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공부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시간은 살과 같이 빠르고 유수와 같이 흘러간다.
1970년대의 서울거리와 2023년의 서울 거리를 비교해 본다면 그 외형의 변화가 상전벽해가 따로 없을 것이다. 53년의 시간은 너무도 많은 것을 바꾸어 놓고 생활을 변화시켰다.
그런데 이 긴긴 시간 동안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새우과자나 쵸코과자 같은 대표적 스낵류 몇 가지와 수학시험문제이다. 역사나 영어 문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형식과 중심 내용이 조금씩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유독 수학은 그 내용도 , 시험문제도, 가르치는 방법도 심지어 공부하는 자세까지 거의 동일하다
수학이 변하지 않았다는 명확한 증거로 ‘수학의 정석’ 시리즈를 들 수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수학 참고서가 무수히 많이 출판되고 디자인이나 포맷이 다양하게 바뀌어 왔지만 1966년에 초판이 발행된 ‘수학의 정석’ 시리즈는 책 표지와 형태만 약간 바뀌었을 뿐 내용은 거의 동일하고 지금도 수학 참고서 판매의 상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교육과정은 몇 차례나 개정되어서 미적분이 문과 과정에 들어왔다 나갔다 다시 들어오고, 행렬이 들어왔다 아주 나가고, 집합이 중학교 갔다가 고등학교로 다시 오고, 통계가 기본 과정에 있다 선택과정으로 가고, 기하와 벡터가 수능 과목이었다가 선택과목으로 바뀌고... 무수한 변화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정석시리즈는 건재하다. ‘수학의 정석’ 시리즈가 굳건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수학교과의 학습 목표와 내용 그리고 기본 콘텐츠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BTS 가 신곡 발표의 무대를 현실세계가 아닌 ‘메타버스’인 가상의 공간에서 하는 세상,
코로나19가 촉발시킨 비대면 방식이 원격수업이나 가상현실 같은 ICT 관련 분야를 발전시키고, 가까이 있지 않아도 현실처럼 수업이 이루어지는 ‘초현실’의 시대 속에서도, 수학은 칠판과 분필만 있어도 수업이 이루어지고, 연필과 노트만 있으면 공부가 가능한, 그 외형적 모습과 내재적 과정에서 변화가 없다.
우리의 수학이 자칫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한 내용을 공부하는 것은 아닐까?
초, 중, 고 12년 동안 배우는 수학은 자연수부터 미적분까지 그 내용은 명징하고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흘러도 그 내용이 그다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내용은 전 세계가 거의 동일하다.
수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우리들이 그 본질적 의미를 훼파하고 시험이라는 틀에 맞추다 보니 논리적 정연함을 왜곡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본질적으로 수학은 도구적인 과목이고 이성과 논리를 증진시키는 과목이다. 인류 공통의 기호화된 내용을 세계의 모든 청소년들이 동일하게 공부하면서 논리체계와 알고리즘을 습득한다는 것이 경이롭다. 인도-아라비아 숫자는 유일한 세계의 보편 언어이다. 이것을 이용한 수의 연산과 해석, 그래프 등도 거의 보편적인 공통언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은 ‘호모사피엔스’의 기본적인 논리 과정과 의식의 흐름을 나타내고 그 결괏값을 증명하면서 텍스트의 해석, 이해 능력에 따른 ‘문해력’의 깊이를 더 하게 만든다.
이런 지적 유희와 사고의 도구과목인 수학이 왜 기피과목이 되고 수포자만 양성하는 괴로운 과목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분명하다 학습의 목표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지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는 시험이 끝나고 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의 수학이 대입을 위한 준비로 그친다면 그 공부는 대입시험이 끝나는 순간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한시적인 지식은 의미가 없다. 의미가 없기 때문에 즐길 수가 없고, 즐길 수가 없기 때문에 싫어지는 것이다. 싫어지니 포기하고 진저리를 치는 것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의 수학 공부 방향은 ‘교양수학’,‘생활수학’이 되어야 한다.
‘사칙연산만 할 수 있으면 되지 수학을 왜 공부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하는 학생들에게 분명히 알려주어야 한다.
수학은 우리의 논리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이고, 수학적 문제 풀이 과정은 생각을 정리하고 정제된 표현으로 그 결과를 예측, 확인하는 ‘생각의 검증 과정’ 임을, 그리고 다른 과목 공부나 독서를 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맥락을 이해’ 하고 객관적으로 나열되는 사실들을 ‘스스로의 지식’으로 만드는 핵심능력인 ‘문해력’을 증진시킬 뿐 아니라 이해력의 바탕이 되는 ‘코어지능’을 키워주는 과목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빅테이터, 메타버스, 인공지능, 감성로봇의 시대이다. 거의 무한대로 실시간 쏟아져 나오는 지식과 정보를 해석하고 나만의 분석력으로 정보화할 수 있는 ‘콘텐츠 자기화’가 필요하다
김정운 교수는 그의 저서 ‘에디톨로지’에서 이런 능력을 ‘지식의 편집능력’이라고 하고 이러한 능력이 지금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라고 얘기한다. 같은 맥락으로 김성태 교수는 ‘데이톨로지’에서 무수히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제하여 나만의 언어로 만들 수 있는 능력, 알파고를 이길 수 있었던 이세돌 구단의 ‘결정적 한수’와 같은 능력이 지금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의 수학공부는 ‘매쓰톨로지’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수학이 역사와 도표 속에, 교과서 안에서만 존재하는 숫자놀음이 아니라 발명도 아니고 발견도 아닌 수학이 생성되어 온 역사를 이해하고 그 어원의 의미를 파악하며, 거기서 파생되는 생활 속의 수학 문제를 깊이 생각하면서 창의적 문제해결력을 높이는 실질적인 생활수학이 되어야 한다.
또한, 도구적인 과목인 수학의 알고리즘을 통한 과학, 사회, 영어, 국어, 한자 등 다른 과목과의 연계고리를 찾는 ‘큰 맥락’으로 이해하고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교육 사교육을 떠나서 수학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매쓰톨로지’ 적인 사고 과정과 응용이 필요하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그래서 앞으로의 수학은 ‘생활수학’이고 ‘교양수학’,‘상식수학’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 따른 수학 공부의 ‘매쓰톨로지’적인 이야기를 전개할 예정이다.
‘기하(幾何)’는 왜 도형을 다루는 과목을 지칭할까? 기하를 처음 공부하면서 신문물을 기필코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한 ‘양주동’ 박사의 이야기. 유리수와 무리수란 용어에 살인도 불사한 피타고라스 학파의 숨은 이야기. 나노미터란 단위와 ‘청정’중 더 작은 단위는 무엇이며 큰 수를 나타내는 용어가 동양권에 더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분수’를 나타내는 fraction의 의미를 생각하면 그 뜻이 명확해지고 , 소수(素數)와 소~수(小數)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좌표평면의 원리가 적용된 ‘위도, 경도’를 이해하면 날씨권과 시간의 개념을 이해하게 되고 또한 표준시가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였는지를 생각하면 그 당시 전 세계적인 패권국가가 로마나 미국이 아닌 영국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수의 발전은 역사와 연결되고 역사는 문화로 나타난다. 문화는 언어 속에 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수학이나 공학의 많은 용어가 아랍어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보면 수학, 과학이 먼저 발전된 지역이 아랍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고 그 흐름이 유럽을 거쳐 미국을 거쳐 중국과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의 수학 용어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소하고 낯선 용어들의 원의미를 알 수 있다.
수학은 숫자(數)만 다루는 과목이 아니다
修學능력을 키우는 과목이다.
아무쪽록 우리의 수학공부 방향성을 다시 한번 재정립하고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