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의식의 흐름 Mar 05. 2024

결혼의 가치

나와 타인을 알아가는 성숙의 과정

포털사이트에는 흔히 어떤 연예인이 조용히 성격차이로 이미 이혼했다더라 혹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연예인 부부 동반출연 프로그램에서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 부부들이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우리의 귀를 의심하게 하는 잉꼬부부들도 꽤 많이 이혼을 선택하는데 요즘 아무래도 이혼율이 워낙에 높아지다 보니 그런 일들은 이제 놀랍지도 않을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서로 정말 사랑해서 그 많은 물질과 에너지와 시간들을 들여가며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들을 했을 텐데 왜 몇 년도 가지 못해 그 고통스러운 이혼의 과정을 거쳐 혼자가 되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까?

오죽하면 결혼지옥이라는 프로그램이 나왔겠나…

이혼에는 여러 가지 무수히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성격차이, 장서갈등, 고부갈등, 경제적인 이유, 배우자의 외도등이 가장 큰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디테일하게 들어가 살펴보면 이혼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많이 하는 말이 있는데 배우자와 전혀 대화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다, 말이 통했다면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졌다면 과연 이혼까지 갔을까? 소통이 잘되는 와이프와 남편을 두고 외도를 하는 일은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소통이 되지 않는 근본 원인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대부분이 우리 부부는 ’ 성격이 안 맞아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 로또처럼...‘이라고 말한다. 성격차이보다 소통의 방식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혼의 사유가 상당수 성격차이로 귀결되지만 성격차이 없는 부부가 어디 있을까..?

우리는 모두 다른 곳 다른 환경 다른 부모 밑에서 자란 생물학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너무나 다른 존재들인데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 일 거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인 호감과 사랑이라는 것을 느껴 평생을 함께 할 상대로 결정했다는 것 자체가 사실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일인데 우리는 그것을 '실수였다, 잠깐 내가 눈이 멀었었다' 등의 말로 가치를 절하시키는 게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용광로 속 불같이 서로를 원하는 강렬한 감정은 서서히 식어가며 그제부터가 진정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해 가기 위한 굳히기 과정일텐데 말이다.

만남과 연애를 거쳐 결혼까지 연결되는 일은 참으로 귀하다. 70억이 넘는 인구가운데 내가 한 사람을 선택했고 그도 나를 선택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에 대한 통찰과 끊임없는 배려와 이해를 해나가며 결혼을 아름답게 유지해 나가는 과정은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가치 있는 과정이다. 누가 뭐라 하든 그건 정말 경이로울 만큼 값지고 멋진 일이다. 나를 알아가고 상대를 알아감으로 서로에 대한, 나아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게 되는 중요한 제도이자 인생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기껏해야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까지만 사랑하는 게 다 인 사람이었는데 나와 아주 다른 타인을 그리고 그의 가족들까지로 내 사랑의 바운더리를 넓혀 가야 한다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일은 우리가 자칫 이기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미숙한 존재로 머물 수 있는 것을 과감히 벗어던질 수 있는 성숙을 선물해 준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이혼을 결정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야 말로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해 줄 수 있다.

우리 부부도 결혼하고 5년간을 정말 전투적으로 보냈다. 5년 안에 세 아이가 태어났고 우리는 3년을 연애했지만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남자답고 책임감이 강한 점이 남편의 장점이라고 생각했지만 결혼하고 나니 남편은 내가 기대고 의지할 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강하게 보이고 싶어 했으나 결혼을 하고 나니 자신의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들을 여지없이 보여주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또 들키고 싶지는 않아 했다. 그 자존심과 이해를 구하는 중간 어디쯤에서 나는 줄타기를 하며 그를 세워줘야 했다. 이건 참 쉽지만은 않았다.

나 또한 연애 때처럼 계속해서 남편에게 사랑스럽고 밝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지 못했다.

우울하고 상처가 있는 어두운 감정을 겉으로 내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성격 탓에 의식적으로 잘 웃고 밝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지만 나의 가장 우울하고 상처 많은 어두운 내면을 남편에게 적나라하게 보여 줄 수밖에 없었다.

부부라는 게 내 치부를 끝까지 숨길 수 없기에 상대의 그 부분까지도 용납해 줄 수 있는 서로의 자세가 무척이나 필요했다. 우리는 서로의 가치관의 충돌뿐만 아니라 시댁과의 어려움 경제적인 이유 소통의 방식 어느 하나 맞추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최고조로 다툼이 잦아졌을 때 우리는 다툼은 피해 갈 수 없으니 이혼을 할게 아니라면 서로를 위해 대화방법을 달리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다툴 때 내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인데 의견충돌로 상대에게 서운하거나 안 좋게 느꼈던 부분을 서로 충분히 털어놓았다면 거기에서 잠깐 멈추고 이제 내가 상대에게 잘못했다고 느끼는 것만 말하기로 하는 것이다. 다툴 때는 상대의 부족한 점만 공격하며 이야기하다가 상처 주고 대화가 끝나기가 쉽다.

그럴 때 잠깐 멈추고 내가 잘못한 것과 내 감정이 이러이러하다 까지만 이야기하고 더 이상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도 마찬가지로 내가 잘못했다고 느끼는 부분과 내 감정에 대한 이야기만 간단히 하고 더 긴 이야기를 삼간다. 그 과정에서는 상대를 비판하고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이야기는 일절 차단하기로 했다. 나는 잘못이 없고 상대방만 잘못해서 일어나는 다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다투는 것을 보고서 배운 것인데 나의 부족한 부분을 나 자신이 간과했을 뿐이지 내가 모르는 내 문제점은 있게 마련이고 부부란 나의 감정을 상대방이 이해해 줄 때 비 온 뒤 땅이 더 단단해지듯 서로를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며 그 대화가 건강하게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기에 다툼의 원인을 언제나 상대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둘째 딸과 막내아들이 다툴 때는 내가 항상 중간에서 중재해 주는 역할을 하지만 부부에게는 중재해 줄 사람이 없다. 그러니 자기 객관화는 더욱 힘들어진다. 결혼지옥의 오은영선생님 같은 중재자가 필요한 부부들에게는 상담을 적극 권장한다. 이혼을 결정짓기 전에 상담을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정말 용기 있고 멋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있는 부부에게는 특별히 더 그렇다. 아이들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우리의 선택으로 세상에 내보내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아이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배려해야 하는 크나큰 책임이 있다.

그렇게 때로는 타툼과 때로는 대화와 여러 부딪힘 속에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나의 이기심과 부족함을 개선해 나가며 우리는 성숙해지고 완전해져 갈 수 있다. 서로 중요한 이런 시기들을 잘 넘긴다면 서로의 배우자는 그 누구보다 친한 친구이자 동료이자 지원자가 되기도 한다. 나도 경험했고 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다 결혼지옥에 나오는 어려움을 가진 부부들 같지만은 않다. 우리 인간은 자극적인 남의 불운한 소식에 더 귀 기울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게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 부부들이 도처에 많이 있다. 자신과의 싸움과 서로에 대한 배려와 노력으로 서로와의 약속을 아름답게 지켜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는 부부들도 상당히 많다.

결혼이라는 숭고한 걸 정을 하는 용기 있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있다면 결혼 선배로서 진심을 다해 응원하고 싶다. 결혼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아 마음껏 누릴 수 있길!


작가의 이전글 불혹의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