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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롤로 Dec 10. 2020

#1. 방송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

"7년 차인데 왜 여태 메이저로 안 올라왔어요?" 


"7년 차인데 왜 여태 메이저로 안 올라왔어요?"


같이 일했던 작가 언니의 소개로 면접을 보러 갔다. 이름만 대면 아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제작사. 그곳 메인 작가님이 나의 이력서를 보고했던 말이다. 물론 나쁜 뜻은 아니었고, 방송 이력이 의아하셨던 것 같다. 


나는 7년 차 작가다. 사실 따지고 보면 1년 6개월 홍보영상 프로덕션에 있었던 건 제외하고 방송은 하긴 했었다. 그런데 내 이력서 한 줄에는 어디서 말해도 알아줄 만한 방송국 하나 없다는 것.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나는 애초에 방송에 큰 뜻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다. 


내 목표는, 방송 글이면 방송, 라디오 글이면 라디오, 홍보영상 글이면 홍보영상,  유튜브면 유튜브 다양한 포맷의 글을 쓰고, 경험을 쌓고 싶었다. 방송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경험이 있으면, 나중에 결혼해서도 경력 단절될 확률이 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솔직히 말해 '글'로 밥 벌어먹을 수 있는 일은 다양하게 하고 싶었다.  



메이저 방송국 이력은 없어도 프리랜서 작가로서 1인 사업자로서 일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그런데 외부 미팅을 다니면서 느낀 건 '현재 방송국 타이틀로는 아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방송, 저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아는 언니에게 이야기했더니 마침 작가 구하는 곳이 있다며 소개해줬다. 사실 알고 있었다. 면접 가기전 부터 이 프로그램은 내 성향과 맞지 않겠다는 걸, 그래도 혹시나 면접을 보면 마음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면접을 봤다. 결과는, 서로가 알았다. 서로가 아니라는 걸. 

면접을 통해 알았다. '내 위치'를. 7년 차인데도 지역방송을 하고 있고, 이미 진작에 메이저 방송으로 올라왔어야 했고, 방송 경력만 따지기에 애매한 나의 이력. 그렇게 얻은 깨달음. '아, 나는 방송은 아닌가 보다.'


이미 늦었다고 하면 늦은 건데, 내가 정말 방송국 타이틀을 갖고 싶다면, 4~5년 차와 비슷한 경력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제 와서 하나 얻으려것도 욕심 같았고, 밥그릇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작가를 정석대로 밟아오지 않았던 내게 연차에 맞는 페이를 줄 수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정석을 밟아온 작가들에게도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정도로 간절하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이 일을 했을 때 방송과 병행하면서 했던 프로젝트는 할 시간이 없겠구나 싶었다.)

그런데도 나는 방송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하나의 방송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야 하는지 안다. 방송은 끝났다고 해서 끝이 아니니까. 다음 방송을 또 만들어야 한다. 홍보영상은 일정 기간에 클라이언트와 잘 조율해서 기획안과 시나리오만 잘 나온다면 작가 일은 거기서 끝이다. 후반 작업에 자막 검수 정도하고, 유튜브도 마찬가지. 그런데 방송작가는 아니다. 


그런 의미로 방송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아이템, 아이디어, 장소 섭외, 출연자 섭외, 슛 들어갔을 때 무리 없이 모든 것이 원만하게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세팅과 조율, 또 조율. 촬영구성안, 대본, 자막까지 이중 가장 힘들고 그만두고 싶을 때가 촬영 앞두고 섭외 펑크날 때, 그날이 일요일이든 아침이든, 저녁이든 당장 내일 촬영이더라도 섭외를 해야 한다는 것, 그게 작가가 할 일이라는 것. "하..." 다시 생각해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떤 때는 굽신굽신, 부탁드립니다, 양해드립니다. 죄송합니다'봇'이 된다. 그런데 어떻게든 되고, 방송은 나간다. 그게 참 신기한 일이다. 


지금도 방송을 위해

책상 앞에 있을 작가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메이저 방송국 이력 하나 없는 7년 차 작가이지만, 그래도 내 일에 만족한다.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작가라는 이름으로 '글'로 밥 벌어먹고 있으니까. 


그.래.도. 

호옥~~시나 기회가 있다면 참 좋을 일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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