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미숙 Feb 14. 2024

단상 1.

<사진첩을 정리하며>

강의수가 줄어든 방학을 이용해 한 달이 두 번 정도의 여행을 한 것 같다.

여행은 영화나 소설의 배경이 된다거나 배우나 감독의 삶이 서린 곳을 우선으로 한다.

이는 영화의 깊이를 더해주고,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며,

추운 계절로써의 도피이기도 하며, 동반자와의 추억을 쌓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몇 개의 테마를 찾아 다녀온 장소가 있음에도 생각의 깊이를 채울 공부가 덜 된 탓일까.

글을 쓰는 일은 일단 잠시 미뤄두기로 한다.

또 다른 여행으로 바빠질, 3월 중순 전 한 두 번은 더  무리일까를 생각하며~.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은 정해진 일이 없는 한, 느지막이 일어나 사진들을 정리하곤 한다.

외장하드를 꺼내보았다. 구입할 당시, 꽤나 큰 용량을 구입했던 기억이다.      


나만의 추억이 빼곡한 이 공간을 내 생애 열어볼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지.

내가 사라진 후에 이런 잡다한 것들은 또 어찌한담.

그야말로 잡다한 생각들이 머리를 잠식하고 있을 때, 제목 없는 폴더 하나가 눈에 띄었다.    

 

꽤나 오래전에 끄적여 놓은 글들이다.  

참으로 여유로운 시간이었던지, 무슨 할 말이 저리 많았을까

아니 바쁜 와중에 써놓은 글들이 분명했다.

읽고 쓰고 발표하고 바빴던 내 생활에서 잠시 숨을 쉬고 있었을,

그야말로 잠시 망중한을 즐겼던 시간이었음이 분명했다.

당시의 마음을 읽어가며 나만의 고집으로 살아온 시간들이 선명히 떠올라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본다.     


오늘 이렇게 묵혀둔 팽개쳐진 나만의 생각을 슬쩍 공유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당시 ‘수필’에 관한 일부분을 올려본다.     




지금의 내 글을 자유로운 수필이라 본다면, 본질은 자유로움이라 생각한다.

먹을 ‘소재’를 찾아 나서지 않고 일단 걸려든 먹이 ‘제재’는 놓치지 않고 알뜰하게 요리를 해야 한다.     

 

그러니 그 요리 솜씨라는 그 기교가 유별나게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오늘 나의 일상을 적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마치 나는 음식을 만드는 주부(요리사)가 되어 나물을 무치는

 (작가)의 손에서 맛이 우러나듯, 주물러 대는 손놀림(묘사력)으로.

    

그러니까 무형식의 형식이랄까, 무기교의 기교랄까 거기서 오는 묘한 맛을 우려내고 싶은 것이다.

거미가 줄을 늘이듯이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어디에서 끝내는 줄도 모르게 해내는 그 솜씨를 나도 갖고 싶다. 그 보이지 않는 솜씨가 나에게도 있다면 정말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될 것인데 말이다.

     

“요리”를 생각하니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다.

아이들에게 난 독서량을 키워주기 위해 다독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도둑질 빼고는 다 해 봐야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책을 읽어 머릿속에 간접경험의 지식(재료) 비축해 놓는 것은,

마치 냉장고에 재료(경험)가 많아 언제든지 갑작스런 요리 주문에 망설임 없이

풍부한 요리상을 차릴 수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글에는, 지성과 정서가 내포되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인간이란 것은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는 지적욕망이 있는가하면,

느끼고 감흥하는 정적인 욕망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들을 조절하거나 절제하는 의지적인 욕망에 있어서는

이 욕망들이 서로 균형있게 조화를 이루고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서두는 간결하면서도 상징적인 표현을 쓰고,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여운을 드리움으로

읽는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읽혀지는 흡인력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바쁜 일상을 헤매고 있는, 한 사람뿐인 나의 독자도 내 글을 보며 마음을 정화시키고

나의 보잘 것 없는 글속에서 인생의 향취와 여운을 느껴주었음 하는 바람이 있다.

이 역시 나의 바보스러운 내 바람일까.


나를 만나는 사람들의 일부분은 나의 바보스러움을 발견한다고 한다.

 이를 어떤 이는 즐기고 어떤 이는 나를 이용하려 한다.

난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때론 바보가 되어주기도 하고

어느 한순간은 화를 내지 말아야할 곳에 묻어뒀던 감정들이 폭발해 어이없게

또 한 번의 바보같은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 나의 진실만 알아줄 수 있는 한사람만으로도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모든 이가 날 바보라 한들 무슨 서러움이 있겠는가.

아무튼 난 바보스런 천재가 되고 싶고 그 길을 향해 정진하고 싶다.




끝을 맺으려하니 종이의 여백이 남아있어 한마디 적어보기로 한다.

어차피 나의 바보스러움을 얘기 했으니,

미완성의 미와 부조화의 미에 대해 일본 유명한 고유 스님이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 분의 말씀을 대충 적어보자면,      


"물품을 한 질로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취를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가 오히려 멋스럽다.

대체로 모든 게 완벽히 정비되어 있는 것은 별로 좋은 것이 아니다.      

미완성인 부분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오히려 장래가 남아있는  듯하여 흥미로우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따라서, 궁궐을 지을 때도 미완성의 부분을 반드시 남기고 있으며,

옛 현인이 저술한 불교서적이나 유교서적에서

문장의 단락이 결여된 예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인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실화 영화 : 공기살인-가습기 살균제 사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