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고전의 장면과 표현’이라는 전공과목의 3-1학기 중간 과제물 평가에서 만점을 받았는데 처음으로 교수님의 ‘평가의견’을 받았다. 기쁜 마음에 교수님의 평가의견과 나의 과제물을 공유해 본다. 아울러 스산한 겨울 초입에 심금을 울리는 우리의 고전시를 한 번 감상해 보는 시간도 가져보길...
과제는 ‘교재에 나와 있는 고전시들 중 두 작품을 읽고 긍정적인 평가와 감상을 그 이유와 함께 서술하시오’ 였다.
한문은 생략했으며 어려운 고문도 쉽게 풀어서 썼다.
제목 : 이화우
지은이 : 매창
배꽃이 비처럼 흩날릴 때 울며 잡고 이별한 님
낙엽 떨어지는 가을날에 저도 날 생각할까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이별의 모습은 다양하다. 끝까지 자기의 감정을 감추고 덤덤하게 이별하는 사람도 있고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 눈물 콧물 흘리며 이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덤덤하게 이별한 후 돌아서서 감정이 폭발하는 경우도 있고 감정을 폭발시켜 이별한 후 덤덤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덤덤하게 이별하고 덤덤하게 살아 가는 경우도 울며불며 이별한 후에도 시시때때로 그리움에 눈물 흘리는 경우도 있으리라. 이 시를 쓴 매창은 울며불며 이별했다. 그것도 배꽃이 비처럼 흩날리는 봄날에. 아름다운 봄날의 이별이어서 더욱 큰 슬픔이 느껴진다. 시의 효능 중 하나인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준다.
계절은 바야흐로 나뭇잎 떨어지는 가을이다. 누구라도 생각나고 그리워질 계절이다. 하물며 울며불며 이별한 임이라면 이 가을에 얼마나 그리울까. 그리움의 끝에 저도 날 생각할까 싶은 의문이 고개를 든다. 어리석은 미련한 마음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그리워하는 만큼 상대방도 나를 그리워해 주길 바라는 인지상정의 마음이다. 그러나 생각하고 있겠지, 가 아니라 생각할까, 라고 표현했다. 이는 자신 없음의 표현이기도 하면서 생각해 주길 바라는 간절함도 느껴진다. 사무치게 생각나고 그립지만 만날 수 없기에 꿈에서나 만나기를 기원하는데 그 꿈도 오락가락할 뿐이란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이별의 아픔과 이별 후의 그리움이라는 인간 보편의 정조를 이화우의 봄과 추풍낙엽의 가을이라는 계절로 압축하여 표현함으로써 그 여운이 짧지만 강렬하다.
제목 : 두고 가는 사람의 마음과
지은이 : 미상
두고 가는 사람의 마음과 보내고 있는 사람의 마음과
두고 가는 사람은 눈이 남관을 덮어 말이 나아가지 못할 뿐이나
보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매년 풀이 돋을 때마다 생각나는 끝이 없는 한이다.
이 시는 사랑을 하다가 이별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이별을 당한 사람, 즉 찬 사람과 차인 사람의 마음을 대비시켜 놓았다. 찬 사람을 ‘두고 가는 사람’으로 차인 사람을 ‘보내고 있는 사람’으로 표현한 것이 흥미롭다.
‘두고 가는 사람의 마음’은 ‘한유’의 시에 나오는 ‘설옹남관에 마부전 뿐이여니’ 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두고 가는 사람의 마음은 눈이 남관을 뒤덮어 말이 나아가지 못할 뿐이니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잠시 갈 길을 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곧 한 번의 가책을 느낄 뿐 떠나면 그뿐이라는 것이다.
반면 ‘보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방초년년에 한불궁이로다’ 라는 조선 중기 ‘이달’의 시를 인용했다. 매년 풀이 돋을 때마다 생각나는 끝도 없고 헤어 나올 수도 없는 슬픔임을 강조하고 있다. 즉 찬 사람은 이별의 순간만 슬프지만 차인 사람은 이별 후 기나긴 그리움의 시간을 견디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결정으로 사랑에 종말을 고한 사람의 마음과 자신의 결정과는 무관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음에도 사랑의 종말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의 마음을 옛 시의 구절을 인용해서 아주 절묘하게 표현했다. 그래서 언젠가 차거나 차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때를 돌아보게 한다. 찼던 사람에게는 일말의 후회와 미안함을, 그리고 차였던 사람에게는 아련한 아픔과 슬픔을 느끼게 하여 무미건조한 일상에 묻혀 있던 감수성을 건드려 준다.
평가 의견 : 진솔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과제 잘 읽었습니다. 수업을 열심히 들어주신 흔적이 과제에 묻어 있어 더욱 고맙네요. 선생님의 감상을 읽으며 저도 다시금 작품을 상기해 보게 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고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