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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Jul 30. 2024

예스맨이 되겠다는 다짐

예스맨은 노를 하면 안 되나요?


나랑 같이 신사업 하나 해보지 않을래? 기획은 다 돼 있어



그 말 한마디가 나를 흔들었다. 원래도 좋아했던 여행 분야에서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해 본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다니던 회사는 점점 반복되는 업무 때문에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느끼던 참이었다. 게다가 신이 나서 설명해 준 신사업은 꽤 그럴싸해 보였고, 나름 사업 구조도 짜여 있어 보였다.



내친김에 하고 싶은 역할을 제안했다. 신사업도 재밌어 보였지만, 지금의 회사에서 가장 아쉬웠고, 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기업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이름도 멋진 피플팀 같은 그런 일들 말이다. 신사업 개발과 기업문화 확립, 그리고 회사의 브랜딩까지, 어찌 보면 회사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역할을 맡고 싶었다.



전략기획실로 하면 되겠다



합류를 결정하기 전, 분명 전략기획실이라는 조직으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사실 조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다 좋아요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전략기획실이라는 단어는 꽤 멋있어 보였다. 그럼 전략기획실의 유일한 직원이 되는 건가?


하지만 합류를 결정하고는 이야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신사업 기획과 기업문화 관련 업무를 하되, 기존에 진행 중인 대행업의 브랜드도 몇 개 맡아달라는 거였다. 게다가 제안을 준 내용은 오히려 기존 업무의 비중이 더 큰 상황. 게다가 전략기획실은 없고, 기획팀 과장으로의 제안이었다. 곧 출산휴가를 가는 팀장의 자리를 대행할 거라는 말도 덛붙여졌다.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원하는 일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퇴사도 고하고 마음도 먹은 마당에, 사실 직급이나 조직구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처음 제안한 업무를 조금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잘해서 점점 확대해 나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예스맨이 되어 비위를 잘 맞춰주고, 내가 하고 싶은 업무로 점점 입지를 다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다시 합류했습니다



첫 출근 날, 나를 소개하는 대표는 기분이 정말 좋아 보였다. 다시 돌아온 연어라는 둥, 대기업을 돌다 돌아왔다는 둥, 굳이 안 해도 될 말들을 덧붙여 나갔다. 대기업을 두고 이 회사를 선택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은 듯싶었다. 직원들은 이삿짐을 정리하느라 분주했고, 사실 큰 관심도 없는 듯 보였다.



소개의 자리도 잠시. 곧 업무에 대한 인계가 시작됐다. 당장 새로 시작한 과업이 있어, 그 과업을 빠르게 파악하고 콘텐츠를 기획해야 했다. 어떤 성향의 사람과 일을 하는지도 모르게 일을 분배하고, 어떤 브랜드인지도 모른 채 곧 다가올 회의를 준비해야 했다. 1억이 넘는 프로젝트의 총괄 담당. 이래서는 신사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어느 정도 업무가 정리되자 대표가 불러서는 또 다른 브랜드를 맡아달라고 했다.



대표님, 저 이렇게 일 못 해요.

예스맨이 되겠다는 다짐은 첫날부터 와장창 깨지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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