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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화살 Feb 07. 2024

소포 부치던 날

꼰대에도 급이 있다.

"계단으로 올라가세욧!"


비좁은 지하 주차장에 어렵게 차를 세우고 구석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찾아 탑승하려는데

직원인 듯한 60대 여성분이 꺼슬꺼슬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그래도 언제 왔었는지 가물거리는 기억 속의 낯선 곳이 생경한데 불친절하기까지...  말씨에 입을 삐죽 내밀었다.


도 끝도 없이 엘리베이터 말고 계단을 이용하라니! 그 말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지금 생각하니 업무 봐야 할 장소가 바로 한층 위라서 그런 거 같다.)


계단으로 접어들자 나도 모르게 거친 소리가 나왔다.


뭐래 어이없네


기분 나쁜 마음을 혼잣말로 삭이며 우체국 안으로 들어섰다.




졸업이 코앞인데 급히 이사를 가게 된 어린이집 아이의 졸업 앨범을 소포로 부쳐야 하는 업무를 보러 왔다.


여러 부류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만 유별나게 딱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것이 있다. 바로 공공기관에서 업무를 보는 것


공공기관 특유의 그 딱딱함과 사무적인 응대가 늘 불편했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다며 딱딱함 또는 불친절함을 일반화하기에 무리가 있는 건 사실이고, 꼭 친절해야만 한다는 매뉴얼이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오늘 또 이런 일을 겪으한 겹 그 생각에 무게가 실림은 어쩔 수 없었다.




앨범을 박스에 넣어 부쳐야 할거 같아 안내를 맡고 있는 젊은 남자 직원에게 어떤 크기의 박스에 넣어야 할까를 물었다.


그는 고갤 갸우뚱하더니 이리저리 앨범과 박스 사이즈를 두어 번 재 보고는 잘 모르겠는지 직접 한번 보라며 슬금슬금 내 주변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앨범은 2cm 정도의 두께지만 전체 크기가 애매하여 물건에 비해 심하게 과한 박스에 넣어야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순간 너무 큰 박스를 구입하는 것이 낭비(물론 박스 값이 많이 비싼 건 아니다)라는 생각에 고민이 되었다.


그냥 소포지로 싸면 딱 좋겠다는 생각에 판매 여부를 물으니 그건  없단다.

 

이를 어쩌나...


몇 초간 망설이고 있는데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다른 여직원이 오더니 상세하게 설명해 주신다.


납작하게 접혀 있는 3호 박스를 펼치지 말고 그대로 앨범을 넣은 후 테이프로 (앨범이 빠져나오지 않게) 위와 아래를 잘 붙이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 대신 테이프로 꼭 잘 붙이라는 말을 천천히 한번 더 알려주었다.


박스는 꼭 네모로 접어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뒤집는 신박한 소포  포장법이다. 그 방법을 난 60대 여직원에게 배웠다.

           

유레카를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동안의 노하우인지

삶의 지혜인지

아니면 잔머리인지 알 수 없지만

직원분의 안내에 우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 이렇게 해도 되는군요 맞네요 정말 좋은 생각이세요




순간 주차장에서 마주친 60대 여직원분의 모습과 이 분이 오버랩되었다. (대략 연령대도 비슷해 보이고 같은 조끼를 입으신 분으로 미루어 보아 비슷한 직급으로 추정된다.)


난 프로를 좋아한다.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사람, 일을 사랑하는 사람,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래서 친절할 수밖에 없는 사람




기존의 패러다임을 깬 소포 포장을 깨닫게 해 준 그 직원분을

프로라 부르고 싶다.  


나이 많은 사람을 누가 꼰대라 했던가

꼰대도 꼰대 나름이며 이쯤 되면 꼰대에도 급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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