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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슈아 Aug 24. 2023

마스크맨 3~4단계

사회화된 마스크맨

월요일 아침, 출근하면 관례처럼 나는 팀원들과 커피 타임을 가진다.

약 20분 남짓의 시간이지만 주말 동향을 서로 이야기하는데 주말 배달을 한 이후라면 항상 나는 거짓말을 한다.

누군가 나에게 주말에 뭐 했냐고 물어보면 나는 항상 집에서 쉬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월요일 아침에는 피곤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

'저 양반은 주말에 쉬었다면서 왜 이렇게 피곤해하는 거지?'

"과장님, 주말에 쉬셨다면서 왜 이렇게 피곤해하세요?"

맞다. 금요일 퇴근 이후부터 일요일까지 풀타임 (금요일 5시간, 토요일/일요일 각 8시간) 배달을 하면 다리가 부서질 것 같다. 아무리 전기 자전거라고 하지만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체인을 끊임없이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철저히 나는 주말에 배달하는 것을 특히 회사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한다.


마스크맨 2단계의 코로나용 마스크+모자 조합에서 회사 상사에게 나의 모습을 들킨 이후 나는 더욱 철저히 내 얼굴을 감춰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3단계로 진화한 것이 자전거용 헬멧+선글라스+코로나용 마스크였다. 사실 자전거로 배달하면서 안전을 위해 자전거용 헬맷을 장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낮에 선글라스를 썼다. 나름 머리(헤어 스타일), 눈과 코를 모두 가렸기 때문에 2단계 대비 나름의 진화였다.

가족들에게도 검증받았다. 밖에서 마주치면 날 알아볼 수 있겠냐고...

3단계의 효과는 나의 심리에는 생각보다 효과가 컸다. 선글라스를 끼니 마치 태양을 향하는 해바라기 마냥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가게 픽업도 들어갈 수 있었다. 누가 날 알아보랴. 건널목 신호등 대기에서도 당당했다.

어디까지나 낮에 한해서만...

저녁 배달에는 선글라스를 끼면 당연하지만 앞이 안 보이기 때문에 벗어야 했다. 

저녁에는 다시 벌거벗고 배달하는 사람 마냥 스스로 위축됐고 쥐새끼 마냥 가게 픽업 들어갈 때 눈치 보는 상황이 반복됐다. 낮이밤져의 상황이었다. 

그래도 밤이면 어두운데 누가 날 쉽게 알아보랴. 그렇게 낮이밤져의 마스크맨 3단계로 약 4개월가량 주말 배달판을 휘젓고 다녔다. 

하지만 결국 우려하던 일은 다시 벌어졌다.

선글라스를 벗고 저녁 배달을 하고 있는데 같은 동네에 사는 회사 동기가 아이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출퇴근길에도 종종 마주쳤기에 주말에 한해 그는 나에게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유난히 키가 큰 동기의 모습이 그날따라 나의 시야에 너무나 선명히 들어왔다.

가로등은 또 왜 이렇게 밝은 건가... 서울의 잘 갖춰진 인프라가 순간 원망스러웠다.

동기는 아이와 함께 걸어오고 있고 나는 반대편에서 그를 향해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20미터, 10미터... 거리가 좁혀져 가는 짧은 몇 초의 순간 나의 두뇌는 2가지 생각을 끊임없이 고뇌했다.

아는 척을 할까?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갈까? 실루엣만으로도 나라는 것을 알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내가 내린 선택지는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가 자였다. 그렇게 오롯이 나만 느끼는 그 위기를 모면했다.

그런데 주말, 나만 느끼는 이 기묘한 악연은 한번 물꼬가 트이니 계속 됐다. 이번엔 낮이었다.

집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선글라스를 낀 채로 집 아파트 단지로 들어선 순간, 그 동기가 이번에도 아이 손을 잡고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나의 두뇌는 단순하지만 똑같은 2가지 생각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봐도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벗고 인사했다.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가기엔 야박해 보여서 전기 자전거에서 내렸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인사했다.

"안녕, 이름이 뭐야? 귀엽다. 아들 몇 살이야?"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낀 모르는 남자가 덜컥 아는 척을 하니 겁을 먹었는지 아빠 뒤로 숨었다.


돌이켜보면 그냥 자포자기하고 자전거에서 내려 인사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그 동기는 나에게 뭐 하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배달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전기 자전거 뒷 좌석에는 배달통이 있기 때문에 누가 봐도 배달하는 것이 명백해 보였다.

그렇게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날 동기에게 배밍아웃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며칠 뒤,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그를 만났다. 역시나 배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 뒤로도 배달하면서 그를 종종 마주쳤고 그럴 때마다 그냥 인사했다.

동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왜 아무것도 묻지 않았을까?

나 딴에는 배달한다는 것을 내 입으로 말은 안 했지만 그 동기에게 배밍아웃을 한 것이었지만 선글라스가 없는 밤엔 위축되는 내 모습도 있고 또한 선후배 몇몇이 마치 지뢰밭 마냥 인근에 살고 있었기에 4단계로 업그레이드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마스크맨 4단계로 진화했다. 자전거용 헬맷은 머리만 가릴 뿐, 이마와 귀는 노출된다.

그래서 자전거용 헬맷을 오토바이용 헬맷으로 교체했다. 오토바이용 헬맷도 종류가 다양한데 나는 귀는 물론이거니와 이마 부분까지 가려지는 것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코로나용 마스크 대신 등산용 햇빛 가리개를 구매했다. 등산용 햇빛 가리개는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려준다.

오토바이용 헬멧+등산용 햇빛 가리개... 완벽했다. 밤에도 당당했다.

4단계로 진화한 형태로 나는 지금 배달을 수행하고 있다. 4단계 진화 이후에도 그 동기는 종종 마주친다. 

멀리서 내가 먼저 그를 발견하면 나는 경로를 바꾸어 간다. 하지만 그게 어려울 경우에는 그냥 인사를 한다.


이렇게까지 내가 숨기면서 배달을 하는 이유가 있을까?

다수로부터 나를 숨기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숨고 싶은 것이다. 

왜 청승맞게 주말에 배달까지 하냐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아서 부끄럽다. 죄 지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소개팅에서는 여자분들께 주말엔 배달이 취미라고 했을 때 대다수는 열심히 산다고 나를 좋게 봐주셨었다. 

회사 동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배달이 재밌고 수입도 쏠쏠해서 스스로는 당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회사에서의 평판과 인식을 신경 쓰는 사회화된 마스크맨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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