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는 자발적 홀로서기가 필요하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아이들 하교 길 교문 앞에는 어린 1~2학년들 엄마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아이들로 인해 금세 친해진 엄마들은 삼삼오오 그룹을 만들어 동네 커피숍으로 모인다.
그 와중에 그런 분위기가 불편한 1인인 나는 웬만하면 학교 문턱을 넘는 일이 없고 그 주변을 지나가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다.
아이들로 인해 만남이 이루어진 엄마들의 최후를 이미 경험자인 친정엄마를 통해 많이 듣고 보아왔고 끝까지 가는 경우도 거의 없는 것을 알기에 모래성과 같은 관계에 휩쓸리고 싶지 않아서이다.
누군가는 어쩌면 너무 과민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이 싸움이 부모 싸움으로 번지기도 하고 엄마들의 소문이 소문을 낳아 괴담이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것을 알기에 맘카페는 관심도 가진 적이 없고 학교 모임에는 웬만해서 나가지 않는다. 녹색 어머니나 책나래 같은 필수적인 봉사가 부득이할 경우 남편이 나 대신 다 나가주었다. 밑에 어린 두 동생들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차례로 보내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막내가 초등학생이 되었어도 그저 내가 학교 문턱을 넘기 싫은 이유가 크다.
한때 나도 이웃 엄마들과 친하게 지내며 함께 운동도 하고 커피타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아이들로 인해 친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오다가다 마주치며 어쩌다 보니 동네에서 알게 된 엄마들과 커피숍에 모여 종일 수다도 떨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삼 남매의 고단한 육아에 약간의 쉼이 되어주기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간중간 아이들로 인해서 또는 각자의 성향 차이로 조금씩 무리가 나뉘었고 언제나 그 모임에는 남편 흉을 본다던지 시부모 험담을 한다던지 하는 썩 유쾌하지 않은 주제들만으로 수년간 반복되었다.
물론 여자들끼리 숨통의 트일 그런 이야기와 시간들도 분명 필요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수년이 지나도 진전이 없이 똑같이 반복되는 남편과의 갈등, 재정에 대한 불평, 시댁과의 마찰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느 순간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곤욕처럼 느껴졌고 왠지 내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같은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지 않고 힘든 가정사를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 나에게 약간의 거리감과 이질감을 느끼는 듯했다. 나는 그동안 육아로 애쓴 나 자신을 스스로 충분히 칭찬해 주며 이제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관심한 엄마라고 누군가는 손가락질할지도 모르지만 아이들 시간표와 일과를 줄줄 꿰고 문제집과 학원을 고민하며 불철주야 아이에게 정성을 쏟고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엄마들의 관심사가 나에게 있어서는 관심밖이었다고 할까?
내가 무엇을 좋아했었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육아로 외면해 왔던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좀 더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평소 글을 읽고 쓰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차에 우연히 들른 근처 도서관에서 ‘내 인생을 새롭게 바라보는 자서전 쓰기’라는 강좌가 열리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 참석하게 되었다.
어릴 적에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는데, 사실 노는 것이 좋아 읽고 쓰기에 소홀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사람들과 커피숍에 앉아 허송세월하는 시간이 무료하고 아깝게 느껴질 때쯤 아이들 셋을 낳고 육아를 하며 바쁜 일상을 핑계로 마음속에 고이 접어놓은 글쓰기를 이제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거창하게 작가가 되거나 해야겠다는 꿈보다는 그냥 내 생각과 마음을 글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
참여했던 강좌는 나에게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다시 불붙여 주었고 내 사십여 년의 삶을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삶에 대한 중간점검이랄까?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여 함께 서로의 글을 읽고 나누고 응원하는 그 자리가 오랜만에 신선한 자극이 되었고 참 값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내 성장과 변화의 기쁨을 가까운 사람들은 지지하고 기뻐해 줄 것이라고 믿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많은 것 같다. 가장 가깝게 여겼던 지인에게 내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나에게 돌아온 것은 부정적인 피드백뿐이었다. 그런 게 왜 하고 싶은지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차가운 반응에 내 열정과 희망이 순간 얼어붙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 나에게는 누구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최선을 다해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 참 감사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나에게 언제나 용기를 주었고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애썼다. 발표를 하는 날이라 긴장을 잔뜩 하고 있으면 아이들은 “엄마는 충분히 잘할 수 있어~그러니까 자신감 있게 해!”하며 힘을 실어 주었다.
나도 엄마로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발표도 잘하고 적극적인 것을 원했으면서 나 스스로는 정작 그런 시간을 회피하고 싶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아이들을 생각해서 이겨냈다.
우리가 변화하고 성장하려고 할 때 그것에 응원과 격려로 함께 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건 축복이다.
그런 인간관계가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 같다.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사람. 나의 발전을 기뻐할 사람. 힘들 때 위로해 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오히려 함께 좋은 일에 진심으로 자기 일처럼 기뻐해줄 수 있는 관계는 찾아보기 어려울지 모른다. 나는 오늘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