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봐 오빠 내가 뭐랬어 아무리 아무리 ㅇㅇㅇ 대통령이 잘못했고 그 당이 싫다 해도, 그래도 그래도 ㅇㅇㅇ은 아니라고 했잖아... "
12. 3 비상계엄 후의 어느 날 오빠네와의 식사 자리에서 나는 큰소리쳤다. 내 말이 맞았지? 맞았지? 정책 같은 건 잘 몰라도 티브이 토론이나 유튜브나 유세장에서 무심코 나오는 그의 행동이나 태도나 말투를 보면 알겠던데... 오빠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하는 듯한 표정으로 소주를 들이켰다.
5월 초 남편 친구들과의 부부모임이 있었다. 비상계엄을 일으켰던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도탄에 빠진 이 나라를 구할 적임자라고 나선 대통령 후보들의 유세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날들이었다. 누구나 정치 얘기에 민감해져 있었으므로 어느 자리에서나 될 수 있으면 정치 얘기는 하지 말자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건 쉽지 않았다. 취기가 살짝 돈 남편 친구가 어떤 대화 도중 말했다. 난 ㅇㅇㅇ 되면 이민 간다 이민 가... 역시 취기가 약간 돈 내가 그 말을 받아서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나는 ㅇㅇㅇ 안되면 이민 간다 이민 가... 그랬더니 또 다른 남편친구가 함박 웃으며 벌떡 일어나 나에게 하이파이브를 요청했다. 우리는 호기롭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뜻을 함께 하기로 한 동지처럼 잠시 두 손을 잡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이민 간다 했던 남편 친구가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남편이 그만 그만... 자제시키면서 화제를 돌렸다.
며칠 전 동창 몇 명과 팔당역에 있는 예봉산 등산을 했다. 대통령 선거가 바싹바싹 다가오는 때였다. 등산하는 네 시간이 넘는 동안 모두 입이 근질거리는 것 같았으나 스스로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정치 얘기로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혔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뜻이 같음이 확실한 친구와 낮은 목소리로 ㅇㅇ야... 이번엔 ㅇㅇㅇ 되겠지? 근데 좀 불안하더라... 저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라고 잠깐 소곤거렸을 뿐.
빈 소주병이 쌓여가는 뒤풀이 자리에서 취기가 오른 한 친구가 ㅇㅇㅇ 에 대해 비판했다. 비판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면서 길어질 것 같았다. 중단시키고 싶은 나는 그 친구의 말을 자르듯 물었다. 그래서, 넌 ㅇㅇㅇ 찍겠다고?
그럼 당연하지!!
그 친구는 망설임 없이 단호하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오케이 알았어 거기까지... 나는 엄청 실망했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대화를 중단시킨 후 화제를 돌렸다.
이번엔 솔직히 아주 조금 흔들렸다. 저 분이 계엄을 일으키고 탄핵이 되었음에도 아직도 거리를 활보하는 대통령을 낸 ㅇㅇㅇㅇ당 소속만 아니라면... ㅇㅇㅇ 목사랑 친하지만 않다면... 하는 마음이 아주 조금 들었던 것이다.
어제는 후보들의 마지막 티브이 토론이 있었다. 오 마이 갓!!! 어떻게 저런... 공영방송에서... 미쳤군 미쳤어... 그건 아니지... 한 젊은 후보가 내 귀를 의심하게 한 발언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아침 그 후보의 발언을 두고 난리가 났다.
그래도 그 후보와 여전히 웃으면서 포옹하고 사진 찍는 유권자들이 있었다. 똑같은 말과 표정과 행동을 보고 듣고도 저마다 십인십색 천차만별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는 다 같은 '인간'이지만 특성과 행동과 관계와 가치관이 다른 개별적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은 같은데 그 방향과 행동과 실천에 있어서는 타협이 안 될 만큼 극과 극으로 갈라질 수 있는지... 정치의 속성이 그런 거라면 정말 할 말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씀하셨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그 힘에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서라도 깨어 있어야 할 일이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는 눈을 갖기 위해서라도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일단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찾아보고 들어본 후에는 소신대로 실천에 옮길 일이다. 그리고 그 실천에 옮긴 소신이 시간이 지나면서 부디 옳았다고 판단되기를...
해서 몇 달 아니 몇 년 후 한 번 더 거봐 내 말이 맞지? 맞지? 하고 큰소리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대통령선거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티브이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