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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Apr 19. 2024

한 여름 마츠리를 준비하는 눈부신 햇살 같은 녹차

루피시아 8246. 카가고사이

어쩐 일인지 루피시아 지유가오카 매장에서 한정이라는 두 글자만 겨우 알아보고 냅다 집어온 차가 모두 가나자와 한정이었어서 오늘도 가나자와 한정 차. 후쿠우메는 지난번 시음기를 썼고 오늘 이야기할 차는 카가 고사이, 한자를 그대로 읽으면 가하오채라고 하는 차이다. 지역한정이다 보니 당연히 가나자와의 특징을 내세운 블랜딩으로 가향 녹차인데 자세한 건 일러스트를 보면서 이야기하는 게 나을듯하다. 일러스트 캔입으로 50g에 1100엔. 상미기한은 1년이다.

찾아보니 꽤나 오래된듯한 일러

일단 일러스트에 다섯 가지 색이란 이름을 나타내듯 다섯 종류의 색들이 보인다. 이것은 가나자와의 전통 무늬염색법인 카가유젠에 쓰이는 다섯 가지 색을 칠해놓은 것인데 일러스트가 상징적으로 잘 뽑힌 것 같다. 오채라고 불리는 황토색, 풀색, 자주색, 파란색, 붉은색의 다섯 가지 색을 사용하는 염색법으로 일본 전통의상에 여러 무늬나 문양이나 그림들을 염색하는 카가유젠을 리본 묶음처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이름 자체가 오채인 만큼 색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니까. 그에 매치되는 블랜딩 재료들도 그려진 것 같다.

카가 유젠 오 이로도류 이츠츠 노 이로 오 모치프 니, 안쥬 노 카오리 타다요우 센차 야 하쿠차, 유비 나 하나바나 오 부렌도.
카가 유젠을 물들이는 다섯 가지 색상을 모티프로 삼아, 살구 향이 감도는 센차나 백차, 우아하고 아름다운 꽃잎을 블랜드

꽤나 화려한 블랜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은 다섯 가지 색을 나타내는 재료들이 들어가야 할 테니 최소 다섯 종류. 센차에 백차 블랜딩이라니 굉장하네.

화려한 블랜딩

봉투를 열자 달달한 살구향이 거의 향수처럼 올라온다. 가향이 정말 정말 강해서 센차를 연하게 우리지 않으면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다 싶은 부분. 아니나 다를까 손님 있을 때 한번 냈더니 향이 너무 독하다는 피드백도 있었다. 건엽을 덜어내자 형형색색 화려하다. 오채의 색과 맞춰보자면 베이스가 되는 녹차가 풀색, 콘플라워로 파란색, 로즈레드로 붉은색을 표현했고 엘더플라워의 노란색, 블루멜로의 깊은 파랑이 황토색과 자주색을 각각 맡고 있는 것 같다. 백차는 은침 스타일의 백차가 들어있어서 이건… 고급짐을 담당하는 건가. 향 자체는 아무래도 가향으로만 해결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가향이 많이 진한 감이 있다.

작은 개완에선 양조절, 온도조절을 아주 잘 해야한다.

개완에서 4g, 80ml, 80도에서 50초가량 우려내었다. 가루 좀 날리는 스타일. 뜨거운 김에 살구가향이 훅 끼친다. 한참을 향을 맡아도 쉽게 향이 지지는 않는다. 조심스럽게 한 입 마셔보면 센차의 구수함이나 감칠맛은 가향에 많이 가려져 버리고 쓰고 떫은맛이 좀 더 앞으로 튀어나온다. 내가 향수국을 만들었구나. 좀 더 낮은 온도에 조금 더 큰 개완을 사용하자 비로소 밸런스가 맞는다. 온도가 조금 높다거나 찻잎이 좀 많으면 곧장 향수탕이 되어버리니 주의. 차를 진하게 마시는 편인 나에겐 꽤나 까다로운 조건이다. 교쿠로 마시듯 고소짭짤은 어렵지만 잔잔한 베이스에 살구 가향이 향긋하게 떠다닌다. 백차의 부드러움이나 섬세함은 직접적으로 느끼긴 어려웠다. 깔끔한 녹차에 화려한 살구가향이 인상적. 개완 기준으로 네 번 정도 마시면 딱 좋다.

눈부신 엽저

엽저를 보고 있으면 뭔가 여름에 잘 어울릴 것 같은 기분이다. 마츠리 같은 느낌이랄까. 실제로 개완에 우린 차를 바로바로 얼음컵에 모아서 아이스로 마셨더니 차맛이 한결 까실해지면서 나쁘지 않았다. 두세 번 그렇게 마신 듯. 형형색색 눈부신 엽저가 부서지는 여름날 햇살 같은 카가 고사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작을 하는 데 있어서 정월, 정시만 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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