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개인의 역사가 후손에게 이어져야 하는 까닭은?
개개인의 역사가 후손에게 이어져야 하는 까닭은?
아들아!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해마다 맞이하는 새해지만, 올해는 유독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지난해와는 달리, 세상이 확연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변화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쩌면, 죽음을 조금씩 준비해야 하는 쓸쓸함이라고 말하면 이해가 될까. 그런 흐름 속에서, 올해 나의 화두는 자연스럽게 ‘유언(遺言)’이 되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삶은 하나의 역사이며, 그 모든 역사는 저마다의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고려 태조 왕건이 민족 통합이라는 통치 이념을 담아 ‘훈요십조 제8조’를 후대가 유지(遺志)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듯이, 세상의 부모들 또한 자식에게 전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가슴속에 깊이 새기고 살아간다.
개인의 역사가 후손에게 이어져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단다. 그것은 곧,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와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며, 이는 개인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은 국가의 역사뿐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 궤적에도 똑같이 중요하지 않겠니?
우선, 네 인생의 도반(道伴)을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도반이란 함께 도를 닦는 벗을 뜻하는데,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시나리오 작가로 성공하고자 하는 너의 꿈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 꿈을 함께 나누며 곁에서 격려하고 도와주는 배우자나 친구가 있어야 비로소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석 유영모 선생도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도반뿐이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셨지. 나는 사람을 보는 눈이 너무 어두웠고, 그로 인해 내 삶은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너는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고, 그 관계를 이어 나가게 될 것이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라는 말처럼,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크게 달라진다. 특히 머지않아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선택해야 하는 너에게,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에 관해 이야기해 주고 싶다.
우선, 세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이치나 가치보다는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을 이해했으면 한다. 누구든 이익 앞에서는 가치와 명분을 쉽게 저버릴 수 있으며, 이러한 행태가 반복되는 것이 바로 세상살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이 본질을 이해해야만 타인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고, 이 험난한 세상을 견뎌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평생의 배우자로 만나야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강상원 박사의 의견을 참고하여 그 기준을 네 가지 덕목으로 정리해 보았다.
1. 신(信) – 믿을 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은 믿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지킬 수 없는 약속은 애초에 하지 않는 사람은 더욱 믿을 수 있다.
2. 언(言) – 말씀 언
말을 잘하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은 말이 논리적이며, 불필요한 시비에 끼어들지 않는다.
3. 서(書) – 쓸 서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려 깊은 사람이다. 독서는 사고의 깊이를 키우고,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4. 판(判) – 판가름할 판
판이란 문리(文理), 즉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판단력을 뜻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나 올바른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
이 네 가지 덕목과 거리가 먼 사람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아쉬울 때는 도움을 받기 위해 큰 소리로 칭찬하고 아부하다가,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돌변하여 적대하거나 협박하기도 한다. 나는 육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런 사람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사람들과는 과감하게 관계를 끊어야 한다. 그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길이다.
아버지로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너의 건강이다. 몸과 마음은 따로가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몸이 망가지면 마음도 제 기능을 할 수 없고, 결국 인간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워진다. 모든 병의 근원은 피가 맑지 못해서 생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김수경 박사는 피를 나쁘게 만드는 네 가지 요인을 인지하고 이를 예방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강조한다. 나 역시 그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 네 가지 요인은 다음과 같다.
1. 음식 – 서구화된 식습관과 즉석 음식의 과도한 섭취
2. 독소 – 농약이나 각종 화학약품에 노출되는 환경
3. 두려운 감정 – 과도한 경쟁과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적 불안
4. 추위 – 에어컨, 얼음음료 등 냉기 중심의 생활문화
피를 맑게 유지하고, 과도한 음식 섭취로 인해 발생하는 활성산소를 줄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생식이다. 생식은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저장한 태양 에너지를 직접 섭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평생 건강은 지금부터 준비하고 실천해야 한다. 하루 한 끼는 생식이나 발효식품을 섭취하는 습관을 들이길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세째, 너의 창작력을 높이기 위해 한문 공부를 꾸준히 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풍부한 어휘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인데, 창의력을 키우는 데에도 다양한 어휘를 익히는 공부는 큰 도움이 된다. 특히 한자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상상력과 사고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될 수 있다. 더불어 한문과 영어를 함께 공부하면 언어적 감각과 표현력이 배가된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두 언어를 병행하는 학습이 너의 창작 활동에 좋은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민주적인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존 달버그 액턴(1834~1902) 남작이 남긴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Power tends to corrupt,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는 말은 단지 국가기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 집단은 물론, 가정이라는 가장 작은 공동체에도 그대로 통용되는 만고의 진리다. 독선적인 부모 아래에서 자란 자식들 가운데 도덕성을 잃고 패륜적인 삶을 살아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들은 때로 부모의 권위에 맹목적으로 순응하거나, 반대로 극단적인 반발로 불행한 삶을 이어가기도 한다. 이런 사례를 통해 우리는 가정 내에서도 구성원 각자의 의견과 결정권이 존중받는 민주적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너 역시 앞으로 가정을 이루게 될 때,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함께 결정하는 민주적인 가정을, 만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인생은 절대 순탄치만은 않은 여정이다. 때로는 뜻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오고, 사람에게 실망하거나,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을 견디며 마음의 평화를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장이며, 결국엔 그 길 끝에서 너의 꿈도 이루어질 것이다.
삶은 혼자서 완성할 수 없는 이야기다. 좋은 도반을 만나고, 바른 사람을 곁에 두며,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가꾸고, 언어와 사유의 깊이를 더해가며, 가정이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민주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모든 것이 너의 삶을 더욱 단단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줄 것이다. 아버지는 언제나 너를 믿고, 너의 앞날을 응원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너의 삶이 더욱 깊고 넓어지기를,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너 자신을 잃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18년 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