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나라의 정원사 Mar 21. 2024

생의 마지막 장소

 호텔 셀베이션(영화)


세계의 여행자들이 밀려드는 인도의 바라나시, 갠지스강 주변엔 언제나 죽음의 공기가 떠돌고 있다.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와 사람들이 엉켜있는 곳. 어느 한 곳엔 시체를 태우는 매캐한 연기가 올라오는가 하면 또 한 곳엔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몸을 정갈하게 씻고 신께 기도를 올린다. 죽음의 의식이 이들에겐 일터로 연결되는곳도 바로 이곳이다.  강 앞엔 호텔 샐베이션이 자리하고 있다. 호텔 샐베이션은 죽음을 앞둔 자들이 머무는 마지막 장소다.


다야 노인은 이상한 꿈을 꾸고 난 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는 아들 라자르와 함께 샐베이션 호텔에 투숙하게 된다. 호텔의 규칙은 딱 보름만 이용할 것이며, 식사는 스스로 해야 하며, 고기는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방은 호텔이라고 하기엔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시멘트가 허옇게 드러나고, 안 인지, 밖 인지 모를 작은방 하나가 다다. 그렇지만 죽으면 바로 강이 앞이라는 큰 장점을 지녔다고 주인은 말한다. 그러면서 다야 노인에게 “과정을 준비할 시작은 되었소?” 란 말로 15일 치의 숙박요금을 지불할 것을 요구한다. 아들 라자르는 한창 일할 나이다. 혼인날짜를 앞둔 딸도 있고, 직장 사장에게 비위도 맞추어야 하고 할 일이 태산이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아버지를 따라오지만 노인의 일상은 이곳에 와서도 변함이 없다. 매일 우유를 마셔야 하는가 하면 밥이 맛이 없다고 아들을 나무란다. 급기야 18년 동안 그곳에 붙박여 살아온 빔라부인에게도 애정을 느낀다. 생의 끝 지점에 다다른 장소에 와도 삶은 또 연속성을 지니고, 그곳에도 또 다른 관계망을 형성하게 된다.


 슈바시시 부티아니 감독은 죽음이란 주제를 도처에 깔아놓지만 죽을 만큼 진지하지도 않고 뜬금없이 곳곳에 해학을 풀어놓는다. 카메라의 시선은 노인의 천연덕스러움 때문에 죽음의 주제를 공중에 살짝 올려놓았다. 손녀가 찾아올 때도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모를 정도로 유쾌하다. 매사에 긍정적인 다야 노인은 이 죽음의 공간조차도 두렵지가 않다.


 이 영화는 온통 죽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가족 간의 소통 과정과 깨달음에 더 비중을 두는 영화라 보면 되겠다. 노인 다야와 아들 라자르는 15일간의 여정을 통해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언제나 서먹했던 딸하고의 관계도 결국 노인의 죽음을 통해 봉합하고 서로에게 한 발짝 다가가게 된다. 결국 죽음의 연결고리점은 가족 간의 소통에 더 큰 힘을 싣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핵심은 죽음에 집중하기보다는 삶의 과정에 더 초점을 둔다. 가족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그 관계의 그물은 죽음이든, 삶이든 언제나 얽혀있고, 인생이란 큰 수레바퀴에 맞물려 돌아간다. 


 사람들은 말한다. 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어떤 특별한 환상이거나 유토피아를 꿈꿀 때 이상적인 세상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행복함이란 아주 사소한 추억, 즐거운 기억의 편린이다. 그 행복은 너무나 평범하게 생긴 탓에 잘 알아보기도 힘들다. 평범함을 알아보는 것, 그 소중함을 알아보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한다고 감독은 말하고 있다. 실제로 슈바시시 부티아니 감독은 인도 히말라야 어느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죽음은 그냥 일상적인 삶의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축제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 한다. 죽음에 해학을 덧입힌 작품을 대하다 보면 감독의 오랜 내공이 느껴진다.



 죽기 위해서 준비하는 인도인들, 생이 다 하는 순간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갠지스 강 주변을 배회하는 사람들, 죽었다 하더라도 가족들은 눈물은 흘리지만 마음으로 온전히 축복하는 이들. 죽음은 그들에게 매 순간 축제나 다름없다. 이들은 영혼이 해탈하면 자유를 얻기 때문에 죽음을 슬픔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다시 갠지스 강, 다야 노인이 요가와 매일 기도를 올리는 장소, 또한 빔라부인과 산책했던 그 갠지스 강의 저녁은 오늘도 죽음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떠돌지만 노을은 언제나 짧은 이별처럼 아쉽다. 바닥을 알 수 없는 갠지스강은 그렇게 삶과 죽음의 아찔한 경계선 위에 출렁인다. 그곳에 가면 호텔 샐베이션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 홍콩, 그 헐렁한 자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