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웃기지 않아요? 세상에 앞니가 빠진 채로...
왼쪽 위 어금니 두 개와
오른쪽 아래 어금니 한 개 그리고 위 정중앙 앞니 한 개의 치아 임플란트 치료를 시작한 지 10개월이 지났다. 치과는 집에서 오 분 거리에 있다. 잇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한 개는 골이식을 했고 세 개는 나사를 박아 둔 상태로 수시로 치과에 가서 잇몸 상태를 살피며 치아와 잇몸을 치료하고 있다. 미루지 않고 제 때에 갔더라면 한꺼번에 네 개의 치아가 없는 상태로 일 년 가까이 지내야 하는 불편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특히 불편한 것은 앞니다. 10 개월 째 임시치아를 붙이고 있다. 그것도 완전 정중앙 윗니다. 자세히 보면 임시치아가 좀 더 하얗고 크다. 그러나 먼저 앞니가 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먼저 앞니를 가리키며 임시치아 붙여 놓은 거라고 밝히면 어쩐지 이상하더라고 반응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치아 접착제로 붙여 놓았기 때문에 앞니를 사용하면 안 되었다. 조심을 한다고 하는데도 지금까지 거의 다섯 번은 넘게 떨어져서 부랴부랴 치과에 가서 다시 붙였다. 미역국을 먹다가 떨어지기도 했고 수박을 먹다가도 아이스크림을 먹다가도 힘없이 떨어졌다. 몇 달 동안 잘 붙어 있을 때도 있었지만 다시 붙이고 온 지 3일 만에 떨어졌을 때도 있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올여름에는 좋아하는 옥수수도 하모니카 불 듯이 먹지 못하고 한 알 한 알 까서 먹어야 했다. 메뉴를 정할 때면 앞니를 사용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선택했다. 사과 같은 딱딱한 과일이나 깍두기 같은 단단한 반찬은 가위로 잘게 쪼개서 먹어야 했다.
떨어진 임시치아를 다시 붙이는 작업도 그리 만만치 않았다. 떨어진 임시치아와 양쪽 생치아 두 개에 붙어 있는 접착제를 완전히 제거한 후 다시 붙였다. 드르르륵 뜨르르륵... 위이이이잉.... 뚫고 갈고 파내는 치과 특유의 기계음은 치료가 끝난 후엔 맞잡고 있던 손에 손톱자국이 생길 만큼 긴장과 공포를 일으켰다. 10개월을 다녔는데도 여전했다.
삼일 전에 또 앞니가
떨어졌다. 복숭아를 먹다가였다. 딱딱한 복숭아도 아니었고 물컹한 복숭아를 앞니를 피해 옆으로 밀어 넣어 씹었는데 앞니 자리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씹던 복숭아를 뱉어 찾아보니 떨어진 앞니가 나왔다. 붙인 지 2개월은 지났으니 떨어질 때가 되지 싶기도 했다.
또 치과에 가서 입을 벌리고 누워 공포의 기계음 소리를 들을 것을 생각하니 가기가 싫어졌다. 삼일 정도는 특별히 외출할 일도 없었다. 앞니 빠진 영구의 모습으로 집에서 이틀을 지냈다. 처음에 앞니가 빠진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던 남편과 아들도 이젠 익숙해졌는지 앞니가 빠진 채로 잔소리를 하고 음식을 먹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비가 쏟아지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는 어둑어둑하고 흐린 날이었다. 치과 예약을 오후 두 시로 잡았다. 치과 진료 후엔 헤어숍에 갈 생각이었다. 단골 헤어숍에 전화를 했다. 없는 전화번호라는 맨트가 나왔다. 그 사이 문을 닫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조금 일찍 집을 나서서 치과 근처의 다른 헤어숍을 찾아보기로 했다.
오후 1시 30분쯤 집을 나섰다. 먼저 위치를 어렴풋이 알고 있는 헤어숍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치과 치료가 끝난 오후 세 시 정도면 좋을 것 같았다. 떨어진 임시치아와 우산을 챙겨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공동현관을 지나 주차장을 지나 도로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넜다.
아뿔싸!!! 그녀는 갑자기 손으로 입을 가렸다. 마스크를 잊어버리고 나온 것이었다. 다시 돌아가서 마스크를 가지고 나오기가 귀찮았다. 먼 거리도 아니고 단지 헤어숍만 잠깐 들르면 되니까 그냥 말할 때 손으로 입을 가리기로 했다.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해서 우산을 펼쳐 들었다. 처음 눈에 띈 헤어숍은 문을 닫았고 두 번째 헤어숍은 남성 커트를 전문으로 하는 것 같았다. 세 번째로 눈에 띈 곳은 여자 손님 한 명만이 파마를 말고 앉아 있었다. 치과 예약 시간이 임박했으므로 그녀는 문을 열어 손잡이를 잡은 채로 안으로 머리만 디밀고 카운터에 서 있는 직원에게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혹시 여기 3시 예약 가능한가요? 30대나 40대쯤 되어 보이는 미용사는 잠시 컴퓨터를 들여다보더니 3시 예약 가능하다고, 무얼 하실 거냐고 물었다. 좀 자를 거예요 커트... 했더니 세 시에 오세요... 했다. 네 그럼 세 시에 올게요... 말하고 문을 닫고 서둘러 치과로 향했다.
아뿔싸!!! 치과 앞에서 그녀는 또 한 번 깜짝 놀라며 한 손으로 입을 때리듯이 막았다. 헤어숍에서 말을 할 때 손으로 입을 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맙소사!!! 그러니까 앞니 빠진 영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 것이었다. 남편과 아들 외에 아무도 보지 않은 앞니 빠진 모습을...
그 미용사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뭐야... 세상에... 요즘에도 저렇게 다니는 사람이 있나? 늙은이도 이젠 치아가 빠진 채로 살지 않는데... 이상한 여자 아닐까... 보통의 정상적인 여자가 앞니가 빠진 채로 아무렇지도 않게 나돌아 다닐 수는 없을 텐데...
미용사가 했을 수도 있는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자 부끄럽고 창피하기보다 웃음이 났다.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헤어숍에서 했던 말을 재현해 보았다. 무뚝뚝하게 말을 했다면 앞니 빠진 곳이 윗입술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살짝만 미소 지어도 시커먼 빈 공간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는 봤을 것으로 확신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분명 얼굴에 미소를 지었을 것이므로. 그것은 오랫동안 서비스직이라는 감정노동에 종사해서 습관처럼 되어버린 표정이므로. 그녀는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은 표정으로 다시 한번 재현해 보았다. 이런 모습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말을 했다 이거지... 앞니가 아니라 머릿속 나사 한 개가 빠진 모습인걸... 우하하
손으로 입을 가리고 실실 웃으면서 상가 4층에 있는 치과에 들어섰다. 늘 북적이던 치과가 조용하고 진료대도 모두 텅 비어 있었다. 오후 1시 57분. 투명 유리로 된 출입문의 글자를 확인해 보니 오후 2시까지가 점심시간이었다.
정확히 오후 2시가 되자
직원용으로 사용되는 공간의 커튼을 열며 낯익은 간호사가 차트를 들고 카운터로 나왔다. 이어서 남자 고객이 출입문으로 들어와 고객용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소파에 앉는 대신 카운터 앞에 서서 카운터에 팔을 올려놓았다. 뭔가 치료 관련 문의를 하려는 자세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간호사가 밝은 모습으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앞니 떨어져서 2시 예약한... 그녀가 말했고 간호사는 네... 알아요... 잠시만 앉아서 기다리세요... 하고는 카운터 의자에 앉아 차트에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상하게도 조금 전의 상황을 얘기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다.
저기요... 하고 간호사에게 말을 걸었다. 차트에 뭔가를 계속 쓰고 있던 간호사가 기계적으로 네 고객님 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 친절한 미소도 잊지 않았다. 저 있잖아요 제가 잊어버리고 집에서 마스크를 안 가지고 나왔잖아요...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그러나 간호사는 또 잘 학습된 친절함으로 네 고객님 진료 후 마스크 챙겨 드릴게요... 말하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차트에 뭔가를 계속 기입했다.
그게 아니라 제가 이런 모습으로... 간호사는 더 이상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포기하려는 찰나 또 한 명의 낯익은 간호사가 커튼을 열며 카운터로 들어섰다.
있잖아요 간호사님...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그 간호사에게 말을 걸었다. 네 고객님... 간호사는 당연히 치료에 관한 질문인 줄 알고 친절하고 정중하게 눈을 맞추었다. 너무나 업무적인 표정이었기에 나오고 싶어 근질거리던 수다가 눈치를 채고 쑥 들어갔다. 아니에요... 그냥... 좀 우스운 일이 있어서... 하고 얼버무렸다. 간호사는 금방 컴퓨터를 두드리며 업무 모드에 들어갔다. 무슨 일인지 묻지 않았다.
웬 주책이야... 나 이런 사람 아닌데...
고객용 소파에 앉아 자아비판을 하고 있는데 드디어 또 다른 간호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가장 어려 보이는 간호사였다. 여기로 오세요... 간호사는 맨 앞쪽 진료대로 그녀를 안내했다. 간호사가 진료대 주위에서 각종 기구들을 만지며 진료 준비를 했고 그녀는 익숙하게 치료 의자에 앉았다. 왼쪽에 설치된 개수대에서 종이컵에 물을 받아 입안을 여러번 헹구어 냈다. 있잖아요 간호사님... 나 앞니 떨어진 상태로 좀 전에요... 간호사는 미소 띤 얼굴로 기구와 기기들을 만지는 동작을 멈추지 않고 그녀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미용실에 들렀거든요...라고 말하자 간호사는 얼굴을 다시 진료용 기기와 기구로 돌렸다. 계속 듣고는 있겠다는 듯 얼굴에 친절한 미소를 짓고는 있었다. <2화에 계속>
#임플란트 #치과진료 #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