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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나라의 정원사 Mar 30. 2024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너머

 꿈꾸는 청소부를 보고(영화) 수만 고쉬 감독

      

  인도 감독 수만 고쉬의 <꿈꾸는 청소부>는 기묘한 영화다. 다큐와 픽션의 경계가 모호하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카메라도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느껴진다. 처음엔 다큐인가 할 정도로 촬영기법이 원테이크가 많다. 현재 대학교수로도 재직 중인 감독은 전작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뒤틀린 인도 사회의 부조리, 소외된 계층을 카메라에 담는다. 꿈꾸는 청소부도 부촌인 동네를 대상으로 쓰레기를 수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도의 슬럼가, 누더기처럼 덕지덕지 조각으로 이어진 지붕, 허물어져 가는 벽 옆엔 빨래들이 펄럭인다. 수도시설도 없는 그들에겐 집 앞에 있는 강가가 세탁실이자 목욕탕이다. 아침이 되면 그곳에 쓰레기를 버리고 사람들은 쪼그리고 앉아 세수한다. 거미줄처럼 엉겨있는 그들의 터전은 마치 전쟁터와 같다. 아침마다 공중화장실의 줄은 길어지지만, 어느 하나 불평하는 사람들이 없다.         

 비르주와 쇼나 부부는 매일 작은 손수레 하나를 끌고 호루라기를 불며 부촌을 돈다. 비르주가 호루라기를 불고, 쇼 나는 집 밖에 내놓은 쓰레기를 수거한다. 쓰레기 중에 쓸만한 물건들은 그들의 또 다른 수입이 된다. 쇼나가 주워온 인형은 딸 무니의 친구가 되고, 종이는 무니의 노트가 된다. 쇼 나는 밤마다 주워온 물건으로 무니를 판타지의 세상으로 이끈다. 무니는 비루한 현실에서 때로는 공주도 되었다가 왕비도 된다. 이들에게 꿈을 꾸는 것은 현실을 잊게 하는 매개체다. 꿈속에서 무니의 침실은 핑크빛 침대가 되고, 잠자리 날개처럼 하늘거리는 드레스를 입게 된다. 누더기 같은 담요는 판타지 속에서는 금실로 엮어놓은 이불이 된다. 무니는 엄마가 들려주는 동화 속의 공주가 되어 잠 속으로 빠져든다. 가난한 일상이 마법이 되는 순간이다. 현실에서는 이들에겐 꿈은 없다. 매일매일 마주해야 할 척박한 현실만이 발목을 잡는다. 비르주가 끄는 리어카에 세 식구의 생계가 달려있고, 쓰레기업체에서는 전동차로 더 많은 노동을 강요한다. 비르주는 전동차를 몰기가 두렵다.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비르주와 쇼나만 전문 배우이지만 그 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재 청소부들인 점이다. 부부를 연기했던 배우는 천연덕스럽게 그들의 세상으로 스며들었다. 다큐인지 픽션이지 그 어디쯤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세상 속으로 끌려가는 기묘한 체험. 마치 오랫동안 그 자리서 지켜온 사람들처럼 집도, 사람도, 쓰레기도 영화 속에는 풍경이 된다. 풍경이라 해서 영상 언어로 풀어내는 풍경이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느낌을 전달한다. 수만 고쉬 감독은 시나리오도 없는 대본을 배우 각자에게 요구했다. 하층민 계급에 속하는 이들의 마을은 그냥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며 살아 숨 쉰다. 영화는 한마디로 판타지와 리얼리즘이 결합된 영화라고 보면 된다. 현실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수만 고쉬감독은 현재의 공기와 현장의 리듬을 중요시했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자기만의 언어가 가지고 있다. 카메라 안에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프레임에서 자연스럽게 전달되고 청소부들의 생생한 노동이 날것 그대로 보인다. <꿈꾸는 청소부>는 배우들이 스스로 인물을 창조해 가고 내러티브를 완성하는 다소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다. 이들에겐 다소 무리한 주문이었겠지만 덕분에 영화는 쓰레기를 모으는 하층민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연출해 냈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된 메시지는 가족의 사랑이다. 비록 땅바닥에서 밥을 먹고, 세 명이 꽉 끼는 지상에 허락한 작은 방에서 잠을 자도 그들에겐 사랑이란 긍정적인 힘이 있다. 그 힘은 가난을 이기게 하고, 꿈을 꾸게 하고 내일을 버티는 힘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불행하지 않고, 항상 웃음이 나고, 딸 무니의 미래가 걱정되는 것이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곳곳에 노동계급의 부당함과 가진 자의 여유, 가난하지만 정의로운 비르주를 통해 인물들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추었다. 가난하지만 끈끈한 이들의 연대를 통해 영화는 분명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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