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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Apr 22. 2024

시간을 돌려서 그때의 너와 함께 마실 수 있다면

마리아쥬 프레르 T8302. The Des Mandarins

한국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차생활을 하다 보면 늘 아쉬운 것 중 하나가 다양한 브랜드의 다양한 차들을 만나지 못하는 점일 텐데 마리아쥬 프레르는 그러니까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고 듣기만 해도 설레는 회사이지 않나 싶다. 정식수입도 거의 없고 수백 종의 차 중에서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건 열 가지가 채 안 되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나마 일본은 마리아쥬의 최초 해외 매장이 생긴 곳이기도 할 정도로 프랑스 본사의 메뉴가 대부분 들어와 있고 매장도 여러 군데 있어서 일본 쇼핑을 통해 많은 차들을 구할 수 있긴 하다. 그래서 오늘은 도쿄에서 사 온 마리아쥬의 백차, The Des Mandarins.

마리아쥬의 소분 봉투는 좁고 긴 형태라 마시다보면 점점 접는곳이 아래로 내려오게 된다. 거의 다 마신 뒤에 찍어서 쭈굴.

Thé blanc - Aiguilles d'argent라고 부연설명이 붙어있는데 백차 - 은침이라는 뜻으로 백호은침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가격은 100g에 8424엔으로 제법 있는 편이라 50g 단위로도 판매를 해주었다. 보통은 100g 단위로만 판매하는 마리아쥬. 그 자리에서 소분봉투 꺼내서 점원이 직접 이름을 적고 무게 달아서 판매한다. 엄청 큰 자(jar)에서 꺼내주는 멋이 있다.

평범한 백호은침

시향 할 때 부채로 펄럭펄럭해줘서 맡아본 향은 너무 신기하게 자스민향이 확 났었는데 막상 건엽을 직접 코에 대고 맡아보니 은침의 향이 딱 나긴 한다. 오히려 자스민향은 별로 안나는 느낌. 외관을 봐도 그냥 털 뽀송한 은침의 모양이다. 통통하니 보기 좋군.

백차의 인기 비결은 맑은 이미지가 아닐까

개완에서 4g, 80ml, 약 75도의 물로 50초간 우려 본다. 자스민향이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노란 수색의 백차. 한 모금 마셔보니 진한 백차의 맛인데 향은 백차가 아니라 화려한 자스민향으로 대체된다. 2,3탕으로 가니 점점 백차 본연의 향과 밸런스를 맞추면서 자스민 백차라는 정체성이 분명해진다. 본격적인 백차. 약간의 배화향도 좀 느껴지는 것 같고. 보통 백차에는 진한 티푸드를 곁들이진 않았는데 만다린은 맛과 향이 다른 은침보단 진한 느낌이라 여러모로 편안하게 마실 수 있었다. 대여섯 번, 그 이상으로 우려도 준수한 내포성을 보이는데 그 점도 맘에 든다.

품질도 괜찮아 보이고 그러다보니 납득이 되는 가격대

아무래도 마리아쥬라고 하면 뭔가 화려한 걸 기대하게 된다. 나에게 마리아쥬란 화려한 가향홍차의 근본 같은 그런 곳이니까. 그래서 이렇게 백차를 사 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고 이런저런 사유로 한동안 백차를 많이 마시게 될 줄도 몰랐다. 사 왔던 마리아쥬 중에서 단가가 가장 세서 먼저 시작했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한동안 동양차만 마시는 신호탄처럼 되어버렸다. 재밌는 게 신혼여행 때 사 왔던 스페인 Tea Shop의 딸기백차 생각이 정말 많이 나더라는 것. 풋풋한 행복의 맛이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상 온전히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 만다린 백차는 뭐랄까, 50g에 4만 원이라는 거금에도 불구하고 괜찮다고 흔쾌히 허락해 주고 등 떠밀어준 아내에 대한 감사함이 느껴지는 맛이랄까. 아무리 믿을만한 마리아쥬라곤 하지만 생산 연도도 지역도 확실하지 않은 비싼 백차를 구입하는 게, 그것도 즉흥적으로 그런다는 게 굉장히 손 떨리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감사한 마음을 표하면서 마리아쥬의 The Des Mandarins는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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