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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살아온 것들

by 박필우입니다




나에겐 잊지 못할 것들이 산재해 있다.


빛깔로 보면,

해 질 무렵의 석양이 그러하고,

또 어린 시절 비 온 뒤에 총총히 박혀있는 물기 먹은 빨간 앵두가

어머니가 매년 담그던 능금술의 빛깔과 함께 남아 있다.


색깔로 보면,

우리 어머니 한숨과 함께 恨을 담은 황토색이 그러하고,

푸르름에 물든 신록예찬의 녹색과 함께 야외스케치에서 가슴 뛰게 하던 만추의 색깔도 있다.


향기로 치면,

울 아버님 사랑방 구들장 냄새와 곰방대에서 묻어 나오는 찐 냄새를

담배연기를 맡을 때마다 느끼며 기억을 더듬는 지도 모른다.


머리에 담아 두진 못해도 가슴이 기억하고 있으니 그리 불편할 것도 없지만,

여전히 감수성이 예민한 그때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만 보고 달려도 모자랄 판국인데 자꾸만 옆과 뒤를 돌아다보는 것은

약한 의지를 감당 못 한 발버둥이라는 생각이다.



유화물감으로 그린 첫 작품(1983년), 이후 그림을 그만 두었다. 세상에 나와 보니 세상에나!!! 말 그래도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더라.' 내가 가장 잘 한 것이 있다면, 담배


*

며칠 전 우연히 어지럽혀진 창고를 정리하다가

내동댕이쳐져 있는 유화 하나 찾았다.

순간 물감 냄새가 코를 찌르는 착각에

가슴이 쿵!!!


아, 이 냄새를 잊고 살았구나!

여전히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유난히 황토색이 많음에 어머니 생각까지 겹쳤다.


아직도 발걸음 않고 있는, 나와 너무나 먼 세계.

생전의 한을 다 어찌 풀려 하는지….

심장에 부채질만 하지 말았으면….


인간의 탐욕은 도미노와 같은 것!

욕심은 버리라고 있는 것!


간단하게 시작할 수 있지만 절대로 멈출 수 없고,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순식간에 무너트릴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지.


상실에 대한 회상, 추억에 대한 회심

이로서 만족하리다.


(2006)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왔습니다.

제 글벗님들 잘 계셨나요?

작가님들 방에 들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요^^*..



* 그림도 글도 오래된 것 찾아 올립니다.

오늘이 첫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 입니다.

낮에는 쾌청한 날이 지속되고, 밤이면 급격하게 기온이 내려가

땅에서 수증기가 엉기며 서리가 된다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머리에 내린 서리가 이젠 백설로 바뀐지 오래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이룬 것 하나 없는 인생에서 후회 뿐이라면

참 못난 삶이지요.

인간이 죽을 때가 되어 후회하는 거 만큼 안타까운 게 또 있을까 합니다.

오늘 오후, 강바람이나 쐬러 가야 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막걸리 한 잔 할 수 있었으면 더없는 오늘로 생각하렵니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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