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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홋 Jun 15. 2024

종강 직전 편지를 읽어주는 교수

학점을 쉽게 따려 고른 글쓰기 수업을 마치고

나는 더 높은 수준의 교육 기관으로 옮겨갈수록 교육자의 위엄은 강해지고 학생들과의 감정적 교류는 흐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빛을 잃고 회색빛 선생과 학생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수업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수업을 선택하는 것은 교수의 수업 스타일이 아닌, 수업 요일과 ‘학을 잘 주는가’라는, 결국엔 나도 굴복해 버린, 세속적인 기준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렇게 얼떨결에 만난 교수님과의 감정적 교류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수강신청 직후의 생각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근 30년을 한 학문에서 몰두한 이에게 배운다는 것은 그렇게 사무적으로만 흘러가야 할 일만은 아닌데.


그렇게 개강일이 온다. 첫 글쓰기 수업이 시작하고 제일 앞자리에 앉는다. 그러나 그 행동의 이유는 ‘교수님과의 아이컨택 및 긴밀한 의사소통’이 아닌, 그저 검은 글자와 흰 배경이 잘 안 보이는 것도 있고, 일방적으로 교수님이 나를 잘 알아 봐주신다면 학점에도 일말의 이점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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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달이 지나고 종강일이 다가온 같은 수업이었다. 교수님께선 수업을 들으며 써내려 간 글들을 매주 걷어 가셨는데, 종강 전 마지막 강의에서 돌려주셨다. 훑어보았다. 어떤 글을 읽을만하고, 어떤 글은 너무 뻔한 글이어서 자유로운 것은 맞춤법 밖에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글들에서 나의 글쓰기 여정이 시작됐다는 점을 떠올리니, 바보 같은 글들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교수님은 편지도 써오셨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딱딱한 교수의 모습은 아니었다. 편지의 마지막 맺음말은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나 글쓰기를 지속했으면’이었다. 교수님께선 당신의 수업 목표가 최고의 학생을 뽑아내고 그들을 키워내는 것이 아니었다고 밝힌다.


본래 목표는 수강생들이 글쓰기를 접하고 실제로 흥미를 가지게 하는 것이었단다. 음, 그랬지. 작은 글, 긴 글.. 상관없이 매주 2번 있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글을 쓰게 하셨다. 그 글을 바탕으로 20분 간 개인 면담을 통해 고칠 점을 알려주시기도 했다. 감정적인 교류는 없었다. 그저 글이라는 방에서만 교수님과 대화할 뿐이었다. 그러나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에서 감정적 교류보다 더욱 근본적으로 중요한 학술적 교류가 있었다.


위대한 일은 작은, 거창하지 않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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