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이쌤 Aug 22. 2023

기하 (幾何)는 무엇을 배우는 겁니까?

기하는 도형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논리와 증명, 앎의 과정을 배운다.


유클리드의 원론 일부

         

전설에 의하면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 입구 현판에 아래 문구가 기록되었다고 한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문으로 들어오지 말아라.”

“Let None But Geometers Enter Here.”

“ἀγεωμέτρητος μεσίτω.”     

     


유클리드와 그의 제자 사이의 유명한 일화도 있다.

유클리드에게서 기하학을 배우고 있던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선생님, 이토록 지겹고 쓸모가 없어 보이는 학문을 대체 뭣하러 가르치고 배우는 것입니까?” 유클리드가 노발대발하며 “배운 것에서 꼭 본전을 찾으려고 하는 놈에게 학문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저 자에게 동전이나 몇 푼 던져주어 쫓아버려라.”라고 하였다     

또한 [원론]으로 기하학을 공부하던 이집트의 첫 번째 왕인 프톨레미 소테르 1세가 [원론]의 내용을 너무 어려워 하자 유클리드가 왕에게

 "폐하,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Sire, there is no royal road to geometry.)“라고 한 말도 있다.      

도대체 기하 (geometry)는 무엇을 공부하는 과목이길 때 고대로부터 이렇게 중요하게 여겨졌을까?

전 세계의 최고 베스트셀러인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고 출간되었다는 ‘유클리트의 원론’은 어떤 내용이었을까?      

중학교 수학은 대체적으로 1학기 대수, 2학기 기하로 나누어져 있다. 대수(代數)는 Algebra라고 하는 수학의 한 부분인데 영어 algebra의 어원은 중세 아라비아의 수학자 알콰리즈미의 저서 《쟈부르와 무가바라의 산법의 적요의 글 (al-Kitab al-mukhtasarfi hisab al-jabr wa-al-mu-qabalah)》의 「얄자부르」에서 유래하며, 방정식(方程式)의 이항을 의미한다.  간단히 말해서 수대신 문자를 사용한 식(式)을 다루는 과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2학기때는 기하(幾何)를 주로 공부하는데 기하는 도형을 다루는 과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하학은 점, 선, 면, 도형, 공간등을 공부하고, 공간에 있는 도형의 성질, 그리고 그 대상들의 치수, 모양, 상대적 위치등을 연구한다

기하는 영어 geometry를 해석한 것인데, 라틴어 geometria에서 왔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어 γεωμετρία(게메트리아)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는 땅을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 γε(게)와 측정하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 μετρία(메트리아)를 합하여 만든 말이다.

결국 영어의 geo는 ‘땅, 지구’를 뜻하고 metria는 ‘측정하다’의 의미인데 그 어원은 그리스어인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땅의 넓이에 비례해서 세금을 거둬들였는데, 나일강이 홍수로 인해 주기적으로 범람하고 이때마다 땅의 경계선이 지워져 구획을 다시 측정해야만 했다. 그래서 땅을 기준에 따라 다시 측정하는 과정에서 도형을 그리고 넓이를 계산하는 모든 과정이 필요했고  이것을 ‘geometry’라고 한다.  

이 지오메트리가 ‘기하’로 명명된 과정을 살펴보자.

중국에서는 어떤 외래어를 번역할 때 발음이 비슷한 글자 중 의미가 통하는 걸 사용하는데 기하학도 영어 Geometry(지오메트리)와 유사한 중국어 발음인 幾何(지허)라는 말로 표현했다. 얼마 기(幾)와 어찌 하(何)를 써서 ‘어떤 대상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어떻게 재서 구할 것이냐’라는 뜻이다. 즉, 기하라는 단어자체에는 도형이라는 의미는 없고 음차 하여 사용했다는 얘기가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 즈음 예수회가 이미 幾何란 단어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10종류의 범주 중의 하나로 양(量)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했고, 지금 수학으로 해석되는 mathematica를 幾何之学, 즉 ‘幾何의 도를 고찰하는 것’이란 뜻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애초에 유클리드의 원론을 기하원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마테오 리치와 서광계는 수학적인 양(길이, 각 등)을 따지는 학문이란 의미로 ‘기하학’ 단어로 번역을 했는데 그것이 명말청초 예수회에서 통용되었고 19세기 이후 지금의 도형을 다루는 수학의 한 분야를 지칭하는 것으로 고착되었다고 한다.      

기하의 원의미를 생각하며 파생되는 단어를 몇 가지 살펴보자. 수학의 용어는 그 원어를 생각하면 그 의미가 명확해지고 또한 영어 단어도 그 어원을 따져보면 파생되는 여러 단어들의 뜻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모든 공부는 개별이 아니다. 유기적인 관계이고 특히 어원과 개념을 연결 지어서 공부하면 그 의미가 확실해지기 때문에 공부의 방향성이 명확해진다.      

영어의 어근 geo- 는 그리스어(Greek) ge, gaia, gaias에서 유래했고 모두 '땅', '지구', 'earth'라는 기본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가이아(Gaia)는 그리스 신화에서 ‘땅의 여신’ 이름이다.      

geochronology  :  geo; 땅 + chrono; 시간+ logy(log); 말, 학문 ⇨ 지질 연대학, 지질 연대 결정

geography : geo; 땅, earth +  graph; 글, 쓰다, write +  y; 형용사 어미

 ⇨ ① 지리학 ② (한 지역의) 지리[지형] ③ (사회적) 지형도

geology : geo; 땅, earth + logy(log); 말, 학문

 ⇨ ① 지질학 ② (특정 지역의) 지질학적 기원[역사]

geopolitical : geo; 땅, earth + polit(polis); 도시, 시민, city + ical(ic); 형용사 어미

 ⇨지정학의, 지정학적인. (또는 geopolitic)

그리고,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돈다는 천동설은 geocentric theory이다. 즉 지구중심이론이고

이와 반대인 태양중심설인 지동설은 heliocentric theory이다  geo(땅, 지구)의 반대인 하늘이 helio이다     

'거인'을 뜻하는 영어 단어 '자이언트(giant)'의 어원도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에서 파생된다. 가이아의 자식 중에는 거대한 괴물인 '기가스(Gigas)'가 나온다. 이 기가스의 무리를 '기간테스(Gigantes)'라고 하였는데 표현이 변해 지금의 거인을 나타내는 '자이언트(giant)'라는 영어 단어가 되었다.

또한 미터법 단위 중 '10억 배'를 나타내는 접두어 '기가(giga)'도 이 표현에서 비롯되었다     


기하(幾何)에 관련된 한학자 양주동 박사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중학교의 첫 기하 시간이 다가오는데 기하 시간에 무엇을 배우는지 도무지 종 잡을 수가 없었다.  ‘기하’의 ‘幾’는 ‘몇’이란 뜻이요, ‘何’는 ‘어찌’란 뜻의 글자임이야 어찌 모르랴만, 이 두 글자로 이루어진 ‘기하’란 말의 뜻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기하’라? ‘몇 어찌’라니? “선생님, 대체 ‘기하’가 무슨 뜻입니까? ‘몇 어찌’라뇨?”

선생님께서는 영어의 ‘지오메트리(측지술)’를 중국 명나라 말기의 서광계가 중국어로 옮길 때, 이 말에서 ‘지오(땅)’를 따서 ‘지허(’ 기하‘의 중국음)’라 음역 한 것인데, 이를 우리는 우리 한자음을 따라 ‘기하’라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다음 기하시간 '맞꼭지각(대정각) 은 서로 같다'는 정리의 증명을 배웠을 때의 느낌을 그는 이렇게 쓴다.     

“두 곧은 막대기를 가위 모양으로 교차, 고정시켜 놓고 벌렸다 닫았다 하면, 아래위의 각이 서로 같을 것은 정한 이치인데, 무슨 다른 ‘증명’이 필요하겠습니까?”하고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허허 웃으시고는, 그건 비유지 증명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럼, 비유를 하지 않고 대정각이 같다는 걸 증명할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 음, 봐라.”

선생님께선 칠판에다 두 선분을 교차되게 긋고,

한 선분의 두 끝을 A와 B, 또 한 선분의 두 끈을 C와 D,

교차점을 O, 그리고… 각 AOC를 a,…각 COB를 b, …각 BOD를 c라 표시한 다음,

    나에게 질문을 해 가면서 칠판에다 식을 써 나가셨다.

“a+b는 몇 도?”

“180도입니다.”

“b+c도 180도이지?”

“예.”

“그럼, a+b=b+c이지?”

“예.”

“그러니까, a=c 아니냐.”

“예, 그런데, 어찌 됐다는 말씀이십니까?”

“잘 봐라, 어떻게 됐나.”

“아하!”

멋모르고 ", ." 하다 보니 어느덧 대정각(a와 c)이 같아져 있지 않은가!

그 놀라움, 그 신기함, 그 감격, 나는 그 과학적, 실증적 학풍 앞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면서,

내 조국의 모습이 눈앞에 퍼뜩 스쳐감을 놓칠 수 없었다.

현대 문명에 지각하여,

영문도 모르고 무슨 무슨 조약에다 ", ." 하고 도장만 찍다가,

드디어 "자 봐라, 어떻게 됐나."의 망국의 슬픔을 당한 내 조국!

오냐, 신학문을 배우리라. 나라를 찾으리라.

나는 그날 밤을 하얗게 새웠다.     

양주동 박사는 기하시간을 통해 논리의 명징함과 그것을 증명하는 것을 배우고 감탄하면서 기하를 비롯한 신학문을 열심히 배우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눈에 불을 켜고 학문하여 우리나라의 위대한 국어학자가 되었다.

기하는 도형과 측량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 논리를 배우고 그 과정을 익히며 지식의 체계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즉, '앎의 과정'을 배우고 공부하는 것이다. 수학이나 기하가 단순히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지적인 연마이고 ‘논리의 정연화’ 임을 생각하고 수학의 용어, 개념을 어원과 역사와 함께 공부한다면 보다 즐거운 수학이 되리라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매쓰톨로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