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남자는 정수리에서부터 뒤통수 반이 햇살이 내려앉은 듯 훤했다. 짙은 재색 아웃도어 윗도리에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젊은 남자는 빈틈없는 까만색 짧은 스포츠형 머리에 팥죽색 아웃도어 윗도리와 검은색 바지와 역시 운동화를 신었다. 젊은 남자가 나이 든 남자보다 한 뼘 정도 더 크고 등에 배낭을 메고 있었다.
나이 든 남자가 젊은 남자의 팔짱을 낀 듯 밀착하여 오래된 주택가의 완만한 내리막 길을 일정한 보폭으로 걸어내려가고 있었다. 인적은 드물었다. 길쭉한 두상과 상체와 하체의 길이가 비슷한 체형까지 닮은, 얼핏 보아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 짐작되었다. 그들의 몇 걸음 뒤에서 내 시야에 들어온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참 다정한 부자(父子)군... 우리 집 부자(父子)는 늘 뚝 떨어져서 걷는데...
그러나 그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그들의 남다른 점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아들의 팔짱을 낀 것이 아니라 아들이 맨 배낭의 허리끈을 꽉 움켜잡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고개를 돌려 좌우를 살피는 아들의 옆모습은 한결같이 턱이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입을 일없이 무방비로 벌리고 있는 것이었다. 침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그들이 내려온 산 밑에 ㅇㅇ시 ㅇㅇ구 평생학습센터와 나란히 장애인생활복지센터가 있었다. 장애인생활복지센터 건물에는 장애인들이 일하는 카페와 중고품 매장 아름다운 가게도 있었다. 그 옆에 도서관이 있었다. 오후 4시 무렵. 나는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마도 장애인생활복지센터에 다니는 아들의 일과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버지가 마중을 나왔고 그들은 그렇게 같이 귀가하는 길인 것 같았다. 머리 위로는 더없이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전선줄이 어지러웠다. 아직 따사로운 햇살이 남아 있는 가을날의 오후를 자석처럼 붙어서 걷는 그들의 발걸음은 경쾌하고 가벼웠다.
후락한 슈퍼 앞을 지나갈 때 그들은 잠깐 걸음을 멈췄다. 아버지가 꽉 움켜잡고 있던 아들의 배낭 허리끈을 놓고 아들의 아웃도어 윗도리에 뒤집혀 있는 모자를 반듯하게 착착 정리해 주었다. 그 손길에 애정이 넘쳐흘렀다. 다 됐다는 신호로 아버지는 아들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후 바로 다시 배낭의 허리끈을 잡았고 그들은 또 걸음을 옮겨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 내딛던 아들이 고개를 아버지에게로 돌려 입술을 내밀고 볼뽀뽀를 시도했다. 뒤집힌 모자를 바로 잡아 주어서 고맙다는 뜻일까.
아버지는 얼결에 뽀뽀를 받았다. 아들이 헤벌쭉 웃으며 다시 한번 뽀뽀를 시도하고 아버지는 이번에는 옆으로 살짝 피했다. 그 장난스런 행위는 몇 번 계속되었다. 아들은 아빠에게 뽀뽀를 하려고 입술을 내밀고 아빠는 살짝 피하려 하고... 아들은 헤벌쭉 킥킥 웃고 아버지는 빙그레 소리 없이 웃었다. 다 큰 성인의 신체에 어울리지 않는 아들의 어린애 같은 장난스러운 애정공세를 아버지는 나무라지 않았다. 성가셔하지도 귀찮아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환하게 웃으면서 받아들였다. 그러는 중에도 아버지는 아들의 배낭 허리끈을 놓지 않았다. 주택가를 다 걸어 나와 큰 도로가 나타나고 인도에 사람들이 붐비자 아버지가 아들의 배낭 허리끈을 좀 더 힘 있게 당겨 잡았다. 부자(父子)는 빨간색 신호등이 켜진 횡단보도 앞에 멈추어 섰다. 아들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 아버지는 60대 후반에서 70대?로 보였다.
입을 무방비로 헤벌쭉하게 벌리고 두리번거리는 아들의 얼굴에 핀 미소는 그야말로 순진무구 천진난만했다. 아버지 역시 미소를 짓고 있으나 주택가에서와는 달리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들은 사람들 속에 섞여 횡단보도를 건넜고 이번에는 조금 전 내려왔던 골목보다 더 좁고 오래된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갔다. 아들은 또다시 아버지에게 기습뽀뽀를 시도했고 아들의 뽀뽀를 슬쩍 피하면서 허허 웃는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그들의 모습이 내 시야에서 멀어질수록 그들의 발걸음은 더욱더 빠르고 가벼워 보였다. 집이 가까워오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들어서는 집은 남루할지언정 웃음과 애정의 밝은 따뜻함이 가득할 것 같았다.
물론 그날 나의 시야에 잠깐 들어온 그 편안하고 다정하고 밝은 모습이 그들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많은 날 피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이만큼 키웠을 것이다. 많은 날들을 차별과 냉대와 편견 속에서 어쩌면 다정하고 따뜻한 장애 아들보다 냉정하고 차갑더라도 비장애 아들이기를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신체적 비장애인일 뿐 소통 부재 사랑 부재 이해 부재 믿음 부재의 장애적 관계를 유지하고 사는 가족들이 많다. 진짜 장애인 가족은 신체적 장애 속에서도 웃음과 애정의 밝은 따뜻함이 가득한 그들이 아니라 이런 장애적 관계에 있는 가족인지도 모른다. 아프지 않기 때문에 병든 줄 모르는(이성복 시인의 시 '그날'의 마지막 문장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를 차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