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을 적응하나 싶어 한숨을 돌렸다.
그런데 어느날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나에게 "어머니 민이는 말을 안해요. 들어서 이해는 다 하는데 말을 안해요. " 나는 걱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말하지 않을까요 대답했던 나에게 선생님께서는 그래도 몇마디는 해야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세히 지켜보니 엄마 아빠 이외에는 안하는 것이다. 그 시기가 23개월 때였다.
사실 모르고 있었다. 독박육아에 지쳐서 그저 잘 먹고 잘 자면 그걸로 만족스러웠다. 나는 말하는 직업이라 그런지 집에서는 말을 잘 하지 않았고 아이와 어떤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지 아니 대화를 해야하는지 조차 몰랐다. 아이를 데리고 나의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나와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아이에게 말을 거는 그 장면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이럴러면 나는 왜 만난건가 싶고, 더욱이 시끄러웠다. 육아에 지친 나는 그 당시 그랬다.
15개월쯤 첫번째 어린이집 선생님을 통해서 끊임없이 아이를 향해 대화하는 방법을 배웠고 지난 시간에 대한 반성으로 열심히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최선을 다해 말했다. 더불어 원래 읽어주던 책도 가열차게 읽어주었다. 책을 읽어주다가 잠들고 이야기를 하다가 잠들고... 그랬지만 아이는 23개월까지 입을 열지 않았고 두번째 어린이집에서 아이 선생님께 저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혹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가진 확신은 한가지이다.
배운 것은 어디 안간다. 가르친 것도 어디 안간다. 그것들은 어딘가에서 꽃을 반드시 피운다.
차고 차고 차다가 넘치는 그 어느 날 말은 할 것이다 라는 확신으로 계속 계속 대답 없는 말은 계속 되었다.
선생님과 상담을 한지 한달여쯤 지나서 24개월에 한 문장을 말하고 그 다음주에 두문장을 말하고 또 그 다다음주에 여러문장을 엮어서 하기 시작했다. 이제 됐구나. 드디어 됐구나.
이 때부터 나는 조기교육 신봉자가 되었다. 공교육을 하는 사람이 조기교육이 왠말이냐 했던 생각은 버리고 나는 엄마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아이는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알게 되었다.
가지고 태어난 것이 있더라고 가르치지 않고 자극해주지 않으면 발휘가 안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꼈다.
또한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아이의 성향은 무언가 완전하게 완성되었을 때 발휘를 하는 성향이다. 공부를 시켜보아도 빠른 시간에 습득하기 보다는 습득할 때 여러번 굳혀서 천천히 다독이면서 나아가야 하고 한번 굳혀진 것은 오래 보존이 되는 아이였다.
아이의 성향을 파악해야 공부방법도 결정되고 선행을 할지 말지, 얼마나 할지, 어느시기에 할지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우선 엄마가 잘 파악하는 것이 아이 엄마 선생님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럼 성향은 어떻게 파악할 수 있나?
내 아이를 보는 것이다. 다른 아이를 보고 내 아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만 보는 것이다.
내 아이를 유심히 보다보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해결이 되었을 때의 반응이 어떤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자세히 보다보면 성향 파악도 되고, 칭찬할 점도 보이고, 보완할 점도 보인다.
학교에서도 학생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려고 관찰과 대화를 깊게 한다.
성향에 따라 훈계도 공부방식도 조금씩 다르게 접근을 하면 그 이전에 일방적인 방식보다 훨씬 잘 적용된다.
이렇게 내 아이를 통해 나는 성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