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로까 Oct 31. 2016

모잠비크 입성기

아프리카 땅을 밟은 순간까지도 6개월 동안 지낼 또 다른 곳에 와 있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18개월을 계획으로 한국을 떠나던 날도 멀고 오랜 여행이 아닌 잠시 짧게 휴가를 다녀오는 기분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프로젝트 지역으로 가기 위해 마푸토를 떠나던 날 새벽,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바람 때문에 정전이 되자 그제야 앞으로의 모험에 대한 걱정과 설렘 등의 감정이 교차했다.


마푸토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한 버스는 오후 6시가 되어 소팔라(Sofala) 주 인쇼페(Inchope)에 도착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까지의 비행보다 긴 시간이었지만 체감시간은 오히려 그때보다 짧게 느껴졌다. 아마도 미국에서 펀드레이징을 통해 열 시간 이상의 도로여행에 익숙해진 덕분이겠지. 


버스에서 내리니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다가와 과자나 생수 등을 팔거나 자기 키만큼 커다란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이미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를 도와줘야 할 상황에서 도움이 되지 못하고 거절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원봉사자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겠다고 왔는데 당장 눈앞에 있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지나치고 있다니... 나에게는 얼마 되지 않는 액수지만 그들에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선뜻 건네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모든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해와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는 경험자들의 충고를 새겨들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기도뿐. 


마링게(Maringue). 반정부 야당인 레나모(RENAMO)의 기지가 있어 정치적 충돌과 내전이 끊이지 않았다는 곳. 이곳에 오기 전에 다수의 모잠비크 사람들에게서 들은 마링게에 관한 정보는 단지 이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우려와는 달리 마을은 잘 정돈되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아직까지도 무력충돌의 위험이 있다면 자원봉사자를 파견하지 않았을 테고, 현지인들도 이제는 걱정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인 이유로 마링게는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아 전기나 수도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다. ADPP(모잠비크에서 함께 한 NGO)는 솔라 패널을 이용해 필요한 전기를 만들어 쓰고 있으며, 몇몇 가정에서는 해가 진후 발전기를 돌려 희미하나마 전등을 밝혀 어두운 밤을 보내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직 전기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곳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손에는 핸드폰이 쥐어져 있으며 거의 모든 슈퍼마켓에서 핸드폰 칩과 크레딧을 팔고 있다. 1주일 동안 묵었던 호스텔에는 베트남 사람과 모잠비크 사람이 묵고 있었는데 그들은 베트남 통신회사인 모비텔(Movitel) 직원으로 마링게에 사무실을 세우러 왔단다. 전기보다 휴대폰 공급이 더 빨리 이루어지고 있으니 참 흥미롭다.


마푸토에서 열흘, 마링게에서 일주일을 지낸 후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작은 시골 마을 굼발란사이(Gumbalansai)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정착할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마음 놓이는 일인지 경험해보니 알겠다. 


마푸토에서 묵었을 때는 아프리카에 오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게 생활할 수 있었다. 스위치를 켜면 전등불이 어둠을 밝히고, 수돗물은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깨끗했다. 마푸토 시내는 뿌연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차들로 요란하고 높은 현대식 건물, 미국이나 유럽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쇼핑몰도 볼 수 있어 그동안 생각해왔던 아프리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나무와 짚으로 지어진 집들, 맨발로 돌아다니는 사람들 등 소위 생각하는 개발이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빈곤이라는 게 뭘까. 왜 우리는 아프리카가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개발이나 경제성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소위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만드는 걸 의미하는 건가.' 하는 여러 생각과 고민들이 머리를 스쳤다.


이런 의미에서 마링게나 굼발란사이는 마푸토와는 완전히 다르다. 전기도 없고, 전화 안테나도 없고, 당연히 인터넷도 없고, 물도 없지만, 다양한 동물과 곤충들, 그리고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있었다. 


오후 5시 반 해가 지기 시작하면 얼른 저녁을 지어먹고 잠자리에 들고, 아침 6시에는 시끄러운 닭 울음소리에 잠에서 깬다. 물론 화장을 할 필요는 없다. 가끔 세수도 건너뛴다. 샤워는 진짜 필요하다고 느낄 때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면 충분하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은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우물에서 길러다 사용한다. 동네 사람들은 우물물을 직접 마시지만 우리는 마링게에 나갈 때마다 가게에서 사 온 생수를 마시고, 양치질이나 요리를 할 때는 물을 끓여서 식힌 후 정수한 물을 이용한다. 


모잠비크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지만 굼발란사이에는 안테나가 없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인터넷이나 핸드폰 같은 통신수단 없이 더 고요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쓸데없는 일을 하면서 흘려보냈는지… 항상 꾸밈없이 자연적인 모습으로 살려고 노력해왔는데 그러한 삶의 방식 안에 들어와 있음을 느꼈다.


Farmers'Club이라는 프로젝트에 배치된 자원봉사자로서 이 지역에서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위생과 관련된 일이며, 사람들이 함께 일하도록 독려하는 것이었다. 처음 모잠비크에 도착했을 때 마링게나 굼발란사이뿐만 아니라 마푸토에서도 길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쓰레기에 적잖이 놀랐었다. 쓰레기, 음식찌꺼기,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등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한꺼번에 태워서 처리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쓰레기 태우는 연기는 사람들 건강뿐 아니라 환경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집 근처를 청소하는 일은 가장 기본적이고 쉬운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할 테고.


6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상황이 바뀌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모잠비크를 떠난 후에도 계속해서 그들을 독려하고 좀 더 나은 상황으로 개선할 의지를 부여하면서 이곳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있기를 기대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대성 이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