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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망잔칭 Aug 04. 2023

푹신한 카스테라



- 처음 지하철을 탔던 나이를 떠올려보면 사실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기억이 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시에는 자판기나 노점이 조금 더 많았던 것 같고, 자판기나 노점을 이용하는 손님 역시 더 많았던 것 같다. 남부터미널에서 충무로까지, 충무로에서 성신여대입구까지 어느 정도 정형화된 귀성길에서 우리 가족은 수많은 자판기와 노점을 지나쳐왔다. 무언가 사고 싶었던 게 있었던 적은 없으나 무언가 사고 싶었어도 아마 어머니는 사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더워도 쉽사리 틀어주지 않으셨던 에어컨처럼.


- 환승역에서 나는 문을 열고 손님을 맞고 있던 한 노점을 봤다. 그리고 잡다하면서 두서없는 노점에서 파는 빵에 눈길이 갔다. '삼립'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문득 빵을 보고 아버지가 떠올랐다. 지금 내가 저 빵을 살 수 있구나 하고, 저 빵을 살 돈을 월급으로 받았구나 하고, 월급을 받기 위해 대학 등록금을 냈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그런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는 괜히 가슴이 미어졌다. 나는 누군가 낳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존재하고 빵을 사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빵에서 아버지와 미어지는 가슴이 연계하는 데에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그냥 그랬다.


닿지 않음


- 하지만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굳이 전달하고 싶지는 않았다. 전달하고 싶지만 전달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그런 것들이 닿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일 좋아하는 가수나 감명 깊게 읽은 책이나 뇌리에 각인된 어떤 영화의 장면,  때로는 노을이 지고 별이 뜨는 하늘에서 얻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특별한 감정 따위의 것들을 이제 다른 사람에게 쉽사리 드러내지 않게 됐다. 드러내고 싶지만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이제 그런 것들이 닿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 결국 모두 특정한 개인의 기준에 부합할 뿐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 비를 맞으며 길을 걷고 싶다가도 함께하는 동료의 의사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바라는 마음을 차마 놓을 수가 없다.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많은 것들이 온도 그대로 전달이 되었으면 한다. 사실 그대로일 필요도 없다. 그냥 '느낌'만이라도 좋다. 그런 것이라도 얇게나마 펴발릴 수 있다면 그것이면 행복하다. 그러나 이제 안다. 얇게 퍼발리는 것마저 욕심이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영향을 줄 수 없고 주지 않아야 한다. 혹여나 나의 모양에 맞춰 나를 푹신한 카스테라처럼 받아줄 사람이라면 경계해야 한다. 첫째로 그런 것은 위험하고 둘째로 그런 것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취향


- 지금껏 많은 웃음과 눈물을 '취향'이라는 단어에서 추출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나는 사람이 아닌 피사체를 카메라에 담을 때면 줌 기능을 자주 활용한다. 술을 마실 때면 어느 시점에서 단호하게 잔을 들지 않는다. 봤던 영화를 또 보고 울었던 장면에서 또 운다. 나는 그런 취향으로 점철된 사람이다. 단정 짓는 것을 지양하지만, 말하자면 나는 앞으로 웹 소설을 읽지 않을 것이고 년 단위 계획표를 세우지 않을 것이고 체다치즈를 스스로 입에 대지 않을 것이다. 이런 단편적인 조각들이 모여 어떤 인격체를 형성한다면, 나는 푹신한 카스테라처럼 누군가를 품에 안을 깜냥은 없다. 그렇게 태어난 것인지 조각을 모으다 보니 뾰족한 외피를 갖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 더군다나 이 모든 일은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지하철에서 빵을 보고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를 가슴속에 묻고, 아니 묻지도 않고 마치 머릿속에 그런 기억을 남길 공간 따위는 없다는 듯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도 좋다. 어떤 가치나 이득이나 행복을 도출해낼 수 없는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 혹은 취향 같은 것을 들이대는 것만큼 몰상식한 일이 또 있을까. 나는 수없이 그리고 한없이 몰상식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은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여정


-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 역시 나의 취향이다. 음식점에 가면 내가 알고 즐기던 맛을 다시, 혹은 더 나은 방향으로 느끼길 원하는 것과 같다. 낯선 사람을 마주칠 때면 눈을 요리조리(정확히는 마음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눈치를 살핀다. 혹시 피자를 좋아할지 혹시 더위에 민감하지만 추위에도 동시에 민감한지 아니 그런 모든 것들을 차치하고 그저 정신없이 모은 조각으로 여기저기가 삐죽삐죽 튀어나온 비뚤어진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줄 푹신한 카스테라 같은 사람인지. 눈을 떠서 몸을 씻고 지하철에 오르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때부터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순간까지 살핀다.


- 하루하루가 여행 같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출근하는 것이 아니고 피곤해서 잠에 드는 것이 아니다. 그저 푹신한 카스테라가 되기 위해서, 동시에 푹신한 카스테라를 만나기 위해서 눈에 힘을 주며 살아가고 있다. 신호를 기다리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소주를 입에 털어 넣는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단지 그것을 목표로 가는 순례길이다. 하루에 하나에 꼭짓점이라도 부지런히 손질하며 다른 사람을 찌르는 무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식빵이라도 만나게 될지 모른다. 그때 나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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