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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식의 흐름 Sep 03. 2024

재경이의 봄

가난한 서울살이 꿈을 꿀 수 조차 없는 한 소년의 이야기



왕십리 행당동 달동네 가장 꼭대기에는 열세 살 재경이 집이 있었다.           

슬레이트로 된 지붕에 부엌이 딸린 허름한 단칸방이 줄지어 있었고 총 다섯 집이 모여 살면서 화장실 하나를 공동으로 사용했다. 그중 하나가 재경이의 집이었다. 재경이는 유난히 그을린 까무잡잡한 피부에 작고 깡말라 한눈에 보아도 4학년 정도 밖에는 안되어 보였다. 누나 둘에 재경이와 엄마… 전라도로 일가신 아버지를 빼면 네 식구가 한방에서 함께 생활했다.                

재경이에게 높디높은 달동네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꽤 괜찮기도 했다.           

낮이면 새하얀 구름이 손으로 잡힐 것만 같았고 간혹 가다 운 좋게 지나가는 비행기를 가장 자세히 볼 수도 있었다.          

짙고 붉은 노을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늦은 오후, 봄 공기 속 신선하고 달콤한 냄새가 좋았던 재경이는 서서 크게 심호흡을 하며 가슴을 쫙 폈다.          

가슴이 부풀어 오를 만큼 크게 숨을 한번 쉬고 나면 서울 시내를 전부 다 가진 것만 같은 생각에 마음이 간질간질하고 벅차올랐다.          

어느새 주변에 어둠이 짙게 깔려 깜깜해지면 반짝반짝 서울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네온사인 불빛이 별빛처럼 내려앉은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재경이에게는 하루 중 가장 평온하고 위로가 되는 시간이 되어 주었다.                    

재경이 어머니는 전라도 토박이로 스무 살에 돈을 벌러 눈 깜짝할 새 코 베어 간다는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셨다. 그 시절 근처 성수동에는 백화점으로 납품하는 브랜드 구두를 제작하는 공장이 있었는데 그곳에 어렵사리 취직해 재봉일을 배우셨다. 촌에 계신 아버지가 짝지어 준 7살 많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인 지금의 재경이 아빠와 결혼하고는 단칸방에서 신접살림을 차리셨다. 재경이 아빠는 재경이 작은아버지와 황토사업을 시작해 보시겠다며 고향으로 내려간 지 2년이 지났고 여전히 아무런 진전도 소득도 없는 듯했다. 재경이 엄마는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빠듯한 형편이었지만 은경이 미경이 재경이 삼 남매를 건사하기 위해 왕십리에서도 버스로 꽤 멀리 가야 하는 중곡동 재봉공장으로 일터를 옮겨 하루 12시간에서 16시간까지도 일하며 혼자 살림을 일구어 나가셨다. 그럼에도 고단한 삶 속에서 언제나 유쾌함을 잃지 않았던 재경이 엄마였기에 재경이네는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항상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재개발 문제로 동네가 온통 시끄러웠던 때였다.     

재경이네 집 근처에는 재개발 사업이 한창으로 네모반듯한 빌라들과 높게 뻗은 새 아파트들이 하나둘 줄지어 들어서고 있었다.     

동네에 높이 들어서 막 입주를 시작한 대림 아파트는 재경이에게는 왕이 살고 있는 거대한 성처럼 느껴졌다. 재경이가 사는 달동네와 마치 다른 세상처럼 대비를 이루었다.          

"대림아파트는 한 가족이 사는데 방이 네 개에다 집안에 화장실이 두 개나 된대~! “          

재경이는 친구 명진이의 말에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와~씨... 거기 사는 애들은 진짜 좋겠다.”          

전라도 말씨가 구수한 재경이 어머니는 명진이를 언제나 재경이의 '깨복쟁이 친구'라고 말씀하셨다. 서로 알몸으로 다 벗어도 부끄럽지 않은 친구를 전라도에서는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깜깜한 달동네에 조그맣게 난 길을 쭉 따라 내려가면 중턱 즈음에 동갑내기 명진이 집이 있었다. 둘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부터 함께했던 사이였다.               

대림아파트가 생기고부터 재경이는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같이 놀던 애들은 하나둘씩 다 떠나고... 올여름에도 작년처럼 우리 동네로 바퀴벌레만 죄다 몰려드는 건 아니겠지?” 재경이 툴툴거렸다.          

“여기도 다 헐고 아파트들 짓는데~ 그럼 우리도 전부 다 이사 가야 한다고 울 엄마가 그러더라.” 명진이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 우리는 그럼 어디로 가냐. 너랑 나까지 뿔뿔이 흩어지는 건 아니겠지…?”          

“모르지 뭐.” 명진이가 체념한 듯 대답했다.                    

재경이의 걱정 대로 재경이네를 제외한 많은 집들이 하나둘 이사를 가기 시작했고 매일 학교가 끝나면 교회 앞 공터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도 하나 둘 이곳을 떠났다. 오랜 세월 정을 나누며 가족처럼 지내왔던 사람들이 떠나간 달동네는 적막했고 스산하기까지 했다. 어느 날에는 재경이네로 올라가는 유일한 빛인 가로등 불이 끊어졌다. 전신주에서 잘려나간 채 줄줄이 달려있는 까맣고 기다란 전깃줄들은 꼭 귀신 머리카락처럼 치렁치렁 공중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게다가 아파트를 짓는 곳에서 공사하며 나오는 폐기물 쓰레기들을 죄다 갖다 버리는 바람에 온갖 쓰레기들로 동네는 몸살을 앓았다. 늦은 저녁까지 명진이와 교회 앞 공터에서 놀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재경이는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아 등줄기에 땀이 날 만큼 세차게 뛰어 가파른 언덕길을 달빛에 의지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골목에는 한때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지만 이제 이곳은 무성하게 자란 난 길가의 잡초와 붉게 녹슬어버린 철문들... 누구의 집이었는지도 모르게 다 허물어져 버린 벽돌들로 더 이상 사람이 살기조차 힘든 폐허로 변해가고 있었다.                    

중학교 한 반에는 강남에서 이사 온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 무리와 달동네 아이들 몇몇이 섞여 있었다. 재경이는 아파트 아이들과 쉽사리 친해지지 못했다. 재경이의 자격지심은 또래보다 훨씬 작은 키에 깡마르고 왜소한 체구도 한몫했다. 재경이는 배경화면처럼 교실 구석에 조용히 앉아 눈에 띄지 않게 있는 것이 편했고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의 활기차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교실을 가득 채우며 반의 분위기를 장악했다. 그 아이들의 엄마들은 교문이 닳도록 학교를 드나들었고 그 녀석들의 자신감은 경제적인 여유에서 온 것인지 부모의 관심과 애정에서 온 것인지 궁금했다. 대게 월간 ‘좋은 생각’ 책자나 박카스 상자에 촌지 봉투를 끼워 출근 도장을 찍어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재경이는 좋은 생각에 좋지 않은 생각을 넣어 보낸다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여유와 자식 사랑을 업으로 여기는 부모를 가진 그 녀석들이 내심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에 반해 재경이 엄마는 먹고살기 바빠 초등학교 6년을 통틀어 학교에 한 번도 찾아와 보신 적이 없었다. 당연히 중학생이 되었어도 생계로 바쁜 엄마는 변함없이 학교에는 무관심할 게 뻔했고 그게 또 아무렇지 않았던 재경이었지만, 사춘기가 왔는지 아파트 아이들과 비교가 되어서인지 괜스레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 감정이 더 정점에 다다르는 사건이 있었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 중 한 명인 반장 정환이는 키가 크고 잘생긴 얼굴에다 인기가 많았고 정환이 엄마는 항상 좋은 세단을 타고 각종 행사 때마다 학교에 자주 찾아오곤 했다. 어느 날엔가 점심시간 쉬는 시간이 되자 정환이는 재경이에게 함께 말뚝박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수가 한 명 모자라 어쩔 수 없이 구석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재경이를 부른 모양이었다.          

“나?

“어, 그래 너~! 같이하자.”           

재경이의 이름도 정확히 모르는 듯했지만 내심 반장의 무리가 자신을 불러주는 것이 기분이 좋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또 지질하고 싫었다.           

“그래...”      

하며 무심한 듯 대답하고 교실 뒤에서 시작된 말뚝박기는 중학생 남자아이들의 강한 승부욕에 금세 열기가 뜨거워졌고 교실 안은 환호와 탄성으로 점점 흥분이 고조되었다. 곧 정환이의 순서가 되었고 친구의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박고 다리를 벌려 준비 자세를 취한 재경이는 최대한 다리에 힘을 꽈악 주었다. 그때 상대편인 정환이가 강하게 달려와 공중으로 점프하며 자신의 몸을 재경이의 등에 거세게 내리꽂았다.     

‘뚜둑!’          

재경이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너무 아파 ‘아!’하는 소리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무릎이 앞으로 꺾였다는 것을 느꼈다.

재경이 말이 무너지자 말뚝박기는 멈췄고 그 순간 누군가의 “담임이다!”

하는 소리와 함께 교실로 들어온 담임선생님은 누가 교실에서 말뚝박기를 했냐며 말뚝박기를 한 무리들을 불러 세웠다.

무릎이 견딜 수 없이 아파 겨우 왼발로 삐딱하게 서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재경이에게 담임은 다가왔다.               

“이 새끼 네가 문제지? 대답하라니까 뭘 잘했다고 인상을 팍 쓰고 있어?”          

호통 소리와 함께 찰싹하며 재경이의 뺨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교실 안을 가득 채웠다. 모든 시선이 재경이에게 집중되었다. 재경이는 어안이 벙벙했다. 무릎이 너무 아팠고 또 억울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또 대답하지 않는다며 다시 한번 온 힘을 다해 허공으로 손을 뻗어 재경이의 뺨을 내리쳤다.           

“부모가 애새끼한테 관심이 없으니 원... 쯧쯧... 자리로 가!”           

재경이는 자기가 주도한 게 아니라고 부모님 이야기는 왜 하냐며 큰소리로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힘도 용기도 없었다. 분노의 감정조차 몸과 마음의 통증에 흐려졌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아픈 무릎과 빨갛게 부어오른 뺨과 상해버린 마음을 부여잡고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며 학교를 빠져나와 달동네 산비탈을 한 발로 겨우겨우 올라갔다. 그날따라 그 길이 유난히 길고 가파르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오르락내리락하던 그 길이 괜히 사무치게 원망스러웠다. 재경이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처음엔 조금씩 흐르던 눈물이 속도를 내더니 고장 난 수도꼭지 마냥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펑펑 쏟아졌다. 화끈거리는 뺨을 타고 계속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방구석에 가방을 툭 던져놓고 다리를 겨우 오므리고 천천히 누웠다. 아픈 것보다는 서러움이 더 컸다.           

‘우리 엄마도 학교에 촌지 가지고 갔으면 애들 보는 앞에서 나만 그렇게 무자비하게 때렸을까? 선생도 아니야 그 나쁜 인간...’ 베개가 축축해질 때까지 울다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엄마가 재경이를 깨웠다.          

“막둥아, 밤새 왜 이렇게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내냐? 어디 아프냐?”           

재경이는 말없이 엄마에게 이불속에 숨겨둔 무릎을 내보였다. 재경이의 무릎은 어제보다도 훨씬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너 이거 다리가 왜 이러냐? 어?”            

“응 그냥... 친구들이랑 놀다가...”     

“도대체 뭘 하고 놀았길래 아이고~ 이게 이게 뭐다냐... 참말로 내가 못 산다~!

동수 아저씨네로 침 맞으러 가게 얼렁 준비해!”          

재경이는 어제 다치는 순간부터 무릎이 완전히 앞으로 꺾였고 동수 아저씨네가 아니라 큰길 건너에 있는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깁스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어김없이 재경이 엄마는 어디가 아프기만 하면 무조건 동수 아저씨네였다. 면허가 있는지 없는지도 확실치 않은 동수 아저씨는 동네에서는 그래도 꽤나 유명했고 재경이 엄마에게 그분은 명의나 다름없었다.      

“자 업혀!”     

“아냐 됐어. 그냥 한 발로 걸으면 돼.”           

“아이고 그냥 엄마한테 업혀~ 저기 밑에 동네까지 어찌 갈라고 근다냐!”           

“아 됐다고~~ 중학생 아들을 누가 엎고 가.” 재경이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잔말 말고 업히라면 업혀~! 다리가 그 지경이 돼가꼬 어째 거까지 걸어간다냐~~”   재경이 엄마는 중학생 아들을 엎고 아랫동네 동수 아저씨네까지 내려가 재경이 무릎에 침을 맞혔다. 재경이는 이러는 게 소용이 있을까 의심이 들면서도 그냥 엄마에게 병원으로 가자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병원은 큰길을 또 건너야 했고 치료비도 훨씬 많이 들 것이 분명했다.          

침을 다 맞고 난 후 엄마는 다시 재경이를 업고 달동네 산비탈을 힘겹게 올랐다.          

“우리 막둥이 얼마나 아팠을꼬... 어제라도 엄마 공장으로 전화를 하지 그랬냐~이 무식 헌 놈아, 하룻밤을 어떻게 참았냐~? 근디 뭐 하다 그랬다냐~? 느그 선생님은 아시고?”           

재경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의 꼬불꼬불 휘어진 파마머리 끝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엄마의 등은 금세 땀으로 축축이 젖어있었다. 다 큰 중1 아들을 업고 산비탈 오르막길을 오르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니, 매일 고된 재봉 일의 끝에 지친 몸으로 올랐을 이 길이 엄마도 원망스러웠을까?          

재경이는 어제처럼 또 눈물이 쏟아져 나오려고 했지만 온 힘을 다해 꾹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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