. 처음에는 혜인이가 경험하는 재밌는 것들에 호기심이 생겼고, 점점 하루하루를 다채롭게 살아가는 이 친구 자체가 궁금해졌다.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경영학과 23학번에 재학 중인 2A반 이혜인입니다.


벌써 23학번 새내기로서 첫 학기가 끝이 났어요. 혜인 양의 1학년 1학기는 어땠나요?

  1학기의 저는 뽀로로처럼 살았다고 생각해요. 대학교에서의 첫 학기인 만큼, 공부보다는 이전까지 못해봤던 다양한 것들을 하며 즐겁게 생활한 것 같습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것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궁금해지는데요. 주로 어떤 활동을 하며 1학기를 보냈나요?

  크게 운동과 음악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어요. 기숙사 헬스장을 다니면서 시간 날 때 틈틈이 운동을 했고, LnL 내에서도 운동 관련 프로그램들이 많았거든요. LnL 호신술 특강에서 유도를 배웠고, 배드민턴과 클라이밍 소모임에서도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오랜 로망이었던 밴드부에 가입했어요. 경영대 락밴드 ‘발악’인데요. 베이스 세션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어떤 세션으로 들어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예전에 기타를 배울 때 손가락이 두껍고 짧아서 어려움을 많이 느꼈었거든요. 코드 잡기가 특히 어렵더라구요. 그런데 새내기 배움터에서 만난 선배 말로는, 베이스는 코드 잡을 필요가 없고 손가락이 짧아도 잘 칠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이 계기로 베이스를 시작했고, 악기를 연주한 지 한 4개월 정도 된 것 같아요.


대학교에 오기 전에도 운동을 즐기는 편이었어요?

  그건 아니에요. 사실 중고등학교 때는 운동을 하지 않았고, 운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대학에 온 이후로는 건강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자 하는 욕구도 생겨서 운동에 재미를 붙여 보려고 했던 거 같아요. 그랬더니 제 친구들이 저를 자꾸 운동선수 하려고 한다고 놀리더라구요 (하하).


그리고 음악 활동과 관련해서, 밴드부가 혜인 양의 오랜 로망이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아무래도 그 친구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친구들 따라 저도 밴드 음악을 많이 들었고, 나중에 대학에 가면 밴드부에서 음악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알기로는 혜인 양이 운동과 밴드 말고도 정말 다양한 것들에 참여했거든요. 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거창한 건 아니고 LnL 내에서의 소모임이나 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했어요. 지금 요리 소모임, 코바늘 소모임, 보드게임 소모임, 플레이리스트 추천 소모임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어요. 제가 주최한 건 보드게임 소모임인데, 새벽까지 보드게임 하다가 구성원들끼리 너무 친해져서 소모임의 본질을 점점 잃어가는 중인 것 같아요 (하하). 2학기에는 재정비를 해서 더 다양한 보드게임을 해보고 싶어요. 소모임 외에도 2A반 친구들과 문화예술원 파워플랜트 전시를 관람했고, 2A반에서 열었던 저녁 모임도 많이 참여했어요. 아, 김하나 작가님의 북토크에도 참석했네요.


혜인 양이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LnL에서 열린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한 건 아니잖아요. 어떤 활동에 참여할지 선택하는 본인만의 기준이 있나요?

  특별한 기준은 없어요. 시간이 되는 선에서 웬만하면 다 해보려고 해요.


지금까지는 주로 학교 내부에서의 경험들을 말씀하셨는데, 학교 밖에서의 재미난 경험들은 없었나요?

  물론 있죠. 제가 1학기에 12학점을 들어서 시간표가 많이 넉넉했어요. 월요일과 금요일이 공강이었거든요. 그래서 혼자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도 보러 다녀오고, 제가 푸딩을 좋아해서 푸딩 맛집 투어도 다녀오고, 서울숲에 산책하러도 다녀왔어요. 대학교에 오기 전까지는 서울에 많이 와보지 못했어서, 서울 곳곳을 다니는 게 재밌더라구요. 또 친구들이랑 관악산 등반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1학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 1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LnL 호신술 특강인 것 같아요. 유도라는 종목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친숙한 스포츠는 아니잖아요. 직접 소매를 잡고 서로 부딪히고 싸우면서 배운다는 게 신선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승단심사를 보고 단증도 땄거든요. 그만큼 뿌듯함을 느끼면서 열심히 한 것 같아요. 매 수업이 다 기억이 날 정도로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혜인 양의 에너지가 궁금해요. 이런 에너지를 가질 수 있는 동력이 있을까요?

  특별한 동력은 없는 것 같은데요? 그냥 해보는 거죠. 해보다가 그 일에 애정이 생기면 그게 동력이 되는 거 같아요. 친구들과 함께 하면 더 신나서 열심히 하게 되는 것도 있고요.


‘그냥’ 해본다는 게 잘 공감이 되지 않는데요. 저는 시간이 나면 ‘그냥’ 누워서 유튜브를 보는 사람이거든요 (하하).

  아하, 맞는 것 같긴 하네요. 실제로 제 룸메이트를 침대에서 쉽게 볼 수 있긴 하거든요.


이렇게 인증을 당해버렸네요. 아무튼 단순히 ‘그냥’이라는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요.

  음, 고등학교 때는 저도 비슷하게 시간이 나면 가만히 있거나 유튜브를 많이 봤어요. 그때도 밖에 나가서 이것저것 하는 걸 좋아하긴 했는데, 특히 고3 때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잖아요. 그래서 하고 싶은 걸 블로그에 버킷 리스트처럼 많이 적어 놓았어요. 이제 대학에 와서는 기회가 많이 열렸고, 시간 제약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 버킷 리스트를 하나하나씩 지워가는 거죠. 예를 들어서 운동이 재밌어 보이면 운동을 하러 가고,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 오늘도 무언가를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하는 거예요.


고등학교 때 억눌렀던 걸 해소하는 셈이네요?

  그런 것 같아요. “신나니까 일단 나가!” 이 마인드입니다 (하하).


그럼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가 실패하거나 포기한 적은 없었어요?

  당연히 있죠. 대학교에 온 후에 좌절했던 경험은, 음, 경영대 테니스 동아리 ‘TNT’에 가입했었어요. 막연히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배드민턴이랑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테니스는 배드민턴이랑 꽤 다른 스포츠였고 엄청 힘들었어요. 초반에 테니스를 배울 때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열심히 해야 잘 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할 만큼의 열정과 애정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친구랑 두세 번 나갔다가 관뒀어요. 이럴 때는 더 재밌게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으면 되는 것 같아요. 테니스 동아리 대신 LnL 배드민턴 소모임에 가입해서 재밌게 활동했습니다.


혜인 양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떠올랐어요.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혜인 양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소위 ‘갓생’을 살고 있다고 느껴지거든요. 혜인 양이 생각하는 갓생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제가 갓생을 산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음, 저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갓생인 것 같아요. 인생에서 그 시기에 주어진 과업이라는 게 있잖아요. 대학생이라면 진로를 설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게 되겠죠. 그 시기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훨씬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적당히 취미생활을 하는 건 상대적으로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지금 혜인 양은 대학교 1학년에게 주어진 어떤 과업을 달성하는 데 시간을 쏟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여가 생활에 집중을 하고 있죠. 그런데 지금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건 아니에요. 대학교 1학년 때는 갓생까지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생활이 정말 좋고 행복합니다. 고학년이 되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하면서 차차 진로 설정을 해 나갈 생각이에요.


이번 학기를 끝내고 혜인 양에게는 무엇이 남았나요?

  여러 운동을 하면서 우선 건강을 찾았고요. 그리고 저의 취향을 조금 알게 됐어요. 옷은 힙한 스타일을 좋아하고, 음악은 밴드 음악과 아이돌 음악을 좋아하고 뭐 이런 것들이요. 그리고 너무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서 하루하루 행복합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같은 기숙사에 살면서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인 것 같아요.


이제 마지막 주제인데요. 혜인 양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와 정말 어려운 질문이에요. 음… 저는 제가 ‘호모 루덴스’라고 생각해요. 호모 루덴스는 노는 사람, 즐기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면 힘든 시절에도 최대한 즐기려는 걸 목표로 삼아왔어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그래도 이런 점 덕분에 나는 행복하고 즐거워’라고 생각하면서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기제가 꽤 활성화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주어진 환경에 아주 빠르게 적응하고, 여가 생활을 최대화하면서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흥미로운 답변이네요. 저도 삶을 즐기면서 사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자신을 한 마디로 정의할 때 '즐기는 사람'이라고 답변한다는 건, 다른 사람들보다 혜인 양이 특히 행복한 삶에 강조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 이유가 있을까요?

  음, 중학생 때부터 이런 마인드를 가진 것 같아요.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제 주변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고, 원하지 않은 일들을 해야 할 때가 많았어요. 또 이때 부모님과 불화도 자주 생겼거든요. 그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매일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기보다는 그냥 당장 죽어도 후회가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이후로는 조금 힘들어도 행복을 발굴해 내서 만족하며 사는 그런 성격이 된 것 같아요.


다가오는 2학기의 계획이 궁금해요.

2학기에는 전공수업이 많아서 일단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밴드랑 운동도 하던 대로 열심히 해야죠. 또 2학기부터 ‘상상력’이라는 경영대 학회를 시작해서 학회 활동도 할 예정입니다. 거기에 LnL 학생자율세미나 개설공동책임을 맡았고, LnL 비교과 프로그램도 제안할 예정이라 꽤 바쁠 것 같아요. 그래도 1학기 때 재밌고 다양한 경험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로는 아직 고민 중이라, 전공 공부를 하면서 차차 찾아가고 싶어요.


오늘 인터뷰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혜인 양의 2학기도 반짝반짝 빛나길 응원합니다.



  처음에는 혜인이가 이것저것 ‘도전’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어 볼수록 혜인이는 도전이라는 단어와 무언가 다르다고 느꼈다. ‘도전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걸다.’ 아주 편하고 내키는 일이 아니어도, 더 큰 목표를 위해 그 감정을 감내하고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느낌을 준다. 혜인이는 이런 이유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게 아니다. 대학교에 가면 여러 경험을 해봐야 한다더라, 하는 어떠한 압박감에 이끌려 몸을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재미있어 보여서, 해보고 싶으니까. 진정 마음에서 우러난 여유와 활력으로 삶을 다채롭게 채워간다. 그래서 자신이 정말 많은 것들을 하고 있다는 자각도, 여기에서 오는 부담도 없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가지 않는가? 더더욱 서울대학교 학생이라면, 사회에서 기대하는 역량을 갖추거나 실패해선 안된다는 무언의 압박을 느껴보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내하는 시간도 우리 삶에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우리 삶은 인내와 성취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여러 작은 일상들을 모아 큰 행복을 만들어가는 한 학생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과연 그 방법을 알고 있는지 돌아보면 어떨까?




이혜인

  -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패기반 23학번

LNL 2A반의 구성원


경영대 락밴드 발악과 경영대 상상력 학회에서 활동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