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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살아보니 보이는 것들

by 밍풀


여행이 아닌 삶으로서 한 도시에 오래 머물다 보면, 예전과는 다르게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시애틀


시애틀에 살기 전에는 비 오는 날의 매력을 알지 못했다.





화창한 날을 좋아했기에 비 오는 날은 그저 우중충하고, 질퍽이는 땅을 밟는 게 성가신 날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비 오는 날의 몽글몽글한 분위기가 오히려 좋다. 따뜻한 핫초코나 커피 한 잔을 들고 창밖을 여유롭게 바라봐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정적인 감성이 좋다.






게다가 흐린 날씨 덕분에 햇볕에 주근깨가 생기지 않는다는 실용적인(?) 이유도, 이제는 그 나름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여름의 시애틀은 초록초록한 나무들 사이로 싱그러운 공기가 시애틀이라는 도시를 좋아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시카고


시카고에 살기 전엔 그저 혹독한 겨울바람과 마피아로 가득한 위험한 도시로만 생각했다.


물론 아직도 특정 지역은 위험하지만, 살아보니 결국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된다.


오히려 북적이는 여행지는 밤 9시쯤 적당히 늦은 시간에도 안심하고 걸어 다닐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미국에서 이렇게 늦은 시간에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무엇보다도, 살면 살수록 시카고가 얼마나 매력적인 도시인지 느끼게 된다.


뉴욕보다 저렴한 물가, 깨끗한 거리, 계절마다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생활, 그리고 예술과 건축, ‘미’의 도시.



각기 다른 색과 디자인의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는 시카고를 바라보다 보면, 우리 또한 각기 다른 모습과 매력으로 세상을 조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작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한국 서울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 살 땐 똑같은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한옥이나 산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유학생활 3년 후에 다시 본 서울은 내가 알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광화문 한복판, 자랑스러운 이순신 장군 동상 너머로 보이는 북악산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역사와 현대가 어우러진 풍경이었다.


잠시 한 걸음 물러서서, 여유를 갖고 바라보니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었다.




익숙했던 환경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서 지내다 보면,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익숙한 것들의 소중함이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추억하게 된 시간은, 어둡고 깜깜했던 시절조차 마치 무지갯빛 프레임에 투사되어 은은한 찬란함으로 기억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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