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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산행-내장산 6봉

추령고개 넘어 백양사까지 둘러보는 센스!

by 화수분

일요일(2025.11.23) 아침, 지난주에 못 가 아쉬웠던 내장산에 가기로 맘먹었다.

사실은, 함께 모악산에 가기로 한 소영이가 컨디션 저하로 산행을 못한다 해서 나 혼자 드라이브 삼아 가볍게 다녀오기로 한 거다.


아침 6시에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평소에 수면의 질이 좋지 않은 나는 한두 시간마다 잠을 깨기 때문에 아침 일찍 침대에서 나오기가 힘든 편이다. 그런데 내장산이 그리웠던지 그날은 자연스럽게 침대를 버렸다.


사과하나를 먹기 좋게 자르고 방울토마토 스무 알을 꼭지 따서 씻었다.

간식으로 먹을 과일을 지퍼백에 담고, 산에 갈 채비를 했다.

흰색 여름용 배낭에 이것저것 담아 조수석에 던져놓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 달달한 커피를 2+2로 횡재하고, 물은 사지 않았다.

산행을 세게 할 것도 아니고 과일이 넉넉하니까 물까지 필요하랴 했다.

8시 30분에 내장산 케이블카 주차장까지 막힘없이 주행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어림없었겠지." 생각했다.

단풍은 많이 아쉬웠지만 주차장이 안쪽까지 오픈돼 있어서 좋았다.

파장분위기가 좀 났어도, 아직 눈부신 단풍나무가 더러 나를 반겼다.


케이블카 티켓을 왕복으로 끊어 타고 올라갔다.

몇 분 안 되는 짧은 거리를 올라갈 때 감나무만 유난히 예뻤다.

잎은 다 떨어지고 붉은 진주 같이 가지에 매달린 작은 감들이 아침 햇살에 반짝거렸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300m만 걸으면 전망대가 있다고 이정표가 서있다.

케이블카에서 내린 모든 사람들이 그 길로 간다.

나도 10분을 걸어서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 직전에 상가 한 채가있는데, 난 그 집 옥상이 전망대인 줄 알았다.

기념품, 파전, 인삼 튀김, 막걸리를 파는 가게 앞을 지나 높은 계단을 올라야 전망대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내장사, 우화정, 서래봉, 벽련암과 여러 산봉우리가 아늑하게 나를 감쌌다.

단풍피크일 때 우화정-사진 네이버블로그


아무래도 안 되겠다.

산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도시락은 없지만 간식도 있고 커피도 한 캔 있고 신발도 등산화니까 봉우리로 한 번 가보자.


일단 내장사로 걸어 내려가서

원적암~불출봉까지 가보고 또 맘먹어보자.

전망대에서 내장사까지 1km, 원적암을 거쳐 불출봉까지 2.1km를 걸었다.


옛 생각이 났다.

30년이나 지나간 세월이 참으로 허망했다.

청춘시절에 다니던 이 길을 혼자서 묵묵히 올랐다.

숨이 팍팍해지면 한 번씩 뒤돌아 건너편 산봉우리를 그윽이 보았다.

세월이, 잠깐 숨 고르며 뒤돌아보는 이 순간만큼 빠르게 가버린 것 같다.


대여섯 명의 산객들과 불출봉에서 엇갈렸다.

일요일인데도 철 늦은 단풍손님들 외에 등산객들이 많지는 않다.

어차피 능선에 올라섰는데 여기서 하산하기는 싫었다.

시간도 넉넉하고 날씨도 좋다.


내장산은 내장사를 중심으로 8개의 봉우리가 환형으로 이어진 등산로를 갖추고 있다.

하루에 8 개봉을 완주해도 무리가 없지만 난 오늘 완주를 목표로 온 게 아니니까

6 개봉을 걷고 마지막엔 케이블카로 내려가기로 맘먹었다.

전망대, 내장사 대웅전, 산중카페 간판, 원적암 스님의 털신, 산행 중 수시로 만나는 나무계단


불출봉에서 망해봉~연지봉~까치봉까지는 하산길이 없다.

망해봉에서 아저씨 두 분을 만나 한 팀이 되었다.

사진을 찍어 주고 말을 주고받다가 전주에서 왔다며 반가워라 하고 같이 걷게 됐다.


두 시간 정도 걸려 까치봉에 닿았다.

점심 도시락이 없으니 간식이라도 먹어야겠는데 아저씨들이 밥 먹을 생각을 안 한다.

조금 더 가서 적당한 곳에서 쉬려고

"도시락 안 드세요?"

물었더니 자기들은 불출봉에 올라오다가 원적암터에서 미리 먹었다고 했다.

"에휴!"

나는 밥도 없는데 과일을 나누어 먹었다.

커피는 한 캔을 나 혼자 다 마셨다.


아저씨들은 까치봉에서 하산할 계획으로 왔는데 중간에 계획을 바꿔,

나와 같이 신선봉을 거쳐 연자봉까지 가겠다고 했다.

도움이 안 되는 아저씨들과 멀어졌다 만났다를 거듭하며 신선봉(763m)에 도착했다.


난 약간씩 다리에 쥐가 났다.

아마도 밥을 안 먹고 물도 안 먹고 커피를 마셔서 전해질 불균형이 온 것 같았다.

하산길 2.5km 정도만 남았기 때문에 크게 걱정은 안 됐다.


계단지옥을 올라 연자봉을 거쳐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해서 물부터 사서 마셨다.

아저씨들과는 헤어졌다.

난 케이블카로, 그들은 걸어서 내려갔다.


하산 시간은 오후 2시.

오후 4시에 라인댄스 종강발표회 연습이 있는데 온몸이 땀에 젖어 심란하다.

집에 들러 씻고 밥 먹고 갈려면 어차피 늦는다.

부득이 약속에 못 간다고 톡을 보내고 난 추령고개를 넘어 백암산 백양사로 향했다.



한 시간 걸려 추령 단풍고개를 넘어 백양사로 이동했다.

백양사는 <내장산 국립공원 지구> 내, 백암산에 있는 절이다.

역시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절이다.


오후 서너 시가 넘었는데도 내장사 구역보다 관광객이 많다.

단풍과 계곡물이 어우러진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절입구 진입로에서 군것질거리를 팔고 있는데 줄이 길어서

"이따가 나올 때 사 먹어야지." 하고 부지런히 걸었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나이 든 갈참나무들이 사천왕같이 즐비하게 진입로를 지키고 서있다.

그중에는 실제로 인근 동네에서 당산제를 지내주는 당산할아버지 나무도 있었다.


고불(古佛) 박물관에 들러서 백양사와 인연이 있는 옛 부처상과 고승들의 유적들을 둘러보고

단풍길을 걸었다.

아기부터 노인들까지 여유롭게 걷고 쉬는데 나 혼자 바쁘게 사진 찍고 팔딱거리는 것 같아서 공연히 눈치가 보였다.


백양사의 유명한 누각 <쌍계루> 주변은 과연 사람들로 붐볐다.

앞계곡물에 함께 비치는 쌍계루와 백학봉이, 징검다리에 머무는 내 발길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눈앞의 절경을 사진에 다 담을 수도 없고, 기억 속에 다 저장할 수도 없다.

다만 이 순간의 바람과 물결을 느끼는 감성으로 내 마음의 빗장을 오래도록 열어두고 싶다.


다시 되돌아 나오는 진입로, 아직도 호떡집의 줄이 길다.

절구경 내내

"뜨거운 호떡하나 종이컵에 담아 들고 차에 타야지."

하는 기대로 허기를 버텼는데.....

몹시 서운한 마음으로 호떡 먹는 사람들한테 눈을 흘기며 차에 올랐다.


집으로 오는 길.

계속 생각했다.

무얼 먹어야 섭섭한 마음과 허기를 만족시킬 수 있나?

동네 마트에 들러서 수육거리를 샀다.

차조를 얹어 밥을 안치고, 월계수잎 띄워 수육용 고기를 압력솥에 안치고, 샤워를 마쳤다.


각종 쌈채소를 한소쿠리 씻고 단출하게 상을 봤다.

뜨신 밥, 북어뭇국, 뜨끈한 수육, 한~쌈 싸서,

싸~한 맥주 몇 모금 벌컥벌컥 마시고,

한입에 우적우적 배불리 먹고 죄책감 1도 없이 일찍 잤다.

안전귀가 후 급히 차린 반주 곁들이 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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