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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 Jul 07. 2024

낱말을 먹고

낱말이나 이미지를 먹고 자라나는 언어 생명체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아메바라고 불러본다.


2010년 겨울

최승호


 토요일에 독립 서점엘 다녀왔다. 책을 살 때, 책 읽는 시간도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책장에 꽂을 공간이 없어 책장 앞에 책을 쌓아두는 마당에, 책을 산 것이 책을 읽은 것인냥 우악스럽게 책을 모은다. 서점에 가면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다.'라는 말을 신봉하는 신자가 된다. 블라인드 북도 하나 샀다. 정성스레 싸인 책 포장지 위로 십자 매듭이 단단히 묶여 있다. 매듭 끝으로는 짤막한 글귀가 쓰인 종이가 달려있다. 종이에 쓰인 열쇳말이 갈색 포장지에 싸인 책에 색감을 준다. '#희망의 부재 #결핍과 상실 #기다림'

 잘 슬퍼하는 것이, 잘 기뻐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기쁨은 삶을 유지하게 하고, 슬픔은 삶을 성숙하게 한다. 헤르만 헤세는 '삶을 견디는 기쁨'에서 슬픔을 극복하는 것과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은 섬세해질 때라야 가능하다. 슬퍼하는 이에게 "나도 그런 적이 있었어."라고 말하며 그 감정을 겹치려 하면 관계가 상하기 쉽다. 슬픔은 잘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뾰족하고, 날카롭고, 깨지기 쉬우며, 개별적인 감정이다.

 슬픔은 어떻게 연습할 수 있을까? 우선은 만나야 한다. 사람이든, 책이든. 꾸준히. 그중 책은 사람에 비해 위험 부담이 덜하다. 문학은 타인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언어를 통해 경험하는 타인의 세계. 문학은 슬픔에 이름을 붙인다. 결핍과 슬픔, 상실로의 발걸음을 허락한다. 문학 속의 언어를 먹으며, 내 삶은 자란다. 낱말과 이미지를 먹으며 자라는 언어 생명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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