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정식적으로 부부관계를 맺음
결혼 ; 남녀가 정식적으로 부부관계를 맺음
사전적 의미로는 딱 한 줄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굳이 '결혼'이라는 단어는 해석이 필요하지도 않은 단어 입니다만, 동물 세계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아니, 뭐 자연스러운 본능을 저렇게 복잡하게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살아 보면 너무나 복잡하고 너무나 오묘해서 쉽게 정의 내리지 못하는 단어도 바로 '결혼' 이죠.
저에게는 거의 매일 이런 어려운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당신, 결혼하세요?
그녀는 임신했다고 했어요.
임신 한지는 두 달이 조금 넘었고 웨딩 촬영을 임신한 티 나지 않게 빨리 진행해야 하고, 결혼식도 최대한 빨리 잡아서 치르려는 서두름이 눈에 보였습니다.
이런 경우,
업자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손님이에요. 결혼 준비 기간이 짧다는 것은 그만큼 서비스 기간이 짧은 것이고 의례히 이렇게 급한 결혼식은 비용적인 부분도 많이 고려하지 않기에 여러 면에서 놓치면 아까운 손님이랍니다.
그녀에게 물었어요.
웨딩 촬영은 어디에서 하고 싶은지. 언제 하고 싶은지. 어떤 드레스를 원하는지.
상담 시간이 좋은 분위기, 신나는 분위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 강해져 오는 그날의 예감은 뭐였을까요?
맞아요.
전혀 분위기는 즐겁지 않았어요. 매출을 올리려는 나 자신만이 신나 있었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지요.
그제야 옆에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앉아있던 남자를 보게 되었어요.
'그래, 이 남자. 비협조적인 이 남자.'
결혼을 관통하는 수식적인 단어를 고르자면 '행복' 이겠지요?
'종족 번식을 위해'라고 답할 수 있었던 세대도 있었지만요. '대를 잇기 위해' 이 말이 바로 종족 번식을 위해라는 말을 애써 꾸며 놓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좋은 것도 행복하고, 같이 뭐 하는 것도 행복하고 그렇게 미치도록 행복 바라기가 되어 결국
"우리 행복하자!"가 결혼의 지상 최대의 약속이 됩니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두 사람은 예외로 두어야겠네요.
"계약금 내."
"돈 없는데?"
"그럼 가서 돈 찾아와."
신용카드를 갖고 오지 않았다고 계좌 이체 어플을 깔지 않았다고 직접 ATM기에 다녀와야 한다네요.
툴툴 거리며 그가 나갑니다.
단 둘이 남고 그녀의 짧은 한숨이 내 가슴을 때립니다.
"얼마나 사귀었나요?"
물으면 실례일 수 있지만, 그냥 나도 모르게 나온 질문이에요.
"몇 달 안 돼요."
"아... 네."
이때 그 남자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수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야, 통장에 500원이 다야. 그냥 집어치워."
"기다려봐. 다시 전화할게."
그녀가 급하게 통화를 종료하고 저에게 말합니다.
"계약금은 내일 드려도 될까요?"
저는 그녀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계약금은 내일 하셔도 돼요. 그리고 이 계약도 무기한 연기하셔도 돼요. 그리고 결혼도 많이 생각해 보셔도 되고요.'
미쳤나 봅니다.
다른 사람 결혼 여부를 무슨 오지랖으로 이 지랄.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그녀. 내가 지금 결혼준비하는 업체 온 거 맞아? 하는 그런 눈빛
아니면, 주제넘게 꼴값 떠네? 이 눈빛이었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에게 다시 말해봅니다.
'부모님과도 다시 한번 아니, 여러 번 상의해 보시고요. 정말 천천히 뭐 웨딩 촬영... 음.. 결혼? 뭐 많잖아요. 그런 거 저런 거 많이 생각하셔야 해요. 신부님?'
무슨 말인지 모르고 계속 떠들었어요.
그녀는 다음날 전화를 주고 계약금을 넣었답니다.
"아...."
오지랖 그만 떨고 돈이나 벌어.
그렇게 그녀와 그 남자의 결혼준비를 함께 하게 되었어요.
수많은 결혼 준비하는 커플의 여러 모습을 보면서 '이 두 사람은 참 잘 어울리네.' '알콩달콩 잘 살 것 같네.' '에이 신랑 참 속이 좁네.' '여자가 좀 과장이 심한 사람이네.' 등등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 특성상 본의 아니게 우리끼리는 이런 이야기들 많이 한답니다.
간혹. 아주 간혹 말이에요.
'왜 결혼하려고 하는 거지?'
이런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게 하는 커플이 있어요. '당신들이 그 사람들의 전부를 알아?'라고 물으신다면 당연히 '아니요.'라고 대답하겠지만, 우리 모두 드라마 볼 때 악역, 선한 역 나눠 볼 수도 있고, 감정 이입도 쉽게 하시잖아요? 네. 바로 그런 거예요.
그냥 저의 단순한 [사람 읽기] 에요.
그러니, 계약금 이후에는 더 이상 그들의 행복을 생각하지도 걱정할 필요도 없답니다.
시간이 흘러 웨딩 촬영날이 되었어요.
보통 신부는 메이크업과 헤어를 준비하는데 1시간 반이 넘게 걸리고 신랑은 30분이면 충분하답니다.
결혼 준비는 신부의 놀이이니, 관심도 노력도 신부에게 더 많이 쏟아부어야겠죠?
"아니, 전 벌써 끝난 건가요?"
"더 만지고 싶은 부분이 있으실까요?"
"쟤는 저렇게 오래 하고 있는데 난 대충 한 거 아닙니까?"
직원과 신랑의 대화를 들으면서 상담 왔던 그날이 다시 떠오릅니다.
'이기적인 놈.'
그래 맞아. 그 남자였지. 오늘이 세 번째 만남인데 그 남자에게는 매번 새로운 나쁜 별칭만 붙습니다.
두 번째 만남은 촬영 웨딩드레스 고르는 날이었는데 커튼이 열리고 신부가 어색하게 서 있어도 이쁘다. 괜찮네. 한 마디 없이 쓱 한번 보고 스마트폰 게임이나 하고 있는
'재수 없는 놈.'
다행히.
정말 다행히.
이 커플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웨딩 촬영이 끝난 다음 날. 신부에게서 밝은 목소리로 전화가 왔습니다.
'저 예약 취소하려고요. 파혼하기로 했거든요.'
그녀의 밝은 목소리는 어쩌면 스스로도 움켜쥐고 내려놓지 못하고 있던 불확신으로부터 해방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웨딩 촬영 날은 긴 시간 그들을 바라볼 수 있는 날입니다.
역시나 그의 배려는 어디에도 볼 수 없었고, 함께 출장 다녀온 직원은 '신부 너무 불쌍해요.' 몇 번을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 '파혼'의 결과를 알려주었을 때,
그녀의 행복을 응원했습니다.
그녀도 알고 있었겠죠. 이 남자와는 힘든 결혼 생활이 될 것을...
뱃속의 아이 때문에 극복하고 싶었나 봅니다. 어떻게든 이겨 보려고 했었는데 남들은 즐겁게 하는 웨딩 촬영마저 자신에게는 그냥 절차일 뿐이구나. 하는 생각에 슬펐다고 합니다.
아이는 어떻게?라는 궁금함이 있었지만, 그녀와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지. 나아지겠지. 함께 극복해야지. 이런 다짐은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사이에서도 힘든 이야기일 수 있죠.
오래된 부부에게 어떤 공감대가 있느냐고 여쭤봅니다.
정. 의리. 사랑. 연민.
이제 결혼을 앞둔 당신께 질문하나 해봅니다.
사과 바구니에서 사과를 하나 짚으세요. 썩은 것도 있고, 달지 않은 것도 있답니다.
아직은 먹기 전이니 먹기 싫으시면 다시 내려놓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