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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the happy ending

해피엔딩 그 후, 예쁜이와 새끼들의 이야기

by 미소



20220524_122257.jpg 예쁜이의 새끼들. 맨 위가 세치, 그다음이 뿌꾸, 왼쪽부터 네찌, 두치, 한치. 한치가 만세를 하고 있다.



이제부터 이어질 세 편의 이야기는 전편 <미처 하지 못했던 사랑의 기록> 6화의 주인공, 예쁜이와 그 새끼들에게 있었던 일들이다. 아래 링크에 예쁜이와의 만남과 한치, 두치, 세치, 네찌, 뿌꾸의 탄생 까지가 기록되어 있다.

https://brunch.co.kr/@20052023/17




20220821_073455.jpg 어느 초여름. 콩알이를 포함해 예쁜이의 새끼들이 한데 모여있다. 뒤쪽 왼편부터 콩알이 한치, 두치, 네찌, 세찌, 뿌꾸.



우리는 모두 해피엔딩을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엔딩을 모른다. 그 엔딩이 슬플지 기쁠지도 당연히 모른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즐기는 소설이나 영화 같은 것들은 대체로 끝이 존재하고, 명확하다. 슬프다면 슬프게, 행복하다면 행복하게, 때로는 독자의 상상에 모든 것을 맡기는 열린 결말까지. 이야기는 우짜든동 정해진 페이지를 다 읽으면, 러닝타임이 끝나가면, 결말이 난다. 나의 마지막조차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는 인간의 삶과는 확연히 다르다. 인간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의 결말에 대한 궁금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20221010_142506.jpg 다정한 남매, 한치와 두치. 뒤에 가려진 고양이는 막내 뿌꾸다. 햇살 아래 눈을 지그시 감은 한치가 참 예쁘게 나왔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보았던 해피엔딩 하나를 여기에 끌어다 놓기로 한다. 바로 예쁜이와 새끼들의 이야기다. 예쁜이는 한치, 두치, 세치, 네찌, 뿌꾸라는 귀여운 다섯 마리 고양이를 우리 집에 낳아두고 그들이 다 커서 우리 집을 영역삼을 수 있을 즈음 자기만의 영역으로 훌쩍 떠났다. 새끼들을 독립시킨 멋진 엄마 예쁜이와 포실하게 자란 그의 새끼들. 그런 해피엔딩.


나는 가장 행복한 시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중단했다. 그렇게 해피엔딩인 척을 했다. 인간의 삶처럼, 모든 생명체의 삶은 죽는 그날까지 등락을 거듭한다는 사실을 잠시 멀리 미뤄두었다.


오늘은 해피엔딩 다음의 이야기를 꺼내는 날이다.





20230212_093713.jpg 두치와 한치의 뒷모습. 무늬의 생김새가 닮았다. 꼭 한치의 무늬가 두치의 몸으로 퍼져나가는 듯한 사진이다.



'7월 이후, 끝날 것은 없었다'를 쓸 당시, 한치는 이미 고양이별로 떠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는 막 노랑이의 죽음에 대해 긴 이야기를 겨우 마무리 한 상황이었던 데다, 노랑이가 죽기 전에 일어났던 한치의 죽음이 너무 순식간에 찾아온, 예외적인 일이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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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6_103143.jpg 농막 구석 고양이들 자리. 한치가 가장 좋아하던 자리다. 네찌와 함께 있는 사진. 한치는 저 타이어 침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한치는 어느 날,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자리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어떠한 외상도 없었다. 아빠가 가장 먼저 발견했고, 엄마와 아빠는 내가 오기 전에 한치의 식은 몸을 정리했다. 그래서 나는 한치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 하루 전까지도 쌩쌩하게 자기 형제들과 돌아다녔던 한치가 너무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예쁜이는 이 사실을 모른다. 예쁜이가 새로운 영역을 찾아 떠난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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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7_152048.jpg 한치의 청소년 고양이 시절.


한치는 참 다정한 고양이였다. 아마 살아있었다면, 두치와 다른 형제들과 함께 우리가 퇴근할 때마다 마중을 나왔겠지. 우리를 부르는 야옹야옹 소리가 참 귀여운 고양이였다.







그다음은 두치가 다른 고양이에게 습격을 당한 일이다. 이는 전편의 노랑이 이야기와 콩알이 이야기에서 조금 언급했던 사건이다.




재작년 여름 즈음, 며칠 보이지 않던 두치가 배가 부은 채 나타났다. 중성화 수술은 벌써 시킨 뒤였다.


두치는 예쁜이의 새끼들 중 나를 가장 잘 따르는 고양이였는데, 이상하게 내 근처에 오지 않기에 쫓아가서 외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중성화 이후 점점 통통해져 가던 두치이기는 했지만, 가까이 보니 배뿐만 아니라 눈두덩이를 비롯해 온몸이 부은 느낌이었다. 특히 배가 많이 늘어져있어 자세히 보니 잇자국 두 개가 선명했다. 근처의 고양이와 싸우다 크게 물린 것 같았다.




병원에 데려가자마자 수의사 선생님은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상처가 너무 심했고, 상처가 난 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내부가 곪았을 거라고도 했다. 상처 아래는 바로 주요 장기들이 있어서 정말 위험한 상태였다. 하루만 더 고민했다면 우리는 두치를 잃었을 것이다.



20230708_122957.jpg 수술받고 온 날 두치. 타이어 뒤쪽이 농막 고양이문인데, 바로 닫아버렸다.




수술이 끝나고, 수의사 선생님은 절대 넥카라를 벗기지 말고 빨리 환묘복을 입히기를 권했다. 붕대를 감아두기는 했지만 동물들은 붕대 같은 건 순식간에 풀어버린다. 게다가 상처 자리의 피부가 너무 얇아서 두치가 뜯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고양이가 핥거나 어디 긁히기만 해도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환묘복부터 주문했다. 예상대로 병원에서 씌워 준 붕대와 배껍데기 같은 뭔가는 반나절만에 흐트러졌고, 엄마는 헐렁해진 내 양말을 하나 잘라 씌워주었다.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두치의 밥을 챙기며 넥카라를 풀고 상처를 소독해주어야 했다.





그러려면, 넥카라도 못 벗고 털까지 밀린 채 꿰맨 상처에 붕대를 둘둘 감은 두치가 자유롭게 농막을 들락거리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렇게 두치는 농막에 갇히고 말았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그들과의 삶과 이별을 담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읽고 싶으시다면, 아래 <미처 하지 못했던 사랑의 기록> 링크를 눌러보세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기 시작하던 시절의 기록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200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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