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만능의 시대, 무엇이 우리를 진정 행복하게 할까?
7년간 원룸살이 자취생활하던 소소한 나의 짐과
신랑의 옷가지들을 실은 우리의 1톤 트럭은 반짝이는 한강과 빌딩숲이 우거진 화려한 서울을 빠져나왔다.
연애 3년 차 동갑내기 스물일곱..
결혼을 앞두고 서울에서는 도저히 집을 구할 처지가 아니었던 우리는 신랑이 막 취직한 안산이라는 낯선 곳으로 신혼집을 구했다.
좌천되는 듯한 느낌으로 우울했던 기분은 널찍하고 한산한 도롯가에 알록달록 펼쳐진 아름다운 단풍나무가 유난히도 아름다웠던 안산의 가을에 마음을 빼앗겨 금세 풀려버렸다.
낯선 곳에서 펼쳐질 우리의 앞날이 알록달록 어여쁜 이곳의 단풍처럼 아름다울 줄만 알았던 무모한 청춘의 트럭 속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친구들도 친정 부모님도 우려와 걱정이 많았으나 나는 그때 왠지 모를 자신감으로 충만해있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뭔가 보여주리라.. 누구보다 잘 살아내는 내 모습을..!'
그러나 내 호기로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매달 돌아오는 월세날짜에 날아드는 보험금과 공과금 고지서… 결혼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남편의 어마무시한 학자금대출까지… 함께 일을 하며 가정경제를 일으켜보고자 했으나 결혼과 함께 찾아온 허니문 베이비로 인해 집콕 신세가 되어버렸다.
외벌이로 감당하기에는 숨이 턱턱 막혀왔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가계부를 써보면 뭐 하나? 매달이 마이너스인데.. 암담한 현실만 자꾸 곱씹게 되더라.
보증금 500짜리 투룸에서 변변한 가전제품도 옷장하나 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했던 우리는 그래도 아이 셋을 키우며 모든 수중의 빚과 안녕을 고했고 남편과 나는 결혼 13년 만에 많은 성장을 했다.
많은 고비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암담한 현실가운데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우선순위이다.
아무리 힘들다 할지라도 우리 삶의 가장 큰 가치부터 순서대로 중요도 순위를 세워서 그 기준을 지켜나가자는 게 철칙이었다.
첫째는, 우리의 신앙을 지켜가는 것
둘째는, 가족 간에 사랑하고 화목하게 사는 것
셋째는, 그 사랑과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타인들과 나누며 사는 것
이 세 가지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기도하는 삶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믿음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물질만 두고 보면 우리 집엔 한 아이도 버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잊지 않으려고 매 순간 부단히 노력해 왔다.
여전히 우리는 가진 것이 많지 않고 내세울만한 것은 없지만 누구보다 가족 간에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13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안산의 가을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우리가 결혼을 결심한 것도 연고 없는 이곳에 무작정 오게 된 것도 그 와중에 아이 셋을 줄줄이 출산한 것도 모두 무모했을지는 모르지만 무모함이 때로는 역사를 만든다. 기적을 일으킨다. 나는 그것을 용기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 무모하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