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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니 떨어진 그녀, 그녀는 왜 2화

by 찌니


그녀는 치과 진료용 의자에 앉아서

간호사를 향해 허리를 틀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세상에 내가... 손으로 입을 가리지도 않고 말을 했다니까요... 세상에... 너무 웃기지 않아요? 의자의 등받이가 바닥으로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다. 간호사는 여전히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완전히 누운 상태로도 그녀는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너무 웃기지 않아요? 요즘 세상에 앞니가 빠진 채로 돌아다니는 여자가 있나? 이상한 여자 아닌가? 미용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생각할수록 너무 어이없고 웃긴 거 있죠? 크크크... 비는 부슬부슬 오는데... 앞니 빠진 여자가... 문을 벌컥 열고는... 크크크...

간호사는 여전히 민첩하게 손을 놀리며 미소 짓는 얼굴로 비 오는데 파마하시게요? 묻고는 위로 좀 더 올라오세요... 했다. 비 오는 날은 파마가 잘 나오지 않는데...라는 의미가 들어 있음을 그녀는 알았다.

그녀는 진료대에 바로 누운 채로 몸을 움직여 벌레처럼 꿈틀꿈틀 위로 올라갔다. 김이 좀 셌다. 말의 요점은 파마가 아닌데...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파마하려는 게 아니라 좀 자르려고요...라고 대답했다. 그녀의 얼굴에 입의 위치만 뚫린 덮개가 씌워졌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덮개를 살짝 걷으며 한번 더 말했다. 근데 너무 웃기지 않아요... 여기 보세요... 이렇게 앞니 빠진 여자가 얼굴을 디밀고 말을 걸었으니... 마지막으로 진짜 진짜 웃기지 않느냐고 부드럽게 강요해 보았다. 속으로는 왜 웃기다고 말을 해주지 않느냐고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댔다.

호호호... 간호사가 낮고 짧게 웃음소리를 내고서 치료용 기구를 끌어왔다. 그녀는 덮개를 다시 덮었다. 아 하세요... 간호사가 얼굴 위에서 친절하게 말했다.


임시치아를 다시 붙이고 치과를

나왔다. 비는 그쳐 있었다. 예약 시간에 맞춰 헤어숍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미용사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로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는 좀 전에 3시 예약했던...이라고 말했다. 그제야 미용사는 확실히 기억났다는 듯 더욱 밝은 미소로 그녀를 의자로 안내했다. 어떤 머리를 하고 싶냐고 물었다. 단발커트나 보브커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미용사는 파마를 같이 하지 않을 거면 단발커트를 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그녀는 단발커트로 결정했다. 미용사는 그녀에게 미용보를 덮어 씌우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대략적인 커트 길이를 가늠했다.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다가 윗입술을 들어 올려 치과에서 붙인 임시치아 상태를 확인했다. 임시치아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조금 전에 예약하러 왔을 때 저 좀 이상하지 않았어요? 결국 그녀는 거울 속의 미용사를 상대로 수다를 시작했다. 뭐가요? 미용사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분무기를 뿌리며 심상하게 되물었다.

저 아까 예약하러 왔을 때 앞니 없었는데...

그랬어요? 몰랐는데...

너무 웃겨서요... 손으로 가리고 말하려고 했는데 잊어버리고 그만... 못 알아보셨어요?

네... 몰랐는데...

미용사는 심드렁하게 대꾸해 주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거울 속 미용사의 얼굴엔 그녀가 기대하는 웃음이 보이지 않았다. 관심도 반응도 호응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비 오는 어둑어둑한 오후에 앞니 빠진 여자가 문을 열고 고개를 디밀고 말을 건네는 그 장면이 자꾸 되풀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웃음을 삼키느라 두 볼이 자주 실룩거렸다. 한번 더 좀 더 실감 나게 말해주고 싶었다. 자신의 일에 집중해 있는 표정 없는 얼굴에 웃음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이 미용사는 고객을 상대로 수다를 그리 떨지 않는 성격인가 보았다. 그녀는 말을 많이 걸어오는 미용사보다 최대한 말을 걸어오지 않는 미용사를 선호했다. 간호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오늘은 좀 이상하군 내가... 그녀는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가족과 오래되어 친밀한 친구

외에 타인을 상대로 수다를 떠는 성격이 아니었다. 수다라니...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것조차 싫어했다. 못 들은 척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어폰을 끼고 다니기도 했었다. 그녀는 그렇게 열린 성격이기보다 닫힌 성격이었고 밖으로 발산하기보다 안으로 침잠하는 성격이었다.

‘도플갱어’ ‘옹고집전’이 생각났다. 진짜의 그녀는 집 밖에 나가지 않았는데 그녀를 닮은, 혹은 그녀의 분신이 집 밖을 나가 앞니가 빠진 채로 돌아다니다가 아무 관심도 없는 타인을 붙잡고 푼수처럼 백치처럼 실실 쪼개며 수다를 떨어대다가 돌아온 것 같았다. 머리에 꽃을 달지 않았을 뿐이지 히죽히죽 웃는 얼굴로 돌아다니며 아무한테나 말을 걸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X X X과 무엇이 다른가...

왜일까?

그녀는 그녀의 그녀답지 않은 행동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이유가 없는 듯해도 파고파고 들어가 보면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게 마련이었다.

남편은 가끔 아주 심한 복통이 있어 왔다. 식은땀을 흘리며 주저앉아 숨을 규칙적으로 고르며 복통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검진 결과는 담관결석과 담낭결석이었다. 담관의 결석은 수면내시경으로 제거하고 담관의 결석은 복강경수술로 떼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59세이고 남편은 62세였다. 남편은 주말마다 등산을 다녔고 그녀는 하루에 만보 걷기를 실천하고 있었다. 한 달에 한두 번쯤은 둘이서 함께 등산을 가기도 했다. 건강했으므로 그 외에 유기농이니 채식 위주니 보양식이니 영양제니 하면서 특별히 건강을 챙기지는 않았다. 이번이 그들에게는 첫 입원이고 첫 수술이었다. 남들은 담낭 즉 쓸개 제거 수술은 간단한 수술이고 떼어내면 고쳐지는 병이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했다. 그들도 참 다행한 일이라고 서로를 위로했다.


종합병원은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코로나 이후 보호자 동반 입원이 금지되었다고 해서 남편 혼자 입원했다. 수술 당일을 제외하고 하루에 한 번씩 면회를 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입원 5일 만에 복강경 수술로 복부에 뚫은 세 개의 상처에 테이프를 붙이고 한 보따리의 약을 처방받아 퇴원했다. 집에서 지내는 일주일의 회복기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기름기 없고 자극적이지 않은 순한 가정식 환자용 음식을 하루 세끼 꼬박꼬박 차려냈다. 새우젓으로 간을 한 맑은 순두부찌개나 전복을 넣은 미역국을 끓였다. 평소에 기름을 넣고 볶던 새송이버섯이나 감자채도 끓는 물에 데쳐서 간을 했다. 짙은 갈색으로 조려 내던 연근조림도 희끄무레하게만 조렸다. 계란말이도 계란찜으로 바꾸었다. 토마토와 당근을 익혀서 주스를 만들어 주었고 간식으로는 꿀을 넣은 시원한 미숫가루를 타서 주었다. 에어컨을 하루 종일 가동했다. 저녁이면 집 근처 천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남편은 2주의 병가를 쓰고 전에 비해 두 볼이 홀쭉해지고 주름살이 선명해지고 헐렁해진 옷을 입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그녀의 걱정과 연민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을 시작했다.

그래서... 뭐? 그러면 된 거 아니냐고? 앞니가 빠진 모습을 감추는 것을 잊어버리고 미용사와 몇 마디 주고받았어. 바쁜 간호사들에게 자꾸 말을 걸었어. 주책없이 눈치도 없이 한심한 수다쟁이처럼 굴었어. 그게 뭐?

그런데 그 행위가, 그 행위를 목격한 상대방이 아닌, 본인 스스로가 그렇게 웃길 행위냐고... 오히려 부끄럽고 민망해서 감추고 싶어 해야 맞는 거 아닌가? 그리고 그런 행위를 한 이유와 남편의 수술이 무슨 상관이냐고? 수술도 잘 되었고 회복도 되었고 무사히 회사에 복귀했잖아... 잘 넘겼잖아... 그런데... 뭐?



글쎄... 완전 상관이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최근의 일상의 변화란 그것밖에 없었다.

남편의 검진과 입원과 퇴원과 회복기의 한 달 가까운 기간 동안 그녀는 밝게 생활했다. 웃기는 농담을 자주 하여 남편이 수술한 배를 움켜잡고 웃게 만들기도 했다. 걸핏하면 쓸개 없는 놈이라고 남편을 놀렸다. 그들은 어느 때보다도 다정하게 잘 보냈다. 아니 30년 넘는 결혼생활 중 가장 다정하게 보낸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은 자주 불안하고 신경이 곤두섰다. 느린 식사 후 한 움큼의 약을 삼키고 저 혼자 왕왕거리는 티브이 앞에 입을 무방비로 벌린 채로 축 늘어져 잠들어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갑자기 남은 생이 공포로 다가왔다. 온몸이 오싹해지고 기운이 빠져나가며 무릎이 꺾였다. 이제 우리 스러져 가는구나... 늙고 병들어 죽을 일만 남았구나... 그랬었다 그녀는...

집에 돌아온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머리는 깡뚱해졌고 앞니는 단단하게 잘 붙어 있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느닷없이 덮쳐온 생의 공포를 떨치고 일어나고 싶었구나... 희화화하고 싶었구나... 어떻게 해서든 웃고 싶었구나... 그래서 그런 거였어... 그녀는 그녀 자신이 내린 결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거울 속의 자신에게 미소 지었다. 그것으로는 뭔가 부족하여 한 팔을 들어 올려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이라고 외쳐 주었다. 끝.


#앞니 #앞니임플란트 #임시치아 #담낭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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