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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식의 흐름 Apr 24. 2024

친구의 죽음

"민지가 목을 맸대.. 흐흐… 흐.. 흑

지금 중환자실에 있다는데 너 혹시 가능하면 올 수 있어?"

전화기 속으로 들리는 은정의 말에 잠시 머리가 하얘졌다. 나도 모르게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데 갑자기 민지가 왜 도대체?"

나는 도무지 믿기 어려워 연거푸 물었다.

도대체 왜...?

우리는 지방에 있는 고등학교를 함께 졸업한 동창들이었다. 학창 시절 나 혼자 반이 달라 민지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친한 친구들이 겹쳐 몇 번 함께 어울리곤 했었다. 몇몇 친구들은 인서울에 성공해 서울생활을 시작했고 나와 민지는 각자 지방대를 다니다 서울에서 캠퍼스 생활을 하는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으로 휴학 후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케이스였다.

민지는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친구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기다란 팔다리에 큼직한 이목구비로 환하게 웃는 모습이 꽤나 이국적이었다. 학창 시절 그녀는 뒤늦은 사춘기였던 건지 지나치게 쾌활했고 한편으론 어딘지 모르게 우울했다. 항공사 승무원이 되려고 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고 했고 친구들이 있는 서울로 올라와 ktx 승무원을 준비하며 간간히 인터넷 쇼핑몰 모델일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지가

보이지 않았다. 민지의 안부를 묻는 내게 은정은 민지가 애지중지 기르던 고양이가 오피스텔 문 밖으로 뛰어내려 죽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소식을 듣고선 안타까워했고 민지는 괜찮은지 궁금해하며 고양이의 호기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민지에게는 그 환한 미소와 상반되는 이면에 이유 모를 짙은 어두움이 깔려 있었고 나는 그녀가 왠지 모르게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차를 내달려 도착한 서울의 한 병원에서 뇌사상태에 빠져 호흡기를 끼고 있는 민지를 보았다.

민지의 아름다운 모습은 사라져 버렸고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온몸이 퉁퉁 부어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하게 웃어 보이던 민지였는데… 나는 조금은 낯설고 무섭기도 한 친구의 모습에 잠깐 멈칫한 후 떨리는 손을 민지의 팔과 이마에 가져다 댔다. 이대로 민지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눈을 뜬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의 귀는 죽은 후에도 가장 끝까지 열려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아직 숨은 붙어 있는 그녀의 귀 가까이에 대고 간절하게 간절하게 우리는 기도했다.

민지가 깨어나게 해 주세요. 만약 이게 민지의 마지막이라면 꼭 좋은 곳으로 가게 해주세요.

민지가 만나고 있다는 그 남자는 천하의 나쁜 놈이었다.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고 와이프랑 이혼 준비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울고불고 사정사정하며 만나달라고 매달렸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처참하게 민지를 버렸고 민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극단적으로 목숨을 끊을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날 그렇게 민지 집에서 대판 싸우고 나갔나 봐...

그러고 나서 바로 민우한테 계좌 비밀번호 주고 잘 지내라고 사랑한다고 누나가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더래.. 민우가 바로 전화했는데 안 받고 뭔가 이상하니까 집으로 찾아가 본 건데.. 화장실에서... 흐흐 흐흑..."

민지의 부모님은 민지의 호흡기를 다음날 아침에 떼기로 결정했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너무 덤덤한 표정이어서 조금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나는 민지가 호흡기를 억지로 떼어내기 전 이 밤에 자연스럽게 하늘나라로 데려가 주셨으면 하고 기도하고는 잠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꿈에서 민지를 보았는데 그녀는 새하얀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고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채로 멀리서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따라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가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온해 보였고 이제 괜찮다고 하는 듯한 표정을 나에게 지어 보였다. 안녕... 우리는 그렇게 작별인사를 했다. 알 수 없는 평온함이 느껴졌다.

너무도 생생했던 그 꿈에서 막 깨는 순간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은정이었다.

"민지 호흡기 뗀다는 거 알았는지 새벽에 하늘나라 갔대."

"그랬구나, 민지 좋은 곳으로 갔어 나는 알아."

이튿날 우리는 장례식장에 모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보지 못했던 친구들의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다들 예상치 못한 친구의 죽음에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영정사진 속 민지는 환하게 웃고 있었고 지난밤 꿈속에서 본 민지의 표정과 자꾸만 겹쳐졌다.

그렇게 민지를 떠나보내고 몇 달이 흘러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살고 있었고 친구들과 만나 민지를 추억하던 중 한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민지가 진짜 불쌍한 게 뭔 줄 알아? 민지 아빠라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수시로 민지 두들겨 패고 얼마 전에는 민지가 고향집에 내려갔을 때 술집 나가서 몸이라도 팔아서 돈 벌어 오라고 했었대. 그게 아빠냐? 사람도 아니지. "

나는 민지의 이유 모를 우울함의 원천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더 경악할 만한 이야기는 민지의 동생 민우에게서 들은 충격적인 말이었다.

민지가 죽고 나서 사촌여동생 둘은 득달같이 사고 난 민지의 집에 들어가서 민지가 가지고 있던 명품백이며 귀중품들을 모조리 다 챙겨갔다고 했다. 그리고 민지 엄마 아빠는 민지가 만나던 그 남자를 찾아가서 이 일을 모두 없던 일로 할 테니 1억을 내놓으라 요구했고 돈을 받지 마자 우리 민지가 남자 보는 눈은 있었다며 뿌듯해하셨다고 했다. 나는 인간에 대한 깊은 환멸을 느꼈다. 저급한 막장 드라마보다 더 지옥 같은 현실을 꾸역꾸역 견뎌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민지가 살아왔을 그 삶이, 그 미소뒤에 보이는 짙은 우울감이, 사무치게 이해되고 가여워서 눈물이 났다. 그래 민지야 이제 그냥 그곳에서 편히 아름답게 살아. 아무도 널 아프게 하지 못하는 그곳에서.. 이제 더는 아픔 없는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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