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휴가를 내고 잠깐 한국에 들어갔을 때였다.
동생과 잠들기 전 이야기를 하다가, 무심코 "요즘 긴 자막 없이 평범한 일상 담은 영상 보면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말했다. 동생은 신기한 듯 웃으며 “그게 언니한테 힐링이면 내가 만들어줄게”라고 했고, 나는 그 말에 덥석 “그래, 자매 유튜브 한 번 해보자. 나는 미국, 너는 한국에서 일상 담자”라고 부추겼다. 하지만 동생은 “글쎄, 영상 만드는 게 귀찮아서 그건 좀…”이라며 일단락을 지었다.
그 이야기는 그렇게 지나가는 소소한 에피소드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웬 걸,
바로 어제저녁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띵동”이라는 단어만 처음 읽었을 때는 '웬 광고성 문자가 동생 이름으로 왔지' 라며 의아해했는데, 알고 보니 동생만의 귀염뽀짝한 힐링 브이로그 알림 문구였다.
그 밑에 주의사항으로 '이 영상은 고객님만을 위한 것으로 외부의 유출을 금지합니다'라는 문장은, 가히 어느 유명한 브랜드의 VIP 계약 문구 같기도 했다.
5분의 영상 속에는, 내가 앞서 말한 여느 힐링 브이로그처럼 동생의 일상이 담겨 있었다.
왕복 3시간 동안 전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풍경,
이른 아침부터 배드민턴을 치는 어르신들을 보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는다는 이야기,
회사에서 대부분 앉아 있는 시간이라 일부러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으로 이동한다는 장면까지.
닮은 듯 안 닮은 듯 한 우리 자매지만, 이런 것만큼은 자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그리고 매일 계단을 오르며 동생이 마주한 문장을, 영상에 담아 나와 함께 나눠줬다.
네가 잘 있다는 소식이
The news that you’re doing well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봄꽃으로
makes me bloom
like the happiest cherry blossom in the world
나를 피어나게 한다
- Greetings/Nam Jeong-rim
안부/남정림
그 뒤에 이어지는 동생의 자막,
누군가의 안녕을 바란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
Wishing for someone’s well-being is harder than it seems,
만약 누군가의 소식이 반갑고 기쁘다면
If hearing from someone brings you joy and happiness
그 사람은 나한테 정말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that person must be really important to you
나만 보기를 바라는 영상이니, 아마 이건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동생의 말이었을 것이다.
차마 얼굴을 맞대고, 전화로 말하기는 낯간지럽고 부끄러운 말을 영상을 통해 전해 들을 때,
마음이 따스해졌다.
문득, 올 초에 읽었던 양귀자님의 소설 ‘모순’을 읽고 블로그에 적은 글이 떠올랐다.
"요즘의 나는, 그 어떤 부귀영화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보다 이 세상에 의지할 사람 단 한 명도 없는 삶 속에서
꿋꿋이, 묵묵히 살아갈, 어디엔가 있을 그 사람들을 존경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지금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가끔 별일 없는 날인데도 가슴 한편에 무겁고 축축한 진흙이 얹힌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딱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데, 멍하고, 살짝 동떨어진 것만 같은 느낌.
그런 와중에 동생의 브이로그는, 멀리 있어도 나를 믿고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다시금 상기시키게 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가만히 떠올려주는 그 마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낀다.
내가 지금 이렇게 잘 지낼 수 있는 것도,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분명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위해 마음을 모아주는 이들의 간절한 바람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 사실을 또 잊고만 지냈다.
오늘 아침, 자연스레 7시에 눈이 떠졌다.
오랜만에 시편을 묵상하고 필사를 하며 기도를 드렸다. 그러면서 그 고마운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다윗처럼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 속에서, 세상 모두가, 심지어 아들조차 외면할 때, 자기 자신을 부정하기보다 하나님을 구하는 믿음.
그 믿음이 아직 나에게는 없지만, 그럼에도 내 쓸데없는 생각들은 다 내려놓고 그분의 도우심만 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