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안 Aug 02. 2024

올해의 마지막 출근

균형감이 중요해지는 시점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출근일이었다.


12월 말까지 육아휴직으로 자리를 비운다. 약 5개월. 길다면 길다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친한 회사 동료, 리더분들에게 간단한 인사를 드렸다.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고, 육아 잘하고 돌아오겠다고 이야기했다. 감사하게도 다들 따뜻한 응원의 말을 건넸다. 회사 생각 말고 육아에 전념해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인데 잘 결정했다, 같은 말들이었다. 원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다시 한번 내가 일하는 조직이 인간적이라고 느꼈다.


휴직을 결정하는 과정은 일종의 밸런스 게임이었다. 회사와 아내, 두 축을 놓고 어느 쪽에게 미안함을 느낄지 정해야 했다. 휴직을 선택하자니 업무 부담이 가중될 팀원들에게 미안했다. 회사를 다니자니 육아 부담이 커지는 아내에게 미안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늙어서 이 시점을 되돌아봤을 때, 어떤 선택을 덜 후회할까?


아마존 제프 베조스가 사용했다고 알려진 '후회 최소화 프레임 워크'로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퇴근 후 육아에 지친 아내를 보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이럴 거면 그냥 눈 딱 감고 휴직할 걸, 하고 스스로를 원망할 것 같았다. 아이가 커가는 소중한 시간을 놓치는 것도 아쉬울 것 같았다. 어느 쪽을 더 후회할지 답은 명확했다. 생각이 명쾌해졌다.


출산 예정일 2달을 앞두고 팀장에게 육아 휴직을 희망한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 뒤로 2달이 흘러 무더운 7월이 왔고, 소중한 아기가 태어났다. 예정했던 휴직도 함께 다가왔다. 아기의 얼굴을 보니 휴직을 결정하길 새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는 하루만 지나도 훌쩍 자랐다. 아기의 얼굴만 봐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이 순간을 함께 하지 못했다면 많이 아쉬웠을 것 같다. 다시 생각해도, 휴직은 잘 한 결정이었다.    


요즘 부쩍 '균형'이라는 단어를 많이 떠올린다. 조금씩 나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많아짐을 느낀다. 회사에서는 중간 허리 역할이 요구된다. 주어진 일을 잘 처리하는 건 당연하고, 팀장을 서포트하며 일을 끌고 가야 한다. 집에서는 남편이라는 역할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아빠라는 역할도 생겼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저글링(juggling)하는 곡예사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예전에는 일과 가정이라는 두 개의 공만 잘 던지고 받으면 됐는데 이제는 육아라는 하나의 공이 더 추가되었다. 그만큼 저글링의 난이도는 더 올라갈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나아가는 일 못지않게 주어진 공들을 균형감 있게 운영하는 일에 신경 써야 한다. 액셀을 밟는 것보다 부드러운 코너링이 중요해지는 시점이랄까.   


가중되는 역할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당장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 온갖 근심걱정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일주일 동안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새로운 역할과 함께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새로운 원동력도 함께 생겼다.   


지구에 온 걸 환영한다. 앞으로 잘 해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영어 공부를 1년 동안 지속할 줄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