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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 Apr 17. 2024

'운명은 정해진 것 같아.' 말에 가슴이 아렸습니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가게 앞이 논, 밭이 있는 곳에서 카센터를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자주는 못 보더라도 매년 명절이면 꾸준하게 보던 친구들이 몇 명 있었는데

자식이 대학을 제대로 못 갔거나,

염원하던 교수직에서 잘려 나갔거나,

돈벌이가 시원찮아 금전적으로 힘들어지거나,

그냥 갑자기 별 이유 없이 모임에 한두 번 안 나오다가 이제 연락도 안 하거나

등, 등, 

별 시답지도 않고,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들로 조금씩 멀어지고 이제 그나마 취미가 비슷한 친구들만 만나게 되더군요.

저는 골프를 좋아해서 골프를 즐기는 친구를 자주 만나게 되고,


또 조금 더 지나 보니 종교에 빠져 억지로 전도하려던 친구보다 정치적으로 너무 깊게 빠져있는 친구 상대하는 게 더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나 스스로 옭아매는 편협된 생각이 많아지면서, 만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생겨나니, 참으로 인연을 잇기가 더 어려워짐을 느낍니다.




그중에 이 친구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취미도 같이 하지 않을뿐더러 공통점을 찾을게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을 존중하고 존경하기에 그 무엇보다 우선이 되어 온 녀석입니다. 


그가 첫 월급을 타서 돈가스를 사주었던 적이 있습니다. 돈 없는 게 낭만인 것 같은 대학시절을 신나게 보낼 때 당시 너무 비싸 특별한 날에만 먹게 되는 그 귀한 음식을 말입니다.



이 녀석은 어머니가 중학교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여동생을 위해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산업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날. 맛나게 먹었던 그 돈가스의 값어치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나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맛나게만 와구와구 먹었던 제가 정말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지금이야 컴퓨터가 쉽게 연결 장면 만들어 내지만, 예전에는 애니메이션을 구현하자면, 한 컷 한 컷 그려서 만화영화를 만들었죠. 그 이어지는 그림 한 장 그리는데 400원이었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돈가스를 같이 먹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밥 먹고 왔다고 그냥 너 첫 월급 탄 기념으로 돈가스 사주고 싶어서 불러낸 것이라 했습니다.

그럴 리가요...




엊그제 시시콜콜한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냅니다.


"나는 종교도 없고, 무당도 싫고, 유교도 싫고 뭔가에 기대고 비는 게 싫은 놈인데 운명은 믿어지더라."

"그게 무슨 말이야?"

"그니까.. 사람은 그냥 자기 운명을 타고나나 봐. 어쩔 수 없는 거... 그냥 난 뭐가 안되더라."

"운이 안따르는 걸 말하는 거야?"

"아니, 어쩔 수 없는 거 있잖아. 아무리 해도 그냥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


가슴이 너무 아렸습니다.


제가 수입차를 구입하기 전까지는 그 친구 카센터가 먼 거리 지방에 있는데도 무조건 차를 끌고 갔습니다.

뭐가 되었든 가격은 물어본 적 없고, 얼마라고 그러면 카드 수수료 나가면 안 되니까 현금으로 주고 싶은데 돈을 건네는 그 상황이 싫어서 온라인으로 대금을 지불했습니다.



녀석의 집은 서울입니다. 애들 교육에 좋다고 무리해서 서울에 있습니다.

카센터는 오산보다도 조금 더 멀리 있습니다.

출퇴근만 4시간 가까이 잡아야 합니다.

돈이 부족하니 누군가 거의 버리고 가다시피 한 카센터를 인수했습니다.

그전에 죽어라 일해줬던 공업사 이야기도 한가득이긴 하지만, 다음 기회가 되면...

결국 급하게 빨리 피해 나오느라 조금 나쁜 선택을 하게 된 거죠.

그래도 오픈하고 그 세월이 벌써 9년이 넘었네요.


결혼 전에는 아버지가 책임져야 하는 가정을 그 녀석이 책임졌고,

아버지의 치매 병간호를 또 수년.

결혼해서는 또다시 자녀를 위한다고 그 먼 거리의 고행을 하는 노력 하는데 나아지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치열하게 살고, 나름의 희생을 하며 산다고 말할 수 있을 수 있겠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누구를 대신하여 희생하며 산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녀석을 수십 년간 보면서 드는 생각은 '희생' 밖에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운명은 외부에서 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의 게으름, 약한 마음, 급한 마음, 선택의 우유부단함, 선택의 오류 등등으로 인한 나의 내면과 결정에 의한 것이지 누군가로부터 작동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언과 이야기는 2,30대에게 가능한 이론적 위로이더라고요.

지금 50이 넘어서 이루어 놓은 게 없다고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 이 시기에 이런 뜬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는 어쩌면 더욱더 과거에 대한 회한의 상념으로 이끌 것 같았습니다.


대학 때 좋아했던 노래가 Old and wise - Alan Parsons Project 가 있었습니다. 

늙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현명해지는 것이라고 늙음을 오히려 멋진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준 노래입니다.


다음 주에는 시간을 내어서 한 번 밖으로 데리고 나가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차 안에서 Old and wise를 우연히 틀면서 아래의 가사가 나오면 이런 뜻이야.라고 이야기 해주어야겠습니다.

when I'm old and wise

Bitter words mean little to me

Autumn winds will blow right through me

내가 늙고 조금 더 현명해져 세상을 깨닫게 되면

쓰라린 말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고

가을바람처럼 내 곁을 스쳐 지나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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