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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요 Aug 14. 2021

인어(認鋙)

다시 쓰는 인어공주 - 왕자는 알고 있었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어. 바다에서 나를 구한 것이 너였다는 것을’.

 나는 버릇처럼 혼잣말을 하였다. 그 소리에 앞에 누워있던 개의 귀가 움찔거렸다. 검은 해변가에는 습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주변엔 나와 개 둘뿐이다. 어두워진 바다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구한 사람이 인어공주임을 알고 있었다. 바로 그날, 내가 물에 빠진 날, 이미 알고 있었다. 바다에서 구출되면서 잠깐 눈을 떴을 때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모습은 쉬이 잊을 수 있는 형상이 아니었다. 짙은 회색의 얼룩덜룩한 가시 비늘, 차갑게 미끌거리는 창백한 회색 피부, 전혀 맡아보지 못한 역한 비린내. 소리를 지르며 그녀의 품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내게 그런 기력은 없었다. 나를 구한 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제야 흐릿하게 흘려들었던 소문이 떠올랐다. 바닷속에는 인간이 알지 못하는 기괴한 괴물이 있다는 이야기. 사람들은 그것이 인간과 비슷하여 인어라 부른다 하였다. 파도로 그녀의 끈적이는 머리칼이 뺨에 닿았을 때 질끈 눈을 다시 감았다.

 그녀는 나를 해변에 데려간 후 내 얼굴을 훑었다. 그녀의 뜨거운 콧김이 느껴지자, 나는 참지 못하고 눈을 뜨고 말았다. 그때 그녀와 잠깐 눈이 마주쳤다. 무언가 희열에 찬 그녀의 얼굴은 소름 끼쳤다. 인어공주가 주변 소리에 놀라 다시 바다로 돌아갔을 때, 실눈을 뜨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뒤돌아보지 말기를 바라며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나는 그녀가 몹시 무서웠다.



 곧 그때보다 더 무서운 날들이 다가왔다. 그녀가 두 다리를 가지고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반갑다는 표정으로 나를 향해 달려왔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만약 내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면 그 영혼을 받으러 오는 악마가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얼어붙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그녀도 말을 하지 못했다. 말을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어들의 발성과 인간의 발성이 달라 서로 소통이 안 되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는 나에겐 행운이었다. 그 덕에 그녀가 몸으로 던지는 질문들을 못 알아듣는 척 슬쩍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넘길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녀의 표정만 보아도 바로 드러나는 부분. 그녀는 나를 끔찍하게 좋아하였다. 노골적이었다. 얼굴에 역력히 드러난 구애의 모습은 주변인들이 모두 알아볼 지경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조차 끔찍하게 혐오스러웠다. 그녀가 물속에 사는 미지의 인간이라는 점도 무서웠지만, 비늘 꼬리를 다리로 바꿀 만큼 마법이 있다는 것이 더 무서웠다. 함부로 대했다가 무슨 변을 당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나의 이런 어두운 마음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내 목숨을 구해준 이에게 고마워하긴 커녕 혐오하다니. 이런 부끄러운 마음이 들통날까 걱정되어 안간힘을 썼다. 내 모순된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옆 나라 공주와의 결혼을 빨리 서두르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오늘 결혼식은 잘 치렀다. 온 백성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을 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은 내 결혼식을 더욱 빛내 주었다. 태양이 밝게 빛났다. 그러나 그렇게 환한 태양조차 칠흑처럼 어두운 그녀의 낯빛을 밝히지는 못했다. 그녀의 컴컴한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바닷속 인간들이 쳐들어올 것 같은 불안함이 들었다. 오른쪽 편두통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무 일 없이 저녁이 되자 어두워진 사위에 그녀의 검은 얼굴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러자 그동안 가졌던 걱정이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그래 오늘로써 끝이다. 이제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된 나를 그녀는 더 이상 매달리지 않을 것이다. 뭘 어찌 더 바랄 수 있겠는가.

 신혼 첫 밤인데, 잠이 오지 않아 이렇게 어두운 바닷가나 맴돌다니. 침대 옆에 베개로 대충 나처럼 매워 놓은 모양을 신부가 알아채기 전에 얼른 방으로 되돌아가야겠다.      

           




 신부가 깰까 소리 없이 문을 조심히 열고 들어갔다. 침대 옆에 작은 불빛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무엇인가 궁금해 몇 발자국 걸어가니 누군가 침대를 바라보며 등을 돌리고 서있었다. 인어공주였다. 나도 모르게 문 옆 작은 기둥 사이로 몸을 숨겼다. 조심히 고개를 내밀어 인어공주의 옆모습을 바라보니 그녀가 칼을 들고 침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손잡이에 시뻘건 루비가 박힌 팔뚝만 한 칼이었다. 칼은 곡선 없이 끝이 뾰족하게 날카로웠다. 한 번만 휘둘러도 가녀린 목쯤이야 쑥 베어버릴 수 있는 칼. 신부를 구하러 가야 하는데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상황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사지가 후들거렸다. 인어공주는 물끄러미 침대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한 곳에 꽂혀 있었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신부가 아닌 그 옆에 이불로 덮인 베개 뭉치였다. 바로 나였다. 다리에 힘이 빠져 기둥을 붙잡고 조용히 주저앉았다. 어둠에 묻혀 보이는 것은 오직 인어공주뿐이었는데, 그 모습이 가히 기괴하였다.

 그녀는 흐느끼고 있었다. 목소리는 들리진 않았지만, 심하게 들썩거리는 어깨만 보아도 울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웃어다가 울었다가 칼을 들었다가 내렸다가, 자신의 거친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발을 구르곤 하였다. 칼이 침대로 향할 때마다 마치 내 살이 베이는 것 같았다. 매무새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베개들이 자기 모양을 드러낼까 봐 초조했다. 내가 아니라 베개임을 알게 되면 그녀는 어떻게 할까.     

 한참을 흐느껴 울던 인어공주는 가만히 뒤를 돌았다. 어둠 속에 숨어 있었기에 그녀는 분명 나를 볼 수 없었을 텐데, 그녀의 시선은 명확히 나를 향했다. 내 모습이 들킨 건가 싶어 온 몸이 경직되던 그때, 마치 물속을 유영하듯 조용히 어둠 속을 헤쳐 방을 나갔다.


 다음 날, 인어공주는 사라졌고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공기방울을 볼 수 있었다고 하였다. 공기의 정령들이 내려와 인어공주를 칭송하였단다. 자신들도 가지기 힘든 아름다운 불멸의 영혼을 그녀가 가지게 되었다고 찬양하였다. 인어공주가 전한 말은 한 가지였다. 왕자 내외 결혼을 축복 드리며 두 내외가 죽게 되면 그때 자신의 동상을 그 옆에 세워 달라고 하였다. 그리하면 나라가 번성하여 백성이 행복할 것이라 하였다. 내 결혼식 다음 날 이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니 사람들은 인어공주를 예찬하며 내 결혼식 때마다 그녀를 기리게 되었다. 내 무덤 자리가 아니라도 나라 곳곳에 동상이 설치되고 인어공주를 찬미하는 아름다운 음악과 시가 마을을 가득 채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이야기할 때마다 인어공주를 떠올렸다.        





                           

 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내가 칼에 찔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구해준 것을 모른 척했기 때문이라 여긴다. 그녀의 마음 아픈 사랑이 이해되기는 하지만, 그 사랑의 대상자였던 나는 쉬이 그녀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노골적이게 자기의 감정을 갈구하는 그녀가, 자신을 구해준 사실을 알면서도 차갑게 구는 나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다른 여인과 결혼하는 것을 그 인어공주가 받아 들 일수 있었을까. 만약 알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심지어 그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을 알았다면, 그날의 칼날은 과연 그렇게 거둬질 수 있었을까. 그녀의 뒷모습이 지금도 어른거린다.

 아들에게 말해두었다. 이미 죽은 네 어미 옆에 나를 묻되, 내가 죽은 후 1년 후에 인어동상이 없는 다른 곳으로 우리 부부 묘를 이장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아들은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그러겠다고 하였다.   

  

 나는 요즘도 버릇처럼 혼잣말을 한다.

 ‘사실 너는 알고 있었지? 나를 죽이지 않으므로 평생 내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 소리에 앞에 누워있던 개의 귀가 움찔거렸다. 검은 해변가에, 습한 바람이 불었다.     




* 안데르센과 에드워드 콜린의 일화를 조금 참조하여 새롭게 각색하였습니다.   







            

그림. 가스톤 해프먼(1883-?)의 <세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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