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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식의 흐름 Jan 22. 2024

엄마와 딸 (1)

엄마와 딸 가장 멀고도 가까운 그 이름에 대해서..

20대 읽었던 엄마와 딸이라는 신달자씨의 에세이는 내 마음을 울렸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엄마에 대한 기억을 훔치고 싶을만큼...내가 기억하는 엄마와 나의 관계는 조금 다르다.


"아 모르겠다 끊어라 듣기 싫다!."

"알겠어. 엄마가 알아서 해! 끊어!."


휴..... 엄마와 또 싸우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 그래.. 다 안다. 나도 마흔이 넘었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으니 엄마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엄마와 대화할 때면 나는 어느새 딸로 돌아간다. 나는 엄마의 딸이니까.. 그래서 딸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또 부딪히고야 만다.

전화를 먼저 건 것은 엄마가 아니었다. 사실 혼자 힘들어 혹시 우울증이라도 오면 어쩌지 하며 엄마가 걱정되어 전화를 걸어보는 건 나다. 친정 엄마와의 관계에서 나는 항상 '을' 입장이 된다.

서럽기도 하다. 화가 나기도 했다가 그냥 체념하기도 한다.


11살 때부터 17살 때까지 부모님의 지긋지긋한 부부싸움을 가장 가깝게 옆에서 지켜본 건 나였다.

화가 치밀면 아빠는 어느새 손이 올라왔고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작은 손으로 엄마를 막아내다 내가 맞기도 부지기수였다.

어느 날은 도저히 상황을 감당할 수 없어 몰래 무선전화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 이모에게 벌벌 떨며 전화해 SOS를 치다가 방문을 부수고 들어온 아빠에게 별이 번쩍 할 만큼 뺨을 맞기도 했다. 결국 중학생이 되어서는 나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무기력해졌고 부모님의 끔찍한 싸움의 현장을 빠져나와 삼일동안 친구집으로 가출까지 감행했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본인들의 감정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한창 예민한 중학생 딸의 부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셨고 찾지조차 않았다.

아빠의 휴대폰 문자를 직접 본 것도 나였고 아빠의 외도 사실이 나에게도 너무나 큰 배신감과 상처였는데 부모들의 다투는 과정은 나를 더욱더 상처 입고 지치게 했었다. 나는 완전히 방치되어 있었다. 오히려 방치가 더 편하다는 느낌이 들만큼..

아직 어렸던 나는 아빠의 휴대폰에 온 문자메시지로 인해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이 사실을 엄마에게 알릴 수 없었다. 혼자 끙끙 앓고 있던 중 명절이 되어 시골에 있는 친할아버지 댁에 가게 되었고 도착하자마자 여느 때처럼 앞치마부터 두르고 종종거리며 며느리

도리를 감당하는 엄마가 짠하게 느껴져 아빠에게 더 화가 났다. 어렵게 어렵게 떠보듯 말을 꺼냈다.

“엄마, 혹시 아빠 요즘 좀 이상한 못 느꼈어?”

“너 이리 와봐..(아무도 없는 방으로 데려가더니) 무슨 얘긴데? 너 혹시 뭐 봤어? “ 엄마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응, 아빠 바람피우지? 어떤 여자랑 주고받은 문자……. “

내 대답에 엄마는 냉정한 표정으로 먼 곳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 엄마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니는 그냥 모른척해라. 어떻게 처신했길래 니까지 알게 만들고.. “

나는 그 말이 더 당황스러웠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아무 내색하지 않고 명절이라고 시댁에서 며느리 노릇을 하고 있는 엄마가 대단하면서도 불쌍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속는 오죽할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 외친 사람처럼 내 마음은 어느 정도 후련했지만 이후의 과정들과, 또 무너져 내렸을 엄마의 마음이 걱정되었다.

그 후로도 여러 번의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었다.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3년 기숙사 고등학교를 선택했는데 왜 그 먼 기숙사학교를 가느냐고 버럭 화내는 엄마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입학하며 떨어져 있는 딸에게 어떤 관심조차 갖지 않던 부모님의 별거생활이 시작되었을 무렵..

정말 오랜만에 친구와 짐을 좀 가지러 찾아간 우리 집에서는 내 옷을 입고 내 집을 자기 집처럼 활보하고 다니던 우유구멍 속으로 보이는 아빠의 내연녀와 마주하게 되었다. 아무리 벨을 눌러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참다못한 나는 경비아저씨에게 이야기해서 문을 땄다.

생각보다 아버지의 내연녀는 너무도 뻔뻔하게 나를 노려보며 아빠에게 전화를 해두고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건넨 한마디가 참 압권이었다.

"너 너네 아비 닮아서 성격이 아주 지랄 맞구나!" 그 여자의 입에서는 담배냄새와 매스꺼운 입냄새가 섞여서 났다. 고작 이런 여자와 바람이나 피우려고 엄마와 자식들을 다 버릴 생각까지 하다니.. 뭐가 씌어도 단단히 씐 모양이었다.

"야! 그런 승질 지랄 같은 내 아빠가 좋다고 바람피운 게 뭘 잘했다고 눈을 시퍼렇게 뜨고 큰소리야!."

나도 그때 반쯤 미쳐있었지 싶다. 그간 쌓여왔던 모든 분노가 폭발했다.

몇 분도 되지 않았는데 그 여자의 전화를 받고 얼마나 총알같이 운전해 달려왔는지 아빠는 오자마자 뒤집힌 눈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너 오늘 죽어봐라." 하며 그 여자가 보는 앞에서 내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나는 순간 아빠의 눈에서 공포를 느꼈다. 맨발로 미친 듯이 뛰어 25층을 내려왔고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공중전화로 도망쳐 몸을 숨겼다. 떨리는 손으로 흐느끼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엄마.. 나 여기 집에 왔는데.. 지금 좀 와줄 수 있어? 나 아빠한테 맞았어. 그 여자가 집에 있었는데.. 문을 안 열어 줘서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흑흑.. 흐흐흑....."

"알겠다. 엄마 지금 갈게!." 나는 금세 택시를 타고 달려온 엄마와 다시 집으로 올라가 내 간단한 짐을 챙기고 나오려는데 아빠가 협박조로 말했다.

"너 이기지배 내가 고등학교 학비 안 대줄 거야!."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참 황당했다. 나는 대답했다. "아빠. 법원에서 봅시다."

한두 번이 아닌 외도와 폭력을 행사해 온 아버지라는 사람이 한 푼이라도 재산분할을 덜 해주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경멸스러웠으며, 변호사에게 아빠가 천하의 나쁜 놈이라는 사실의 편지를 좀 써달라는 엄마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내 편지가 재산 분할 소송에서 엄마에게 유리한 쪽으로 작용했고 두 분은 완전히 남이 되었다. 선포한 대로 아빠는 학비를 내주지 않았고 나는 학비를 내지 못해 학생부에 불려 가 수업을 듣지 못하고 선생님과 상담을 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아빠의 반대에 서게 되었고 삶의 의미도 갈 곳도 잃어버린 나는 무기력하고 다소 방탕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내 앞으로 편지가 한통 도착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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