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비된화살 Oct 25. 2023

조용히 오붓한 장례를 치르렴

고인의 뜻이었어요

일이 산더미다.

그동안 딱이 할 일을 미뤄둔 거 같진 않은데... 업무가 줄 서 있다.

당장 이번주에 있을 인근 기관과 협력 행사도, 오랜만에 진행하는 가을 운동회도 모두 첩첩산중 같은 일이다.


긴 연휴 후 월요일 아홉 시가 되기 무섭게 동시 다발적으로 다다다다 깨톡이 온다.


출산율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어린이집 운영에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는 원장들이 너무 많다.

한때는 대기자가 줄을 선 인기 있던 원들인데... 지금은 대부분 정원 미달이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국공립도 예외는 아니다.




S시에서 원을 운영하던 강원장이 국공립어린이집을 그만두고 천안에 요양원을 개원하더니

그 후 채 1년도 안되어 송원장이 브런치 식당을 오픈한다고 한다.

이 업에 몸담는 것이 천직이고 힘닿을 때까지 하고 살 줄 알았는데

친구들은 그렇게 하나 둘 플랜 B의 삶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그녀는 원 운영하면서 받은 여러 스트레스를 떡하니 내려놓고 좋아하는 요리를 한다고 들떠 있었다.

참 잘 어울린다.


우린 마음을 다해 축하해 줬다.

확실히 음식은 그녀의 장점이다.

그것을 강점화하는 새로운 도전이 눈부셨다.




깨톡소리가 연달아 나더니 전화가 울린다.

홍원장이다.

그는 목소리 톤을 한껏 높여 당황한 듯 말했다.

"김원장 아버지가 글피에 돌아가셨대"

어머나 정말 놀랐다.

글 피면 어제 막 장례를 다 치르고 발인까지 마친 상태다.

얼마 전 만났을 때도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얘긴 전혀 듣지 못했다.

지병이 있으신 건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휴일이었어도 연락을 했어야지 다른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함께 일 얘기, 사는 얘기 나누며 적잖은 영향과 도움을 받고 있었던 나로서는

여간 맘이 상하는 게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그 마음을 내비쳤다.

어쩌면 연락을 안 할 수 있냐고, 아무리 휴일이라도 연락을 했어야지

마땅히 예를 다해야 하는데 이렇게 성의 없이 인사하여 너무 미안하다고 에둘러 말했다.

위로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람 노릇 못한 스스로가 민망해서  

'너무 했다'는 말로 도리 못함을 포장해 버렸다.


나의 어수선한 타박을 듣고 있던 김원장이 한마디 했다.


"고인의 뜻이었어"

그녀의 단정한 성품으로 미뤄보아

아마 아버지도 돌아가시기 전

가족과 함께 조용히 오붓하게 장례 치르길 유언하셨던 거 같다.





그 한마디가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왜 어른들은 그리도 지나치게 단정한 마무리를 하시려고 할까? 어떤 것이 더 좋고 나쁘며

어떤 방법이 더 옳고 그른 건지 난 아직 모른다.

그러나 자식들도 부모를 잃은 슬픔을 지인들과 함께 나누고 치유하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비슷한 아픔이 있는 사람이 찾아오고 그들과 울고 그리고 웃으며 추억하는 애도의 시간을 갖는 것

민폐가 아닌, 사랑이지 않을까?

아버지를 더 이상 만질 수 없다는 것이 얼마만큼의 쓰라림으로 다가올지... 미리 아렸다. 쿵하며 단단한 돌덩이가 가슴에 얹어지는 느낌일까?





얼마 전 강사 과정 강의를 들으며 봤던 한 영상이 떠올랐다.


40대의 예쁘장하게 생긴 여성이 수줍은 모습으로 의자에 조심스레 앉는다.


그녀에게 주어진 미션은

'눈을 가리고 상대의 손을 만져 직업을 맞추는 것'


40대의 건장한 남성도 참여했다. 방법은 똑같다.

상대의 손을 만지작만지작하며 마디와 손등과 손바닥을 더듬더니 손마디가 굵고 거칠다고 했다. 손에 주름이 많은 걸로 보아 연세가 조금 있으신 분 같다고 했다. 그리고 굉장히 험한 일을 하신 분 같다는 말을 이어갔다.

남성은 아마도 막일을 하시는 분이 아닐까요? 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했다.


 자 이제 눈의 안대를 빼세요


순간

그들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얼굴의 모든 근육이 굳었다.

여성은 갑자기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남성은 이마를 세네 번 찌푸리더니 입을 삐죽거렸다.


아...... 엄마!!


엄마였다.

막일을 한 것 같은 굵고 투박한 손가락 마디, 손바닥, 손등


 



난 엄마의 손을 언제 그렇게 만져 봤을까?

생각해 보니..

없다...


 

엄마의 손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어떻게 하면 엄마의 손을 저렇게 정성스럽게 만져볼 수 있을까?

며칠 고민이 됐다. 엄마를 토닥토닥 안아주는 것 말고 손을 정성스럽게 만지작거린 기억은 정확하다.

없다...


묘수가 떠올랐다.

좋은 핸드크림을 샀다. 그리고 엄마에게 핸드 마사지를 해 드리겠노라며 핸드크림 선전을 하기 시작했다.

핸드크림이 너무 좋은 거라서 바르기만 하면 촉촉해져 손이 부들부들해진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순간 걱정이 됐다.

우리 엄마 손도 투박하면 어쩌지? 손바닥이 그렇게 갈라져 있으면 어쩌지?

엄마의 발 뒤꿈치가 꼭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져 있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어서 일거다.




부모는 자식에게도 자식의 지인들에게도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조금의 폐를 끼치지 않도록

죽음을 준비한다. 그게 요사이 우리 부모들의 트렌드 인가?


오붓한 장례를 치르라는 고인의 뜻은 자식에게 또 다른 아픔이다.

자식에게도 지인들과 함께 슬퍼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부모님의 단정함 조차도

자식들에겐 참을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 될 수 있기에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동의 없이 냉장고를 털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