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갓집은 경상북도 성주다. 노란 황금 참외가 유명한 성주는 여길 봐도 비닐하우스, 저길 봐도 비닐하우스로 가득한 지역이다.
어린 시절 가장 흔하게 먹은 과일도 참외다. 나는 이 참외도 싫었다. 새로운 과일을 먹고 싶었는데, 우리 집 냉장고 문을 열면 과일 칸에 노란 참외만 가득했다. 지겹도록 먹은 참외가 귀한 줄도 몰랐던 나이에 나는 외갓집에 가는 게 싫었다.
방학만 되면 갔던 외갓집, 방학식과 함께 외갓집에는 8명의 사촌들이 모였다. 외삼촌네 오빠와 언니, 큰 이모네 오빠와 동생, 그리고 우리 집에 오빠와 나, 작은 이모네 오빠와 동생까지. 중1부터 초등학교 고학년, 저학년, 미취학 아동까지 우리는 방학 동안 어울려 놀았다.
그런데 나는 그곳에 가기 싫었다. 왜냐하면, 외할머니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우리 외할머니의 온 관심은 '형구(가명)' 그러니까 외삼촌의 아들, 외할머니에겐 큰 손자, 나에겐 외사촌 오빠다.
우리 외할머니는 알아주는 '아들바라기, 손자바라기'시다. 사촌들이 성인이 돼서 모였을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이종 사촌 오빠들도 친가에 가면 다들 장손인데, (이모와 우리 엄마는 모두 맏며느리다) 외갓집에만 가면 다들 찬밥신세였다는 거다. 그래도 내 입장에선 손자면 그나마 다행인 줄 알아라고 얘기한다.
외손녀인 나는 오죽했을까. 그것도 둘째 딸의 딸.
외삼촌의 딸인 사촌 언니는 외할머니에겐 친손녀이니, 또 다른 서열이 정해진다. 친손녀지만, 잔심부름은 또 언니의 몫이 된다. 나는 그 모습조차도 무언가 '있어(?) 보였다' 언니니깐 가질 수 있는 권리 같았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언니가 하면, 나는 자연스레 따라나섰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나와 같은 외손녀임에도 불구하고, 네 명의 아들들(이종사촌 男)을 제친 최대의 수혜자가 있다. 바로 '공주(가명)다. 막내 이모의 막내딸, 그러니까 막내 of 막내! 귀엽고 깜찍했던 공주는, 내 눈에 봐도 귀엽고 깜찍했다, 그때는. (지금은 나보다 크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동생이자 친구 같은 존재다)
오빠들과 언니의 귀여움을 독차지했고,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예쁜 짓(?)을 그렇게 했다. 서울말을 쓰면서 수줍어하고 좀처럼 속내를 비치지 않으면서 귀여움으로 무장했던 우리 공주. 늘 자기 전, 외할머니의 옆 자리는 공주의 자리였다.
나는 그 당시 친손자, 친손녀, 외손자, 외손녀 중 외할머니의 관심 순위에서 최하위, 8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쯤인 것 같지만 사랑의 크기를 충분히 느끼고도 남을 나이였다. 그래서 나는 가기 싫었다. 집에 빨리 돌아가서 친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런데 20년쯤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외갓집에 가서 며칠 지내고 싶다. 언제부터였을까, 성인이 되면서 외갓집에 가게 되면 "아유~ 가영이 왔나?!" 하면서 반겨주시고, 너무 말랐다며, 많이 먹어라고 이것저것 내어주신다.
한 번은 할머니가 썬 떡국 떡 모양도 너무 귀엽다고 말했더니, 할머니는 "가영이는 귀엽다는 말을 그렇게 잘하드래이~" 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와 할머니 디테일하시다... 어떻게 아셨지..? 내가 귀엽다는 표현을 잘한다는 걸" 이때 사실 살짝 심쿵했다. 나에게 관심이 있으셨다는 걸 알았다. 부정하고 싶지만, 나는 관종이다, 조용한 관종^^
이제는 외할머니께서 사촌동생 '공주'보다 내게 좀 더 관심을 가지신다. 느껴진다. 하루는 동생이 "언니, 이제 할머니 나한테 옛날만큼 안 그러셔~ 나한테 관심이 없으셔 ㅋㅋㅋ" (나는 왜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을까? :) 그래서 나는 "너 옛날에 진짜 작고 귀여웠잖아, 이젠 안 그래서 그래 ㅋㅋㅋ"라고 받아쳐줬다. 둘이 한참 웃었다.
어느 순간 알게 됐다. 외갓집은 따뜻한 곳이라는 걸. 어쩌면 내가 늦게 안 것이다. 할머니의 애정과 마음을. 할머니에게 손주들은 당신의 자녀들이 낳은 소중한 내 새끼들이라는 것을. 그러니 친손주, 외손주 할 거 없이, 다 내 새끼들이고, 내 똥강아지들이다.
이제는 소중한 나의 외갓집,
이제는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