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관하여
1) '느와르', '하드보일드?'와 '가족 이야기'
영화 '길복순'을 처음 접한 건 유튜브 shorts에서였습니다. 전도연 배우가 빨간 유성매직 한 자루를 들고 칼을 든 여성을 상대하는 장면이었어요. 자줏빛 셋업을 입고 가벼운 몸짓으로 진행하는 롱테이크 액션신 속의 전도연 배우의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전도연 배우의 우아한 목소리와 몸짓, 흐르는 탱고, 춤을 추듯이 진행되는 액션신, 이 시퀀스를 보고 넷플릭스에서 '길복순'을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영화 '길복순', (사진 = 넷플릭스 제공)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소위 '느와르'나 '하드보일드'에 가깝습니다. 거대한 청부살인업체인 MK Ent에 소속된 최고의 킬러 길복순(전도연 역)이 주인공이고, 작 중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그녀의 손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그녀의 '강함'은 극을 이끌어가는 주된 원동력이고,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2015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 '존 윅'이 떠오르더군요. 특히 차민규(설경구 역)가 블라디보스토크의 술집에서 마피아 조직을 쓸어버릴 때, '존 윅'의 향기가 물씬 풍기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길복순'을 '존 윅'과 같은 '느와르'나 '하드보일드' 작품이라고 칭하기에는 여러 가지 걸림돌들이 있습니다. 우선 '느와르'가 맞냐고 묻는다면, "네, 맞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 내적으로 다양한 쟁점들을 다루지만 (예컨대, 성소수자, 입시 비리, 모성 등등.) 극의 주된 흐름을 이끌어 가는 이야기는 '청부살인'이니까요. 결국 거대한 살인업체의 A급 킬러인 길복순의 이야기를 빼놓고는 이 작품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가 이어져요.
하지만 이 작품이 '하드보일드'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아뇨, 하드보일드라고 보기는 어렵네요"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느와르'영화는 곧 '하드보일드'영화로 생각되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통용되는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하드보일드'라는 어휘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겠네요.
'하드보일드(hard-boiled)'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또는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냉담한 태도를 일컫는 말. 1차 세계대전 때 미군 신병 훈련소의 훈련 교관을 부르던 말에서 유래됐으며 이들이 입었던 빳빳하게 다림질한 옷깃의 제복을 뜻했다. 1930년을 전후하여 미국 문학에 등장한 새로운 사실주의 수법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영미 문학에서는 수식을 일절 배제하고 묘사로 일관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식의 ‘비정한 문체’를 칭하기도 한다.
하드보일드는 장르(genre)라기보다는 스타일(style)을 말하는 것으로 자연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주제를 냉철하고 무감한 태도로 묘사하는 특징을 가진다. (후략)
[네이버 지식백과] 하드보일드 [hard-boiled] (영화사전, 2004. 9. 30., propaganda)에서 발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냉담하고 비정한 문체, 무감한 태도가 '하드보일드'의 특징입니다. 폭력적인 것에 대한 감정적이고 도덕적인 판단의 배제가 곧 '하드보일드'의 핵심이지요. '존 윅' 1편이 '하드보일드'라고 할 수 있는 이유도, 작품 내의 강렬한 살인 행위를 그저 신속하고 거칠게 보여주기만 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면에서 '길복순'은 조금 다릅니다.
우선, 그녀에게는 딸이 있습니다. 중학생인 길재영(김시아 역)인데, 길복순이 작 중에서 골머리를 썩이는 대부분의 일은 그녀에게 맡겨진 청부살인이 아니라 그녀의 딸에게서 비롯됩니다. 길복순이 처음으로 실패하는 작품(작 중에서 청부살인을 작품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그녀의 딸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된 흐름은 킬러로서의 길복순이지만, 작품 내의 갈등의 시발점에는 항상 그녀의 딸이 있습니다. 즉, 이 작품은 '청부살인업자'라는 자극적인 소재 뒤편에 '엄마와 딸'이라는 평범한 '가족 이야기'를 실어 보내고 있습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퀀스가 앞서 말했던 길복순의 첫 실패 작품입니다. 길복순은 한 어린 남성을 자살로 위장해 살인해 달라는 작품을 맡게 됩니다. 그녀는 그 남성을 수면 가스로 재워놓고,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그의 손목을 커터칼로 그으려고 합니다. 그때 그 남성의 얼굴을 보면서, 긋기를 주저하게 되죠. 그때 그의 가족사진과 위조된 유서를 확인하고, 아들의 입시 비리로 곤욕을 겪고 있는 총리 후보가 자신의 아들을 자살로 위장해 살인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태까지 단 한건의 작품도 실패한 적이 없는 A급 킬러 길복순은, 이 작품을 자의로 포기하고 회사에 실패했다고 알립니다. 이 사건이 이후 작품의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 됩니다.
위 작품을 자의로 포기한 이유는 당연하게도 그녀의 딸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킬러이면서 어머니인 길복순은, 자기 새끼를 죽이려는 매정한 아비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사춘기에 접어든 딸을 어려워하면서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매정한 킬러'에게도 일상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점이, '길복순'을 '하드보일드'로 볼 수 없게 하는 주요한 부분이지요. 가볍게 정리하자면, '길복순'은 '느와르'이지만 '하드보일드'는 아니고, 뒤편에는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2) '길복순' 속의 다양한 이야깃거리
앞서서 이야기했듯, 길복순 속에는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길복순과 길재영의 모녀관계에 대한 이야기, 두 번째는 차민규와 차민희(이솜 역)의 근친적 요소, 세 번째로는 길재영의 성소수자(레즈비언) 요소 정도가 있겠네요. 이러한 이야깃거리에 대해 천천히 한번 이야기해 보도록 하죠.
2-1) 길복순과 길재영의 모녀 관계
먼저, 길복순과 길재영의 모녀관계는 킬러 김복순의 청부살인 이야기의 뒤편에서 이 전체적인 극을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주요 요소임을 위에서 확인한 바 있습니다. '고도의 살인 기술을 가진 킬러이지만, 딸을 보면서 죄의식을 느끼는 어머니'라는 모순적인 캐릭터성이 길복순의 매력 포인트죠. 아무리 특정한 분야에서 뛰어난 천재(길복순은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천재적인 인물이죠) 일지라도, 처음 겪는 분야에서는 초심자의 입장임을 잘 보여줍니다. 영화 '길복순'은 이러한 모순을 관객에게 무겁게 전달하기보다는, 길복순이라는 인물이 겪어가는 사건을 통해서 가볍고, 입체적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길복순이라는 인물의 심경이 오프닝 시퀀스-첫 실패 작품-재영의 커밍아웃-결말의 과정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고, 그 장면들을 나름 납득할 수 있는 개연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프닝 시퀀스는 꽤나 유쾌하기도 하고요. 이러한 가벼움이 영화를 즐기러 온 관객들에게 좀 더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이기도 하겠네요.
물론, '가족 드라마'로서 길복순이 훌륭한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즉답하기는 어렵습니다. 길재영과 길복순의 갈등 해소에 대한 내용이 많이 생략되거나 비약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거든요. 특히 어머니의 살인을 목격한 길재영이 오히려 어머니에게 마음을 여는 결말을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분들도 더러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킬러 영화'라는 본질을 살리면서 동시에 '가족 드라마'를 보여주려 했기에 나타나는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이로 인해 인물의 감정선의 일부분이 잠시 드러났다가 다시 피 튀기는 장면이 나오고, 다시 인물의 감정선 살짝. 이러한 시퀀스에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지?"라는 생각이 드실 분들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2-2) 차민규와 차민희의 근친적 요소
두 번째로, 차민규와 차민희의 근친적 요소를 이야기해 볼까요. 개인적으로 이 요소가 필요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근친적 요소가 사회적 터부(taboo)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차민희와 길복순을 어떻게 하면 대립시킬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넣은 요소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납득이 될 정도로요. '근친상간'과 같이, 범사회에서 문제시되는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 요소의 필요성을 관객이 납득할 만큼 충분한 설명을 작품 내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길복순'에서는 그러한 고민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여기서 잠시 감독님의 인터뷰를 빌려오자면,
"그냥 이솜이 맡은 차민희는 오빠를 좋아하는 어린아이라고 생각했다. 왜 커서 아빠랑 결혼할거야,라는 아이처럼. 민규가 민희를 잘 못 키운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상태로 민희는 어른이 돼 버린 것이다. 근친이라면 서로 좋아해야 하는데, 이 관계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솜에게 최대한 아이처럼 웃고, 최대한 아이처럼 감정을 드러내달라고 부탁했다. 내꺼를 빼앗겨서 질투하는 아이 같은."
- 변성현 감독이 밝힌 '길복순'의 길고 긴 A to Z [IS인터뷰], 전형화 기자, 다음 일간스포츠, 2023.04.14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사전 설명을 모르고 보는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근친적 요소가 꽤나 갑작스럽게 다가왔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후에 이러한 감독님의 의도를 알게되었지만, 여전히 작 중에서 이러한 요소가 갑작스러웠다고, 반드시 있어야 하는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입장은 변함이 없었네요. 물론 이러한 터부(taboo) 요소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닌, 그 요소의 필요성을 관객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리하자면, 이 근친에 대한 이야기는 관객이 납득할 만큼 작 중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으며, 이솜 배우가 아이 같이 연기하는 것으로 감독님의 모든 의도를 표현하기에는 그 근친 요소가 가진 근본적 힘이 너무 컸다고 생각되네요.
영화 '길복순', (사진 = 넷플릭스 제공)
2-3) 길재영의 성적 소수성(Sexual Minority)
길재영은 작 중에서 레즈비언으로 묘사되죠. '동성애'라는 키워드는 위에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근친'이라는 키워드보다는 영리하게 사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관객에게 그 필요성을 납득은 시켰다고 생각되어요. '동성애'나 '근친' 모두 아직까지는 사회적으로 조심스러운 요소임은 사실입니다만, '동성애'는 '근친'에 비해서 비교적 개방적인 담론이 많이 있어 왔고, 그로 인해서 관객들이 길재영이 '동성애자'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아마 없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는 서사도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길재영의 커밍아웃 이후 "숨기면서 살게"는 길재영의 말에 "네가 잘 못한 게 없는데 왜 숨기면서 살아"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서로 숨기는 게 있는 모녀지간의 벽이 한층 허물어지는 느낌을 주면서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죠. 이런 활용 방향은 아주 좋았던 것 같습니다.
길재영의 성적 소수성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서 약간 부자연스러운 시퀀스를 하나 꼽자면, 십만원권 지폐에 들어갈 인물 선정에 '논개'를 뽑는 시퀀스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시퀀스에서 여러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으려 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이순신, 광개토 대왕, 을지문덕, 안중근의 공통점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점을 집으며 '살인은 나쁜 것'이라는 뉘앙스로 길복순의 죄책감을 상기시키고, 논개를 고르며 "여자가 하기 힘든 일이잖아."라고 말하면서 말하자면 '진취적 여성상'에 대한 재영의 태도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았습니다. 근데 이 시퀀스가 제게는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앞서 열거된 위인들을 고작 '살인자'로 만들어 버리는 시퀀스이기도 하고, 재영의 논리대로라면 논개도 '살인자'인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죄의 무게가 덜어지는 것 같기도 해서요. 관객에게 이런 식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성공적으로 활용된 '동성애자'의 캐릭터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퀀스는 조금 더 좋은 방향이 있었지 않았을까 싶네요.
영화 '길복순', (사진 = 넷플릭스 제공)
3) 나쁘지 않은 영화 '길복순'
러닝타임 2시간 16분. 제법 긴 영화임이지만, 지루하다거나 질린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특히 '길복순'만의 액션신은 개성이 넘쳤죠.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수를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한 뒤에 살인에 임하는 장면들, 차민규가 보여준 술집 건 액션, 길복순이 보여준 빨간 유성매직 한 자루와 함께하는 우아한 액션신들은 '길복순'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시퀀스들이 꽤나 촘촘하게 짜여 있어서, 눈이 심심할 틈은 없었어요.
작품의 미장센도 눈을 즐겁게 하는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오프닝 시퀀스에 활용된 지나가는 기차 뒤편에서 바라보는 액션신이라던지, 오프닝 시퀀스 이후에 녹색으로 뒤덮인 쇼핑카트와 마트 속에서 새빨간 사과 하나만 부각되는 장면도 길복순의 아이덴티티인 붉은 빛이 탁 드러나는 것 같아서 즐거웠습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깔려있는 어둑어둑한 분위기가 붉은빛의 화사하면서도 치명적인 길복순이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잠깐씩 지워지면서, 자칫 너무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가 중간중간 환기되기도 합니다.
아쉬운 부분은 이러한 눈호강 시퀀스 사이에 나오는 서사적 측면의 깊이입니다. '길복순'에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정말 많이 나왔습니다. MK ent 이외에도 많은 청부살인회사가 나오고, 그 회사마다 그냥 얼굴만 스치기는 아쉬운 캐릭터 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특히 한희성(구교환 역)의 죽음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분명 길복순과 한희성의 서사(둘은 육체적 관계도 있고, 한희성이 길복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면모도 나와서요)가 더 있을 법도 한데, 이걸 미쳐 풀기도 전에 극에서 하차해 버려요. 차민규와 길복순의 멜로적 측면도, 결말부에서 잠깐 중요한 포인트로 부각되고, 그 이전에는 아주 얕은 낌새 정도에 그칩니다. 위에 크게 세 가지를 언급하기도 했지만, 더 많은 이야기와 인물들이 그냥 옆을 스쳐가기만 합니다. 너무 많이 담으려다가, 다 담지를 못했다고 할까요.
정리하자면, '길복순'은 나쁘지 않은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전도연 배우를 필두로 배우 분들의 연기가 훌륭하고, 지루하다거나 재미없는 영화는 절대 아닙니다. 잠시 눈이 즐거운 영화를 보고 싶으시다면, '길복순'을 한 번 보시는 것이 어떠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